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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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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되고 너는 우리가 되는 ‘푸릉’ 물고기의 세계

위계를 뒤집어 삶의 아름다움 보여준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와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등록 2022-06-18 13:13 수정 2022-06-19 01:43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표지 이미지. 곰출판 제공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표지 이미지. 곰출판 제공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이 말을 제목으로 한 ‘이상한’ 책(룰루 밀러 지음, 곰출판 펴냄)이 2022년 상반기 대표적인 베스트셀러다. 표지만 보면, 과학책인지 에세이인지 물고기 분류학자 평전인지 헷갈린다. 1인 출판사에서 나와 홍보도 거의 없었다. 입소문만으로 여러 달 동안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제주 바다 마을 푸릉을 배경으로 한 티브이엔(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노희경 극본, 김규태·김양희·이정묵 연출)는 2022년 6월12일 시청률 18%로 종영했다. 이 드라마와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묘하게 닮았다.

삶은 얼마나 위태로운가.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고통은 지천으로 깔렸다. 죽음은 어디에든 있다. 그럼에도 인생에 의미가 있다고 장담할 수 있나? 삶이 행복이라 말할 수 있나? 두 작품은 익숙한 범주와 위계를 뒤집고 그 너머 반짝이는 환희를 보여준다. 사다리가 아니라 거미줄의 세계에선 굳이 먼 곳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을 필요가 없다. 바로 옆을 보라. 기적이 거기 있다. 두 작품을 보면 울면서 읊조리게 된다. 아, 물고기라는 범주는 없구나. ‘물고기’가 없는 세상은 눈부시게 아름답구나.

<우리들의 블루스> 중 한 장면. ❶영주는 임신중지를 하려다 남자친구 현이와 함께 아이도 낳고 대학도 가기로 결정한다.

<우리들의 블루스> 중 한 장면. ❶영주는 임신중지를 하려다 남자친구 현이와 함께 아이도 낳고 대학도 가기로 결정한다.

표준어 대신 제주 방언, 장애인이 장애인 연기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중심과 변방의 경계를 흩뜨린다. 조연이 주연 되고 주연이 조연 된다. 동석(이병헌)이 한수(차승원)와 동창모임에서 함께 막춤을 추다 ‘지나가는 남자1’처럼 사라진다. 드라마 중반까지 동석은 슬쩍슬쩍 등장해 오일장에서 몸뻬(일바지)를 팔고, 엄마 옥동(김혜자)에게 행패를 부리고, 선아(신민아)와 빨간 자동차를 타며 해변을 달리다 사라진다. 매회 흩어진 단서들을 모아 보면, 영옥(한지민)은 ‘밉상’이다. 부모님이 화가라고 했다가 동대문에서 장사한댔다가 여기저기 거짓말하고 다닌 듯하다. 돈 욕심 부려 해녀 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친다. 동석은 패륜아인가? 영옥은 거짓말쟁이인가? 누군가를 안다고 말할 수 있나? 우리는 다만 기다릴 수 있을 뿐이다. 영옥이, 동석이 또 조연처럼 보이는 모든 이가 중심에 서서 자기 얘기를 풀어놓을 때까지 말이다. 이 드라마의 옴니버스 형식은 한국 사회가 잊은 윤리를 환기한다.

왜 제주일까? <우리들의 블루스>는 제주 방언이 전면에 등장한 첫 번째 드라마다. 표준어가 중심이라면 제주 방언은 거기서 가장 멀리 떨어진 사투리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사투리는 감초처럼 방송에 나오기라도 하지 않았나. 이 드라마 첫 회를 볼 때, 나는 등장인물들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매주 펑펑 울며 보다보니, ‘했쪄’라는 어미에 정이 들고 ‘똘’이 ‘딸’이란 걸 알았다. 이제 제주 방언 ‘돌’(달)을 들으면, 해녀 춘희(고두심)가 대접에 담은 물에 비친 달을 호로록 마시는 장면이 떠오를 테다.

그동안 방송 속 제주도는 대개 도시 사람들이 며칠 들러 힐링하는 공간이었다. 관광지 바다는 인간이 통제하는 사진 속 배경으로 안전하다. 이 드라마 속 제주에서는 은희(이정은)가 생선 대가리를 쳐서 동생들 뒷바라지하고 호식(최영준)이 장에서 얼음을 팔며 홀로 딸을 키운다. 이 바다는 인간을 압도한다. 아름다움으로 또 공포로. 물질하던 옥동의 딸을 삼킨 바다다. 해녀들은 바다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안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장애인이 장애인 연기를 한 첫 드라마이기도 하다. 다운증후군 배우, 농인 배우가 등장한 첫 작품이다. 인구의 5%가 공식적인 장애인인데 뉴스며 드라마며 예능이며 방송은 대개 이들을 없는 존재나 객체로 다뤘다. 김도현의 <장애학의 도전>을 읽으면, ‘이들’이라는 대명사도 어색하다. ‘장애인’이라는 분류는 200년 전 산업사회가 시작되며 ‘발명’됐다. 시각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이 경험하는 현실은 다른데 ‘장애인’이라는 한 범주로 묶는다. ‘장애인’으로 일단 묶이면 잘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다.

