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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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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 번째 나라’ 한국에 하고픈 말

한국 거주 이주자들의 생생한 목소리 담은 책 두 권
등록 2022-11-26 14:46 수정 2022-11-28 01:37

2022년 9월 말 기준 한국의 체류 외국인은 217만2천여 명. 전체 인구(5163만 명)의 4.2%로, 사실상 다문화사회다. 국적과 체류 목적도 매우 다양하다. ​체류 자격은 재외동포(대부분 중국)와 취업(외국인노동자)이 가장 많고, 유학과 결혼이민이 뒤를 잇는다. 이주 배경의 아동·청소년도 50만 명을 넘는다. 세계화는 이미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럼에도 외국인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시선과 태도는 국적, 피부색, 체류 자격에 따라 차별적이다. 한국을 너무 사랑하지만 인권 사각지대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이들이 일상의 경험과 생각을 생생하게 들려주는 신간 두 권이 눈길을 끈다. 이주 당사자들의 육성을 글쓴이와 기획자가 재구성했다.

<나는 미래를 꿈꾸는 이주민입니다>(한겨레출판 펴냄)는 이주민 인권활동가 이란주가 이주노동자, 이주민 자녀, 결혼이주민, 귀화이주민, 미등록 이주민, 난민 등 24명의 이주자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베트남 출신 엄마랑 몰래 사는” 12살 이사랑은 옷 타령, 장난감 타령을 하다가 “화장실 있는 방으로 이사 가기로 했잖아”라는 엄마의 경고에 동심을 접는다. 스리랑카 출신 니로샨은 한국에서 12년을 일한 ‘용접의 달인’이지만 “10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인 “나의 두 번째 나라” 한국에서의 고단함과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귀국을 결심했다. “요양원 어르신들과 함께한 잔치의 감동”을 가슴에 간직한 채. 각 글에 이주민 의료 실태, 병역, 고용허가제, 출생등록과 교육, 관계 맺기 등 관련 지식과 문제점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달았다.

<나는 메리암 디비나그라시아 마뉴엘이다>(말 펴냄)는 광주의 이주민 지원단체 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대표 박흥순)가 다양한 배경의 이주여성 34명 심층면접을 토대로 엮었다. 구술자들은 한국 사회의 남녀차별과 가부장제, 언어 습득의 어려움, 아내·엄마·며느리 3역의 고단함, 모국에 대한 그리움과 한국인의 은근한 멸시, 그래도 한국이 좋고 광주가 좋은 이유 등을 진솔하게 풀어놓는다. 

1998년 필리핀에서 온 메리암은 주민등록의 성명 기재가 최대 여덟 글자라는 제약 탓에 인터넷뱅킹을 포함한 일상생활에 극심한 불편을 겪고 개명 요구까지 받았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중국에서 한국에 유학 왔다가 남편을 만나 정착한 빈빈은 “더 넓은 세상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좋아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달라지면 좋겠다”고 말한다. 

“베트남에서 막내로 태어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한서윤(한국명)은 “하나부터 열까지 육아에 간섭하는 시어머니”와의 갈등에 힘들다. 그래도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한국어 속담을 믿으며 “학력이 아니라 능력으로 평가되는 사회”를 소망한다.

서로 다른 출판사의 두 책에 “나는 ~입니다”라는 제목이 붙은 것은 우연이지만, 이주민이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와 인격)을 정당하게 인정받고 싶은 소망은 당연이자 필연이다. 이들이 “~해요”라며 소곤거리듯 친근하게 건네오는 말은 따뜻하고 간절하며 재미있는 만큼이나 뜨끔하고 아프다. ‘혈통 한국인’이 몰랐거나 외면해온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으면 더욱 좋겠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특권 중산층

구해근 지음, 창비 펴냄, 2만원

노동자의 계급 형성 과정과 독특한 계급문화를 분석한 고전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쓴 구해근 미국 하와이대학 사회학과 교수가 이번에는 한국 중간계급을 파헤쳤다. 특히 불평등이 심해지면서 중산층이 와해되고 소수의 부유층과 다수의 저소득층으로 분열되는 과정, 그 밑바탕에 자리잡은 ‘특권’을 누리고픈 욕망과 불안의 동학에 주목한다.

일상은 얼마나 가볍고 또 무거운가

조은 지음, 파이돈 펴냄, 1만5천원

조은 동국대 명예교수가 50년 만에 고향인 전남 영광을 방문한다. 그런데 긴장감이 맴돈다. ‘어머니가 영광 선산에 묻히기로 마음을 정하지 않았다면’이라고 애써 변명한다. 머문 시간은 5시간20분. 불편한 가족사를 중심으로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깊은 층위의 일상 읽기’를 고민한다. 2017년 12월부터 3년9개월간 <한겨레>에 연재한 칼럼에, 사유의 단상을 붙였다.

자유주의

에드먼드 포셋 지음, 신재성 옮김, 글항아리 펴냄, 4만5천원

자유주의는 ‘자유’라는 개념만큼이나 폭이 넓고 모호하다. 영국 저널리스트가 근대의 ‘계몽’에서 발원한 자유주의의 진화와 도전,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주요 사상가들을 중심으로 설명했다. 자유주의는 고정된 불변의 철학이라기보다 “구체적 역사를 지닌 현대의 정치 관행”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포퓰리즘이라는 부식제를 만난 자유주의의 위기도 짚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

리 매킨타이어 지음, 노윤기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2만2천원

기후위기, 둥근 지구, 백신 효능 등 엄연한 사실을 ‘거짓’이라고 확신하는 이가 뜻밖에 많다. 탈진실 시대의 어두운 단면이다. 왜 그럴까? 바뀔 수 있을까? 미국 보스턴대학의 철학·과학사 연구자가 ‘과학 부정론자에게 말하는 방법’(원제)으로 회피와 무시가 아닌 이해와 존중과 대화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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