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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의 밤, 소리 내어 함께 읽기 “다르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우리 곁에 있는 풍경을 다정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음악, 김목인 《저장된 풍경》
등록 2023-12-01 20:59 수정 2023-12-07 22:25
김목인 《저장된 풍경》 앨범 재킷. 스페이스 공감 김목인 ‘도심 산책’ 유튜브 링크(https://youtu.be/6yXjiEQqjhY?feature=shared)

김목인 《저장된 풍경》 앨범 재킷. 스페이스 공감 김목인 ‘도심 산책’ 유튜브 링크(https://youtu.be/6yXjiEQqjhY?feature=shared)

일주일에 한 번 마을에 있는 책방에 나가 일한다. 이사하고 얼마 뒤 어떤 일로 책방 문을 두드렸다. 그 인연으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소리 내어 시를 읽는다. 한 편의 시를 한목소리로 또박또박 읽는다. ‘하나둘’ 하는 신호에 다 같이 시를 읽는 경험은 특별하다. 모두 같은 것을 앞에 두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기 속도를 남에게 맞춰간다. 운율과 가락이 느껴진다. 다른 이와 공명하는 기분이 든다.

책방의 아침은 한산하다. 보통 모임이 있는 저녁까지 조용하다. 가게를 청소하고 주문 들어온 책을 예약하고 입고된 책을 정리하는 것이 낮의 일이다. 책을 사러 오는 손님이 없는 날도 있다. 혼자 했다면 마음이 복잡해져서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조합원 열여섯 명이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두 조합원이 시간을 나눠 상주하고 빈 시간에는 다른 조합원들이 요일별로 나와 책방을 지킨다. 책방에서 이웃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는 일본인 조합원은 ‘챠미짱’이라고 불린다. 우리 협동조합은 이름 대신 서로 별명을 부른다. 챠미짱은 모임이 있을 때마다 작두콩차를 끓여 사람들에게 권한다. 한번은 나도 따라서 차를 끓였는데 작두콩을 잔뜩 넣는 바람에 혼이 났다. 마을 사람들은 일없이 책방에 와서 시간을 보내다 간다. 이따금 누구에게 반찬을 전해주라며 두고 가는 분도 있다.

풀리지 않는 글쓰기에 파묻혀 종일 처박혀 있을 때가 많다. 지나버린 마감을 두고 좀체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면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으면 했다. 정말 누구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속을 태우기도 했다. 때론 무책임하게 도망치기도 했다. 놓친 인연들, 끊어진 관계들. 전부 내 책임이다. 일하지 않는 삶은 쉽게 고립된다. 글 쓰는 삶은 자주 외로워진다. 파도처럼 무력감이 밀려오고 밀려간다.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그것이 인간을 살게 하는 듯싶다. 직장을 그만두고 글쓰기로 밥벌이하며 느낀 점이다.

김목인의 네 번째 정규앨범 《저장된 풍경》은 우리 곁에 있는 풍경을 다정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어느 날 뒤처진 듯 느껴지면 좀더 많은 사람들에 속한 기분이지” 노래하는 그는 사람들이 “묵묵히 살고 있는 풍경”(<도심산책>)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오늘과 다르게 살기 위해 무던히 애쓴다. 갈고닦는다. 더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군더더기를 덜어낼 때 일상은 오롯이 빛나는 게 아닐까. 나는 얼마나 많은 혹을 달고 살았나. 손쓸 수 없는 일들을 어수선하게 보탠 것 같다.

마을 사람들이 책방에 모여 저마다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러다보면 한 상이 차려진다. 한곳에 둘러앉아 김장한 김치에 수육을 싸 먹으며 지난 일을 돌아본다.

“다르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다르다는 건 얼마나 귀한 일인지”(<다르다는 건>) 다른 존재는 우리 삶의 희망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김목인은 다르다는 이유로 사라지는 것들까지 살핀다.

시대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오래된 가치는 쓸모없거나 시대착오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나는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이야기는 삶을 계속하게 한다. ‘나’를 말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그럼 말하는 용기는 어디서 비롯될까. 그만하고 싶을 때 떠오르는 얼굴들이 아닐까.

소리 내어 함께 시를 읽는다. 책방의 밤. 목소리들이 쌓인다.

“계절은 태연하기도 하지”(〈계절은 신비하기도 하지〉)

최지인 시인

*너의 노래, 나의 자랑: 시를 통해 노래에 대한 사랑을 피력해온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최지인 시인의 노래 이야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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