❷죽어가는 옥동은 아들과 함께 간 한라산 중턱, 흩날리는 눈발을 보며 경탄한다.

❷죽어가는 옥동은 아들과 함께 간 한라산 중턱, 흩날리는 눈발을 보며 경탄한다.

이런 ‘시대’가 아닌 공동체를 가진 고등학생 커플

영옥의 언니 영희(정은혜)는 파도가 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이 ‘발명된’ 범주를 넘어 시청자 곁에 왔다. 영옥의 애인 정준(김우빈)의 말처럼 장애인을 만나본 적이 없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배우지도 못한 우리 곁에 영희는 불쑥 나타나 신촌블루스의 노래 <골목길>에 맞춰 춤추고,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고, 연애를 꿈꿨다.

인간을 향한 판단을 유보한 자리엔 환대가 펼쳐진다. 영희가 푸릉에 온 날, 옥동은 쭈쭈바를 사주고 물고기 손질을 가르쳐준다. 곁에 앉은 별이(이소별)는 농인이고 그 곁에 앉은 해녀의 손주는 자폐가 있다. 암으로 죽어가는 옥동은 영희를 보며 말한다. “옳지, 옳지.”

이 옥동은 미성년자가 아이를 가졌다는데 “아꼽다(예쁘다), 장하다” 한다. ‘일탈’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세상에 이 고등학생 커플은 ‘사랑’이라고 대든다. 영주(노윤서)는 임신중지를 하려다 남자친구 현이(배현성)와 함께 아이를 낳고 대학도 가기로 결정한다. 이 설정은 시대착오적이란 비판도 받았는데, 나는 한국의 영주와 현이들이 한 번도 이런 ‘시대’를 가져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영주와 현이들이 내 ‘똘’이 네 ‘똘’이고 내 ‘어멍’이 네 ‘어멍’인 그런 공동체 ‘푸릉’을 가져본 적이 있나? 한국 사회가 언제 이들에게 ‘같이 키워줄게’ 손 내밀어준 적이 있나? 인생 조질래, 임신중지할래 으름장만 놓으면서 임신중지도 안전하게 하지 못하도록 형법의 낙태죄가 헌법 불합치한다는 헌재 결정을 받은 지 2년이 지나도록 관련법 하나 마련하지 않았다.

노희경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려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이토록 고통은 도처에 있나. 춘희는 세 자식과 남편을 잃었다. 허망하게 병으로, 술 먹고 발을 헛디뎌서 그렇게 죽어버렸다. 하나 남은 막내아들은 교통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맨다. 옥동은 여섯 살인가 일곱 살인가에 부모를 잃고 글도 배우지 못한 채 열세 살인가 열네 살부터 식당에서 일하다 결혼해 아이 둘을 낳았다. 남편과 딸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고 아들 하나 남았다. 아이는 그저 세끼 밥 먹고 좋은 집에 살면서 학교 다니면 크는 줄 알았기에 남편 친구의 두 번째 부인으로 들어가 그 남자와 본처의 병수발을 각각 10년, 15년 했다. 눈을 부라리며 원망하는 아들에게 “네 어망은 미친년”이라고 말하는 여자, 제주에 살면서 한라산 한 번 못 가본 여자,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이 암에 걸려 아들과 함께 한라산에 처음 온 날인 여자, 강옥동. 춘희와 옥동은 대체 무슨 잘못을 했나. 자연은, 바다는 인간의 불행 따위는 상관도 안 한다. 벼락처럼 떨어지는 고통 앞에 사람은 속수무책인 것처럼 보인다.

❸동생 영옥을 그린 그림 아래 영희는 “영희, 영옥 서로를 사랑하다”라고 적었다.

❸동생 영옥을 그린 그림 아래 영희는 “영희, 영옥 서로를 사랑하다”라고 적었다.

진화는 피라미드가 아니라 방사형

‘혼돈’.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쓴 작가 룰루 밀러는 이 혼돈이 두렵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일순간에 흩뜨릴 수 있는 것, 혼돈 속에서 인간의 가치는 바스러진다. 그래서 그는 물고기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간절하게 파고든다. 조던이 절망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가 뭔지 알고 싶어서다. 1903년 봄, 지진이 나 조던이 수십 년간 모은 물고기 표본들이 산산조각 난다. 이름표가 흩어지자 물고기들은 다시 알 수 없는 존재가 된다. 그 혼돈 속에서 조던은 가차 없이 바늘을 집어들고 기억하는 물고기와 이름표를 꿰맨다.

