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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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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일의 미래를 외치다

닭이 우는 집에서, AI와 협업하는 젠님 인터뷰
등록 2023-02-10 16:30 수정 2023-02-17 08:53
❶ 시골살이 힐링 브이로그 <오느른>. 유튜브 영상 갈무리

❶ 시골살이 힐링 브이로그 <오느른>. 유튜브 영상 갈무리

흔히들 기회를 찾으려면 ‘도시로 거점을 옮겨라’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에 역행하는, 미래에서 온 노동자인 내 친구 이 있다. 노마드(유목인) 인프라가 잘 갖춰진 관광도시도 많은데, 그는 유독 남들 안 가는 시골만 골라 다니는 독특한 행보를 보인다.

필리핀 섬마을 시아르가오에 머물던 그와 원격(리모트)으로 협업하다보면, 갑자기 닭 울음 소리가 울려퍼지곤 했다. 이제 노이즈캔슬링(주변 소음 차단) 마이크를 사서 새삼 문명의 감사함을 느끼는 그와 오랜만에 조용한 화상회의 시간을 가졌다.

―노마드 6개월차인데 시골 노마드 생활은 어때?

“도시에서 인생을 헛살았다 싶어. 오해인지도 몰랐던 오해가 많더라고. 사소한 거지만 한국에선 닭이 아침에만 운다고 생각하잖아? 근데 생각해봐, 어떤 동물이 아침에만 말하겠어. 여기 사람들은 바로 옆에서 개가 짖고 닭이 온종일 울어대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 불편함에 대한 허용치가 높다보니, 판자촌처럼 방음 안 되는 집 구조에 노래방 기계로 파티를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더라고.”

―젠은 테크 최전선에서 일하는데 트렌드에서 멀어질까 두렵지 않았어?

“난 이게 일의 미래라고 생각해서, 많은 것을 나한테 실험하는 중이야. 도시 사무실은 포드 시절 컨베이어벨트에서 일하던 관습을 아직도 강요하는 것 같아. 더는 대량생산 표준화된 차를 원하지 않는데 우리는 왜 여전히 기계처럼 일해야 할까? 인터넷의 근간인 리눅스는 서로 얼굴도 본 적 없는 수많은 개발자가 리모트로 협업해서 만들었어. 리눅스 없이는 인터넷이 안 돌아갈 텐데 내가 하는 일은 그것보단 덜 복잡하지 않을까? 그래서 리모트 방식의 일의 미래가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해. 사람마다 바이오리듬이 다르고 선호하는 인테리어 디자인도 다르니까. 두뇌에 혈액순환이 잘 안 되는 것 같을 때 푸시업(팔굽혀펴기)을 할 수도 있고,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인센스(향)를 피워놓고 일하고 싶을 때도 있고 말이야. 나만의 공간에서 리모트를 하다보면 자기만의 기준이 명확해져.”

―일의 미래가 뭐라고 생각해?

“이미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탈중앙 자율 조직)라는 조직 형태가 생기고 있어. 인터넷에서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여 리모트로 일하면서도 충분히 멋진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어. 내 옆자리의 동료 말고 챗(Chat)GPT 같은 인공지능(AI)과 협업하면서. 스타트업 문화만 해도 최근에 받아들여졌잖아. 배달의민족 같은 회사가 나타나니 갑자기 위상이 달라졌어. 대기업의 상명하복이 있지 않아도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음을 세상에 보여준 거지. 오히려 대기업이 스타트업 문화를 따라 하고 말이야.”

―요즘 서핑 라이프는 어때?

“서핑 하려고 노마드 한 건데, 일의 미래라고 거창해진 것 같네. 서핑은 정신 차리고 겸손해지려고 해. 인간이 만든 스포츠는 기껏해야 나와 상대의 움직임이 변수잖아. 서핑은 파도·조류·바람·물때·날씨 모든 것이 변수고 영원한 상수가 없어. 그렇게 파도에 물 싸대기 몇 번 맞으면 ‘내가 뭐라고, 나 진짜 아무것도 아니구나’ 싶더라고.”

사회의 관습에는 도전하지만, 자연 앞에서는 겸허한 젠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나보시라.

김수진 컬처디렉터 젠(인스타그램 @enchovy_club)의 플레이리스트

❶ <오느른> ‘EP.1│4500만원짜리 폐가를 샀습니다ㅣMBC PD 시골살이 힐링 브이로그 오느른’

‘오늘을 사는 어른들'이라는 의미로 시골생활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모습 등 여과 없이 구독자에게 보여주고 소통하는 채널이에요. 내가 만들고 싶던 채널을 방송사 PD 출신이 만들다니! 영상미와 힐링&꿀잼 기획이 돋보입니다.

<서리요가>

모닝 요가는 노마드 워커로서 제 하루를 여는 루틴입니다. 사람마다 맞는 요가 강사가 다르겠지만, 저는 구체적으로 지시사항을 말해주고 적당히 강도가 있는 <서리요가>가 딱 맞았어요!

❸ <셜록현준> ‘건축으로 보는 바벨탑에 숨겨진 비밀들’

건축가의 시선으로 보는 문명의 세상. 그 시선을 잠시나마 공유할 수 있어 좋아요. 아, 자연도 좋지만 그래도 문명이 위대하구나~.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수진 컬처디렉터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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