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초등학교 동문회에 초대받았다. 막국숫집에 갔더니 아는 얼굴 여럿이 국수를 먹고 있었다. 웬일이시냐 인사하니 “다음주에 동문회잖아요. 놀러 와서 밥 먹고 놀다 가요” 한다.
지나다니며 학교를 본 적이 없는데, 보건소 건너편 길로 조금 들어가면 있단다. 점심 먹고 학교를 찾아가보니 아까 국숫집에서 만난 사람들이 커다란 롤러를 동원해 운동장 바닥을 고르고 있었다. 밭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랫집 어르신들을 만났다. “다음주 동문회 놀러 와유. 가수도 불렀대~.” 만나는 사람들마다 동문회에 오란다.
교문 옆에 평창교육청이 세운 ‘문 닫은 학교 안내문’ 비석에 따르면 S초등학교는 1942년 진부공립국민학교 부설 간이학교로 개교해, 1944년 S국민학교로 승격됐다가 소규모학교 통폐합 계획으로 1996년 문을 닫았다. 47회에 걸쳐 졸업생 1122명을 배출했다. 사실상 이웃 대부분이 동문이고 어떤 집은 온 가족이 동문이다. 빈 학교는 예술가들이 와서 작업실로 쓰다가 떠났고, 10여 년 전부터 각지로 흩어진 동문들을 모아 매년 6월 동문회를 열고 있단다. 교사(校舍)도 남아 있었는데 2021년에 헐었다며 아쉬워들 한다.
그다음 주 토요일 점심, 밭일하는데 아랫집 아주머니가 빨리 오라고 세 번 전화하셨다. 운동장엔 만국기가 걸리고 중앙엔 무대가 설치돼 있었다. 무대 앞에는 김치냉장고·냉동고를 비롯해 크고 작은 경품 상자가 쌓여 있다. 무대 왼편으로 잔칫상이 차려 있다. 아랫집 아주머니가 반기며 우리를 테이블로 안내했다. 아랫집 어르신이 23회 졸업 동문들과 함께 한잔하고 계셨다. “어, 여기는 우리 뒷집, 서울서 온 농막집이여~” 하고 소개해주신다. 예순이 넘은 동문 아주머니가 “젊은 사람들이 와서 살면 우리는 좋지~” 하셔서 “젊지도 않아요, 낼모레 오십인데요” 하니, “아이고 젊어, 딱 좋아 딱 좋아~” 하신다. 소머리 수육에 누리대(누룩치)무침, 메밀부치기(부침개), 떡 등 한 상 차려주신 점심을 맛있게 먹고 다시 밭으로 돌아왔다. 일어서자니 다들 저녁에 꼭 다시 오라고 당부하신다.
낮잠 한판 자고 옥수수밭에서 풀을 뽑고 있으려니 오후 5시도 안 됐는데 온 마을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노랫소리가 들렸다. 아직 풀 뽑을 고랑은 많이 남았는데, 잔치 끝날까 마음이 들썩거려 대충 접어두고 다시 학교로 갔다. 운동장 절반에 테이블이 깔렸고, 무대 앞에 사람들이 나와 춤추고 있었다. 기수별로 한 명씩 나가서 노래하고 경품을 추첨했다. 노래는 장르 불문 디스코 버전. 구슬픈 가사에도 리듬은 쿵짝쿵짝.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어떤 노래에도 들썩들썩 춤을 춘다.
점심에 비할 바가 못 되게 사람이 많아졌다. 외지에 나간 젊은 사람들이 저녁에 많이 왔다. 점심에 못 봤던 이장님, 반장님이 이미 불콰한 얼굴로 반겨주셨다. 얼마 전 당선됐다는 군의원과도 인사했다. 코로나19로 3년 만에 열린 동문회라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하고 술잔을 부딪치고 소리 높여 이야기하고 박수 치며 웃고, 서로 팔을 붙잡아 끌고 나가 춤췄다. 아랫집 아주머니가 하도 끌어내서 나도 나가 춤을 췄다.
아주머니가 시끄러운 음악을 뚫고 소리 높여 이야기하신다. “우리 아저씨가 소 밥 주러 갔더니, 소가 송아지를 낳았더래.” 송아지 봐서 기쁘셨는지 아랫집 어르신, 완전 프리 스타일로 춤을 추신다. 다리와 허리와 어깨 움직임이 창의적이다. 하이라이트는 불꽃놀이. 밤하늘에 펑펑 불꽃이 터진다. S초등학교 동문회 스케일 미쳤다. 불꽃놀이 본 게 몇 년 만인지. 쿵짝쿵짝 들썩들썩 이렇게 신나게 놀아본 건 또 얼마 만인지.
글·사진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농사꾼들: 주말농장을 크게 작게 하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한겨레> 김완, 전종휘 기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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