조던은 어린 시절 형을 잃었다. 노예제 철폐를 주장하던 형은 남북전쟁에 참여하려고 떠났는데 싸워보지도 못하고 병으로 숨졌다. 조던은 이후 분류학에 몰입한다. 인생의 부질없음, 한순간에 삶을 앗아가는 혼돈에서 벗어나려는 전력질주였다. 조던은 수십 년간 물고기의 이름을 붙이고 체계를 만들며 거대한 진화의 사다리를 구축하고 그 꼭대기에 인간을 앉히려 한다. 이 사다리 구축 작업은 다양성을 건강한 유전자풀의 핵심이라 칭송한 다윈의 주장과는 정반대 방향, 우생학으로 나아갔다.

조던에게 진정한 절망은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진화는 피라미드가 아니라 방사형으로 뻗어나갔다. 무한한 다양성으로 전지전능함을 보여주는 자연을 이해하는 데 인간의 인식이란 얼마나 편협한 도구인지. ‘물고기’라는 범주는 인간이 가진 그 한계가 만든 상상의 산물이다. 폐어, 소, 연어 중 누가 누구랑 닮았나. 폐어의 심장은 연어보다 소를 닮았다. 폐어와 소는 둘 다 후개구가 있고 연어는 없다. “‘어류’라는 범주가 이 모든 차이를 가리고 있다. 많은 미묘한 차이들을 덮어버리고, 지능을 깎아내린다. 그 범주는 가까운 사촌들을 우리에게서 멀리 떼어놓음으로써 잘못된 거리 감각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상상 속 사다리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제일 윗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다.”(<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를 발전시키는 방법은 ‘열등한’ 유전자를 걸러내는 것이라는 우생학에 진보와 보수 가릴 것 없이 매료됐다. 1924년 이후 미국에서 수만 명이 강제 불임당했다. ‘간질환자 및 정신박약자 수용소’에 7살에 감금된 애나는 19살에 강제 불임수술을 받고서야 풀려났다. 애나는 수용소에서 자기보다 어린 메리를 돌봤다. 수용소를 나와 메리와 사는 애나에게 작가는 물었다. “어떻게 계속 살아가시는 거예요?” 애나 옆에 있던 메리가 말했다. “나 때문이지.” 인간의 의미는 진화의 피라미드 꼭대기가 아니라 바로 옆에 있다.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물고기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파고든다. 조던이 절망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가 뭔지 알고 싶어서다. 곰출판 제공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물고기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파고든다. 조던이 절망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가 뭔지 알고 싶어서다. 곰출판 제공

한마음으로 살아남자, 기적처럼

춘희의 팔에는 일심(一心)이라는 문신이 있다. 바다에서 한마음으로 살아남자 운명공동체 해녀들이 함께 새긴 것이다. 고난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돌을 쌓고 비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푸릉 사람들은 함께 빈다. 춘희의 막내아들이 사경을 헤매는 밤, 비바람이 몰아쳤다. 춘희의 손주인 은기(기소유)는 달 100개가 뜨는 곳에서 빌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아빠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 이 밤, 아이는 아빠가 낫게 해달라고 빌려 한다. “도대체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고들 하면서 동네 사람들은 배를 띄우고 배에 달린 전등을 밝힌다. 그렇게 기적처럼 바다 위에 달 100개가 떴다. 정준이 집으로 개조한 버스 안은 영희가 그린 그림으로 가득하다. 동생 영옥을 그린 그림 아래에 영희는 한 문장씩을 써놓았다. “사랑하다.” “사랑하다.” “사랑하다.” 죽어가는 옥동은 아들과 함께 간 한라산 중턱, 흩날리는 눈발을 보며 경탄한다. 옥동이 지나가는 길옆 돌담엔 들꽃이 피고, 강아지들은 태어난다. 기적처럼.

위계가 사라진 곳에 삶을 향한 경이가 너울댄다. 룰루 밀러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지막에 스노클링을 하며 느꼈던 감격을 풀어놓는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들의 피부 아래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나와 훨씬 더 비슷한 내장기관이 있다는 것, 나와 똑같은 이온이 흐르고 있는 뇌가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어류가 아니라는 것. 수백 마리의 은빛 영혼들이 나를 감쌌다.” 그러니 삶이 아름답지 않은가.

김소민 <나의 아름답고 추한 몸에게> 저자·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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