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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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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가 뭐예요? 그래서 여기까지 왔어요

② ‘보수’ 편- 성동공유센터에서 열린 리페어카페 가보니
등록 2022-10-02 13:01 수정 2022-10-06 01:14
2022년 9월24일 서울 성동구 행당로 성동공유센터에서 열린 ‘리페어카페’에 주민들이 고장난 물품을 가져와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며 직접 수리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2022년 9월24일 서울 성동구 행당로 성동공유센터에서 열린 ‘리페어카페’에 주민들이 고장난 물품을 가져와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며 직접 수리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어떤 퍼스트클래스가 창조해 세계적인 용어가 된 ‘유지’(Yuji)는 중요한 삶의 기술이다. 유지는 통용되는 영어로 MRO의 ‘M’에 해당한다. 공장의 기계가 돌아가면 마모되는 부품을 교체하고, 수리하며, 기계를 관리하는데 이 분야를 MRO(Maintenance, Repair and Operation)라 부른다고 한다(<오늘부터 공구로운 생활>). 경영 용어에서는 이에 관여하는 자재를 의미한다. 유지는 일상적으로 유지와 보수가 합쳐져 ‘유지보수’로 함께 쓰인다. 호텔방 청소를 ‘메인트넌스’라고 하듯 청소 등 정리하는 것으로 원래 상태로 돌리는 것이 ‘유지’이고, 고장난 상태를 고치는 것이 ‘보수’다. ‘유지’의 기술과 ‘보수’의 기술을 경험 중심으로 나눠서 서술해봤다. _편집자

“일단 버튼은 눌리는데 돌아가지 않는 것 같거든요. 아마 모터 쪽에서 단선인 경우는 수리가 가능한데, 부품 고장이면 오늘 당장 수리는 어렵습니다. 일단 열어볼까요? 열어보고 조립하는 것은 어렵지 않거든요.”

2022년 9월24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동공유센터에서 ‘최반장’이라고 입고 있는 검정 티셔츠에 테이프로 크게 써 붙여놓은 최영경씨가 기자가 갖고 온 소니 워크맨(WM-fX675, 2002년 제조)을 앞에 두고 설명했다. 다이소의 정밀 드라이버로 밑 4개, 위 2개, 옆면 3개의 나사를 열고 테이프 걸리는 부분을 밀어서 뚜껑을 열었다. 작동시키기 위해 배터리를 옆에 끼우고 벗긴 커버의 버튼을 보면서 속의 단자를 눌러보자 원인이 무엇인지가 금방 드러났다. 고무벨트가 늘어져서 장력이 안 걸리는 것이었다. “벨트는 소모품이거든요. 교체 주기가 길긴 합니다. 한 10년.”

AS 받기 산 넘어 산

이날 성동공유센터에서 열린 ‘리페어카페’에는 최반장 외에 ‘신반장’ 신상선 성동청년플랫폼 대표, ‘임반장’ 임재혁씨가 수리할 것을 들고 오는 주민들을 만났다. 성동구 주민 임양술(59)씨는 선풍기를 들고 왔다. “1단 바람은 되는데 2, 3단은 버튼이 먹지 않아요.” 더운 여름을 1단 바람하고만 지냈던 셈이다. “아웃렛에서 2년 전에 디자인 보고 샀죠. 전화했더니 에이에스(AS) 기간은 다 지났고, 수리를 맡기려면 택배로 보내래요. 2년도 더 됐으니 상자는 다 버렸잖아요. 그런데 오늘 여기서 리페어가 열린다고 해서 왔죠.” 임양술씨는 이전에 성동공유센터에서 수도를 고치기 위해 연장을 빌려간 적이 있다. 리페어카페는 AS와는 다르다. 의뢰인이 직접 분해해보고, 무엇이 고장인지를 반장과 의논해 알아낸 뒤, 직접 수리하도록 한다.

