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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웃는데, 시간이 멈췄다

어린 강아지 곰이의 신장 질병, 어린 생명에게 찾아오는 이유를 알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죽음들
등록 2022-09-06 11:30 수정 2022-09-13 00:35
강아지 곰이를 안고 있는 간호사. 허은주 제공

강아지 곰이를 안고 있는 간호사. 허은주 제공

곰이는 구토가 한 달째 계속돼서 처음 병원에 왔다. 간식을 많이 줘서 배탈이 난 것 같다고, 가끔 구토하는 것 외에는 활발하다고 보호자는 말했다. 누가 봐도 곰이의 활력은 최고였다. 태어난 지 4개월이 된 곰이는 오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병원 곳곳을 질주했다. 신나게 뛰어다니는 곰이 얼굴에서 긴 혓바닥이 밖으로 나와 흔들렸고, 접힌 귀도 함께 펄럭였다. 접종을 완료한 상태였고 식욕도 좋았다. 다만 다른 병원에서 최근 2주 동안 소화기 약을 처방받았는데도 구토가 잦아졌다는 보호자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가능성은 적지만 계속되는 구토의 원인이 다른 전신 질환일 수도 있다. 검사해보기로 했다. 곰이를 들어 품에 안으니 따뜻한 몸이 부드러웠다. 어린 동물일수록 뼈도 관절도 유연하다. 말랑말랑한 곰이를 떨어뜨릴까봐 꼭 껴안으니 곰이는 혓바닥으로 내 얼굴을 정신없이 핥아줬다.

제가 간식을 많이 줘서 그런 걸까요?

엑스레이를 찍을 때도, 채혈할 때도 곰이는 장난치며 우리 얼굴을 계속 핥았다. 그런데 검사 결과가 이상했다. 신장 수치가 너무 높았다. 혹시나 병원 기계의 오류일 수도 있지 않을까? 다시 혈액검사를 해봤다. 두 번째 검사에서도 곰이의 신장 수치는 여전히 높았다. 요검사에서 검출된 단백질의 양은 비정상적으로 높았고, 초음파로 본 신장에서 정상 구조를 찾기가 어려웠다. 4개월 된 어린 강아지의 신장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아마 곰이는 유전적인 신장 질병을 타고난 것 같았다. 태어날 때부터 신장병이 진행 중인 강아지이고, 이미 중증이 된 신부전으로 구토할 정도라면 남은 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좋지 않은 검사 결과를 보호자에게 알리는 일은 늘 쉽지 않다. 중증질환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보호자에게 말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구토의 원인이 신부전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보호자는 검사 결과를 듣고 황망해했다. 그리고 곰이의 신장이 왜 망가졌는지 이유를 물었다. 나는 조직검사를 해야 확진할 수 있다고, 어린 나이임을 고려하면 유전적 신장병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곰이에게 간식을 너무 많이 줘서 그랬을까요? 제가 간식을 많이 주긴 했어요.”

눈이 빨개진 보호자는 질병의 원인을 궁금해했고, 그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으려 했다. 나는 펄쩍 뛰며 서둘러 말했다. 유전병이 원인이라면, 그건 타고나기 때문에 보호자의 어떤 행동이 질병을 만들었을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보호자가 자기 자신을 미워하지 않게 하고 싶었다. 우리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면 왜 우리 곰이에게 그런 병이 왔을까요? 너무 어린 아이인데….”

이 질문에는 대답하기 어려웠다. 나도 병원에서 늘 그 질문에 부딪히면서 좌절하기 때문이다. 곰이와의 남은 시간이 보호자에게 더 행복한 기억으로 채워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눈물을 흘리는 보호자와 내가 어두운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곰이는 환하게 웃으면서 병원 안을 뛰어다녔다. 모든 색깔로 선명하게 빛나던 세계가 회색으로 뒤바뀌는 순간, 흘러가던 시간이 멈추는 순간이다.

