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 대학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특강 제목은 ‘앞으로 잘할 것’. 강의실 단상에는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마이크를 입 가까이에 댔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후회했다. 주제넘은 짓이었다고 생각했다. 문학에 대해 말할수록 그것은 내게서 멀어졌다.
강연은 질문과 대답으로 꾸려졌다. 미리 나눠준 포스트잇에 학생들이 질문을 적었다. 질문은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었다. 하나는 글 쓰는 방법. 어떻게 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내가 그 방법을 안다면 원고 마감일을 잘 지켰을 것이다. 한 편의 글을 탈고하면 막막해진다. 나는 이전에도 몇 편의 글을 썼다. 잘하고 싶었다. 욕심도 있었다. 좋은 글을 쓰자고 다짐하며 살았다. 그러나 언제나 실패했다. 의도와 다른 쪽으로 흘러갔다. 흔히 글쓰기를 건축에 빗대곤 한다. 작가와 건축가는 하나의 건축물을 설계하고 만들어낸다. 그것이 완성되면 누군가 그곳에 머물길 바라며 그들은 떠난다. 빈 곳과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를 떠돈다. 계속해서 떠돌아야 하는 게 나는 두렵다.
다른 하나는 글 쓰게 된 계기. 초등학생 때는 숙제로 매일 일기를 써야 했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을 적는 일은 지겹고 귀찮았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은 일기장에 일기 대신 시를 써도 된다고 했다. 그것은 ‘오늘도 참 보람찬 하루였다’로 일기를 끝내지 않아도 된다는 뜻과 같았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썼다. 행과 연을 나눠 일기장을 채웠다. 그때 쓴 것이 분명 시였다고 생각한다.
한 학생에게 메일 한 통이 와 있었다. 간략한 자기소개와 강연을 들은 소회가 적혀 있었다. 그는 글 쓰는 자세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선 좋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일련의 사건으로 그의 믿음에 금이 간 것이다. 선(善)은 다양한 형태로 글에 나타난다. 아주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설 때도 있다. 다르게 보고 다르게 말한다는 건 배제가 아니라 포용이다. 가장자리에 놓인 삶을 드러내고 안녕하냐고 묻는 것이다. 옳지 않은 걸 방관하지 않는 게 문학의 소명이라고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그럴 자격이 있을까.
그는 덧붙였다. 너무 기대하며 살지 않겠다고. 기대하지 않는 삶은 글 쓰는 삶과 얼마나 멀까. 나는 언제부터 내게 기대하지 않았을까. 계절의 끝에서 뒤를 돌아본다. 비슷한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다. 생활의 조급함과 이번은 다를 거라는 순진한 낙관이 마음을 아프게 하고 급기야 몸을 아프게 했다. 무엇을 얻고자 그 많은 밤을 지새우며 너를 외롭게 했을까. 그게 뭐든 손에 쥘수록 두려움이 커졌다. 어머님은 아내에게 전화해 꿈에 내가 나왔다고 했다. 내 목소리가 어두웠다고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자신이 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정을 주지 않으려 해도 어느 순간 정든다고 했다. 그게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적었다. 그가 물었다.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글을 써야 할까요?
쿠바의 재즈 음악가 그룹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의 이브라임 페레르는 누구나 한 번은 꽃을 피운다고 말했다. 내게 그런 날은 “내 글은 비겁하지 않아요”라고 말할 수 있는 때가 아닐까.
De Alto Cedro voy para Marcané 알토 세드로에서 출발해 마르카네로 가네
Llego a Cueto, voy para Mayarí 쿠에토에 도착해 마야리를 향해 다시 길을 떠나네
_Buena Vista Social Club, ‘Chan Chan’
최지인 시인
*너의 노래, 나의 자랑: 시를 통해 노래에 대한 사랑을 피력해온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최지인 시인의 노래 이야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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