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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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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장마를 견딘 생강… 첫 출하가 남긴 것

―인천 계양 편
고추는 썩었지만 생강은 무럭무럭 자랐다
등록 2025-11-13 20:17 수정 2025-11-15 16:03
처음 길러서 출하까지 하게 된 생강.

처음 길러서 출하까지 하게 된 생강.


올봄에 동네 이웃과 함께 충동적으로 밭을 얻었다.(제1562호 참고) 갑자기 생긴 땅은 원래 땅보다 경작할 수 있는 면적이 다섯 배쯤 넓고, 햇볕도 잘 들었다. 비로소 농사의 꿈을 더 크게 펼칠 순간일까? 하지만 웬걸, 오랫동안 비닐로 꽁꽁 싸여 있던 땅은 마치 돌덩이 같았다. 유명 대장간에서 나온 신상 호미가 바로 두 동강 날 정도였다! 이래 봬도 도시농부 경력 11년차, 호미를 부러뜨린 건 난생처음이었다.

이 돌밭을 살려보겠노라 호밀을 20㎏ 포대로 사다 그야말로 들이부었다. 거기에 고추와 오크라, 토마티요를 잔뜩 심었다. 그래도 빈 공간이 많이 있었다. 남은 땅에는 뭘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인천 평리단길에 있는 카페 ‘짜이집’ 사장이 생강을 키워달라고 말했던 것이 떠올라 봉동생강 10㎏을 주문해 5월 초에 심었다. 마음으로는 10㎏ 전부 심고 싶었지만 5㎏ 정도 심고 나자 돌덩이에 항복하고 말았다. “더 이상 심는 건 무리겠어. 남는 자리에는 그냥 호밀을 기릅시다!”

남들보다 늦게 심은 생강인데다 초여름까지는 비도 잘 오지 않아 싹이 날 때까지 그야말로 노심초사. 체감상 한여름이 돼서야 호밀 사이에서 테이블야자를 닮은 연둣빛 싹이 올라왔다. 호밀을 가지런히 땅 위에 차곡차곡 쌓아 덮어도 잘 자라지 못하는 것 같아 ‘자연농으로 기른다’는 원칙을 어기고 유기농 비료를 한 포 뿌려줬다. 그 뒤로도 크게 풀을 한번 베어 덮어주고, 틈틈이 자라는 풀은 이웃이 수고해줘 풀 이불을 잔뜩 덮은 채 늦게 심은 생강이 조금씩 힘을 내고 있었다.

그러던 10월, 때아닌 가을장마가 이어졌다. 병 한 번 없이 길렀던 고추에 탄저가 생겼고, 채종하겠다고 남겨둔 붉은 고추가 전부 썩어버려 씨앗을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고추의 비극이 생강에는 축복이었는지 엉뚱한 가을장마에 생강만 무럭무럭 자랐다. 서리가 내리기 직전까지 기다린 10월 말, 마침내 생강을 뽑고 다듬어 짜이집에 출하했다.

그동안은 시장에서 잘 팔지 않는 작물을 심어 혼자 먹거나 선물하느라 셈을 한 번도 안 해봤는데, 돈과 바꿀 기회가 생기니 모든 것이 신기하고 어려웠다. 평소에는 농산물을 ‘비(B)급’이나 ‘파지’를 구분하지 말고 사 먹자는 주의였지만 막상 납품하는 처지가 되니 자신이 없어졌다. 품위(규격)에 맞지 않아 보이는 것들은 고스란히 생산자 몫으로 따로 분리하고, 큼직하고 흠 없는 생강만 따로 상자에 담으니 12㎏이 모였다. “2㎏은 서비스로 주고 10㎏ 금액만 받자”고 정했다. 근데 생강 가격은 대체 얼마를 받아야 하는 걸까?

생산비를 대충 계산해보니 5㎏ 분량의 씨생강과 호밀, 비룟값까지 대충 15만원. 처음부터 생강값으로 20만원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동안 봉동생강을 1㎏당 1만3천원을 주고 사왔다는 사장에게 그 가격을 말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짜이집 사장은 좋은 생강을 길러줘서 고맙다며 흔쾌히 입금해줬다. 비로소 첫 계약재배(?)가 고객 만족과 동시에 생산비를 건지고 무사히 납품하면서 마무리됐다. 생강아, 부디 내년에는 더 많이 달려다오!

글·사진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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