헤어스타일러(고데기)를 들고 온 계예리(63)씨는 끊어진 전선을 야무지게 납땜하고, 연결 부위와 덮개를 짜맞춰 나사를 박아넣었다. “이 상품이 여기 목 부분이 약하네요.” 신반장의 진단이다. “이게 펼 수도 있고 말 수도 있어서 정말 편리해요.” 계씨는 쓰고 있던 ‘고데기’가 고장나자 똑같은 걸 또 샀다. 다른 ‘고데기’를 써봐도 이것만큼 좋은 게 없었다. 그런데 그마저 이제 불이 들어왔다 안 들어왔다 했다. “(납땜)해보니까 어려운 게 아닌데…. 다른 작은 것들은 고칠 줄 몰라서 다 버렸지. 요즘 사람들은 전파상이란 게 뭔지도 몰라요.” 계예리씨는 다 고쳐진 ‘고데기’ 두 개를 들고 웃으면서 공유센터를 나섰다.

반도체 하나만 탈인데 모듈 갈아야

가지고 온 제품을 못 고치는 일도 많다. 부품 문제도 있고, 아예 못 고치게 만든 제품도 많다. “온라인에서 샀는데, 중국제예요. 제조사를 찾아도 없고, 어디 가져갈 데도 없어요. 시디(CD)만 고장난 거라 라디오는 잘 듣는데, 남편은 자꾸 갖다버리라고 하네요.” 벽에 거는 CD플레이어를 들고 온 황년영(51)씨는 남편은 갖다버리라고 하는 거니, “안 되도 되니까 열어봐요” 하며 적극적이다. 열어보니 나타난 반도체 패널에 선이 복잡하다. 집적된 여러 반도체 중 하나만 탈이 났는데, 반도체 패널 전체를 갈아야 한다. 하나를 교체하는 것은 “숙련된 반도체 기술자가 아니면 어렵다”고 최반장이 말한다. 표준화된 반도체 패널은 인터넷에서 의외로 쉽게 구할 수 있고 가격도 싸다. 하지만 표준화를 따르지 않으면 바꿔 넣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반도체 모듈 번호는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찾아지지 않는다.

이날 리페어카페에는 15명이 찾아와, 15개의 상품 수리를 의뢰했다. 리페어카페는 2009년 처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문을 열었다. 기자 출신인 마르티네 포스트마가 “토스터나 커피머신조차 수리해서 쓰기 어려운 오늘날의 과소비사회, 쓰고 버리는 사회에 저항하려는 뜻”(<리페어 컬처>)을 담아 만들었다. 2011년 설립된 리페어카페재단은 세계 각국에서 리페어카페를 여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최영경씨(도시 기획 및 실행그룹 소소도시)는 2018년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한국 최초로 리페어카페 행사를 열었다. 성동공유센터에서 2022년 6월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이 행사도 최반장이 제안해서 시작됐다. 강주희 성동공유센터 센터장은 리페어카페를 정례화하려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과소비 권장에 맞선 리페어카페

최근 창업주가 기업 전체를 환경단체에 기부한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평생 쓰는 제품을 내세우고 누리집에는 수선 방법도 동영상으로 안내하고 있다. 파타고니아의 리페어 캠페인 ‘원 웨어’(Worn Wear)의 슬로건은 ‘새것보다 좋다’(Better Than New)다. 이 말이 놀라울 것은 없다. 기업에서 하는 말이라 ‘의외’가 된다. ‘성장’해야 생존하는 자본주의 기업은 계속 팔기 위해 낡은 것, 헌 것, 오래된 것을 밀어낸다. 소비자가 새것 구매에 주머니를 열게 하기 위한 ‘의도적 노후화’(계획적 구식화·Planned Obsolescence)는 잘 알려진 기업전략이다. 이런 경향은 현재 극단적이 됐다. “요즘 나온 제품 중 수리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신반장)는데, “거의 모든 상품이 모듈화(패키지화)돼 있기 때문”(최반장)이다.

이전에 자동차 회사에서 일한 최반장은 “소비자의 안전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한 가지 드라이버로 열 수 없거나 특별한 기구가 있어야 열 수 있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래서 오래될수록 고치기 쉽다. 제1회 리페어카페에 40년 된 재봉틀이 왔는데 고쳐서 갔다. 2002년 나온 소니 워크맨은 소모품인 벨트를 갈기 쉽도록 해놓았다.

리페어카페는 혁신적인 거점 구실을 할 수 있을까.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기대되는 것이 많아진다. “리페어카페가 지역마다 있다면 폐기되는 것 자체를 회수하는 역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괄 회수해서 쓸 수 있는 곳에 전달하기가 쉬워지죠.”(최반장)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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