동물병원에서는 어린 생명들의 죽음을 많이 접한다. 태어난 지 2주 만에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고양이를 본 적이 있다. 수의사가 되고 병원에서 처음 근무한 지 한 달 만에 겪은 죽음이었다. 어린 고양이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눈을 뜨지 못했고 환한 세상을 눈에 담아보지도 못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산책 중에 돌을 삼키고 장폐색으로 수술 중에 사망한 3개월 레트리버의 죽음도 허망했다. 그때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다. 앞으로 나는 이유를 알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죽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오늘이 마지막이어도 후회 없도록

곰이는 그날 이후 거의 매일 병원에 왔다. 수액을 맞으며 신장 수치가 호전되는지를 확인했다. 집중적으로 수액 처치를 한 결과 곰이의 신장 수치는 상당히 좋아졌다. 구토도 거의 하지 않고 밥도 잘 먹었다. 활력이 좋아져서 보호자는 곰이가 아픈 아이 같지 않다고, 신부전이라는 질병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정도면 곰이가 더 오래 살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고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행복한 시간은 늘 너무 빨리 흐른다.

두 달째부터는 곰이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곰이는 수액과 약물 처치를 해도 구토하고 기운이 없었다. 밥도 거의 먹지 못해 빠르게 체중이 줄었고 더는 병원에서 뛰어다니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조용히 보호자 품에 안겨 있었고, 바늘이 피부에 들어갈 때만 낑낑 작게 울었다. 곰이를 아꼈던 간호사가 얼굴을 만지며 달래주면 곰이는 수액을 주는 손가락을 천천히 핥아줬다. 우리는 매일매일 곰이에게 수액과 주사 처치를 했고 부드러운 몸에서 생명이 천천히 빠져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곰이 보호자에게 말해야 했다. 곰이가 잘 버텨주고 있지만,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고.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보호자는 오히려 우리를 위로했다.

“매일 말해주고 있어요. 오늘이 마지막이어도 후회 없도록,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있어요. 저는 여기 병원 선생님들이 걱정이에요. 곰이 가면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정을 주세요….”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도 이 작은 존재에 대한 사랑은 넘쳐서 주변으로 흘러간다.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그 시간을 통과해서 살아가는 한 사람, 그 삶에 대한 태도를 보며 나는 겸허해진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곰이는 그렇게 보호자 품에서 세상을 떠났다.

나는 병원에서 오랫동안 화가 나 있었다. 이렇게 무해한 존재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 태어나자마자 죽을 거면 왜 태어났는지…. 이 부당한 죽음의 이유를 찾고 싶었다. 화낼 대상을 찾고 싶었다. 이유를 찾아 납득하면 덜 화나고 덜 슬퍼했을까? 지금도 여전히 나는 병원에서 자주 화가 난다. 그럴 때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 뒤 곰이 보호자를 생각한다. 남아 있는 시간 동안 곰이를 사랑하는 데 집중했던 한 사람을 떠올린다. 어린 생명의 죽음으로 분노할 시간에 사랑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더 좋은 선택임을 곰이 보호자는 나에게 가르쳐줬다.

죽음도 탄생처럼 우연히

병원에서 우리는 여전히 곰이에 대한 기억과 함께 산다. 접힌 귀가 펄럭이고 혓바닥이 흔들릴 정도로 병원 안을 질주하는 강아지를 보면 간호사와 나는 동시에 이야기한다. “곰이도 꼭 저렇게 뛰어다녔는데!” 하며 환하게 웃는다. 세상을 떠난 강아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웃을 수 있다는 게 좀 이상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사는 세상이다. 죽음은 태어남과 마찬가지로 우연히 우리 삶에 찾아온다. 우리가 사랑했던 존재들의 기억과 함께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 생명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최선을 다해 사랑하도록 노력하는 것, 그것이 내가 배운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아직 나는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위태로운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

허은주 수의사·<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 저자

*시골 수의사의 동물일기: 시골 작은 동물병원 수의사로 일하면서 만난 동물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람 곁을 오랫동안 지켜온 동물의 우정에 사람은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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