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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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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롭고도 의연한 예술가들을 아낍니다

부부 시인의 최애를 향한 편지 <계속 태어나는 당신에게>
등록 2022-12-17 13:49 수정 2022-12-22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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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뭔가 대단히 크게 잃은 적 있는 사람에게 마음이 가요. 잃은 후 의연하게 다시 걷는 사람이요. (…) 그들의 위태로움과 의연함, 삶에 대한 사랑, 목마름, 그리고 슬픔을 아낍니다. 그들은 진짜 슬픔이 뭔지 알지요. 당신의 첫 소설 제목처럼 ‘슬픔이여, 안녕’ 하고 슬픔을 맞이하는 사람들.”

이것은 한국의 박연준 시인이 프랑스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에게 보내는 애정 가득한 편지다. 젊은 나이에 첫 작품 <슬픔이여 안녕>으로 큰 성공을 거뒀으나 도박과 술에 빠져 전 재산을 잃은 작가 사강. 온 생애에 열락을 좇았던 그를 세간은 ‘어리석은 구제불능’이라고 조롱하지만, 박연준은 그가 가진 독특한 재능을 본다. 바로 자기 처지를 ‘카메라 감독처럼 조망할 줄 아는’ 문학적 감수성이다.

벼락부자가 됐을 땐 “수표가 꽃처럼 만발하던 봄이었다”, 돈을 잃기 시작하자 파산을 직감하고 “채워넣어야 할 전표가 산더미처럼 쌓인 작은 방 안의 내 모습을 본다”. 사강이 자기 삶에 대해 쓴 문학적 표현이다. 그에겐 “벼랑 끝으로 달려가는 자신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는 능력”(박연준 시인)이 있었다.

“문학, 그 무모하고 덧없는 것에 맹렬했던 사람.” 또 다른 시인 장석주는 말년에 모든 것을 잃고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사강에게서 자기 자신을 본다. “당신과 나는 일찍이 문학의 세례를 받고, 이 하염없는 것에 인생이란 판돈을 걸었다는 점에서 닮았지요. 하필이면 왜 문학이었을까요? 문학이란 환(幻)을 빚는 것. 그것은 행복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런 점에서 문학은 무용하겠지요.”

그는 사강에게 쓴 편지에서 사강의 생애도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18살 여름, 바닷가 휴양지에 머무르며 헤밍웨이와 스탕달의 책을 탐독했고 6주 만에 자신의 첫 소설 초고를 완성한 천재. 책의 성공으로 비싼 자동차를 사서 과속운전과 도박, 마약에 빠져 지낸 여생. 코카인 흡입으로 법정에 섰을 땐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것까지.

사강은 2004년 세상을 떠났다. 부부 사이인 박연준과 장석주 두 시인은 그의 생애와 작품을 각자의 시선으로 해석하며 그를 독자 앞에 계속 살려낸다. 책 제목이 <계속 태어나는 당신에게>(박연준·장석주 지음, 난다 펴냄)인 까닭이다. 같은 방식으로 김소월 시인,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등 두 시인이 사랑한 예술가 18명의 이야기가 책에 담겼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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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교양 공부

전성원 지음, 유유 펴냄, 3만8천원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이자 르네상스형 지식인 전성원이 지난 100년간 한국과 세계에서 일어난 의미 있는 사건을 철학·예술·학문·인권 등 다양한 주제로 추려 엮었다.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365일 날짜순으로 하나씩 간략히 소개하는 데도 1112쪽 방대한 분량이 쌓였다. 각 글의 끝에 관련 추천도서 한 권을 소개해 세계사와 인문·사회 부문의 시사 상식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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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방법은 모르지만 돈을 많이 벌 예정

신지민 지음, 세미콜론 펴냄, 1만2천원

다가오는 연말, 근사한 요리에 와인 한 잔 곁들이고 싶다면? ‘탄닌’ ‘바디감’ 같은 어려운 말에 지레 겁먹을 필요 없다. 음식별로 어울리는 와인 종류와 와인 마실 때의 매너, 식당에 와인 가져가는 팁까지 소개한 이 책과 함께라면. 와인을 알아가고 사랑하게 된 저자의 깨알 같은 시행착오 경험담이 담긴, 알찬 와인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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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가슴곰과 함께 살기

이배근 지음, 지오북 펴냄, 1만5천원

국내 곰 전문가가 들려주는 반달가슴곰 생태 복원의 과정과 의미. 쑥과 마늘을 먹었다는 얘기로 우리나라 단군신화에도 등장한 반달가슴곰이지만 전쟁과 밀렵 등으로 멸종위기에 처했다. 반달가슴곰은 한반도에 다시 뿌리내릴 수 있을까. 반달가슴곰 생태 복원 사업에 뛰어든 이배근 박사의 꼼꼼한 곰 관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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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돕는 여자들

이혜미 지음, 부키 펴냄, 1만5천원

‘여자들은 서로 시기하고 헐뜯을 뿐’이라는 젠더 편견이 지겹다면 이 책에서 다른 세상을 만나보자. 드라마 속 ‘여자의 적은 여자’(여적여) 프레임을 넘어서는, 실생활 속 ‘여자를 돕는 여자들’(여돕여) 이야기. “우리는 필경 생애 한 번쯤은 다른 여자에게 빚지고 빚 주며 지금에 이르렀다.” 논픽션 작가 하미나, 테니스 코치 김은희, 뮤지션 핫펠트 등 다양한 직업군의 여성 연대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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