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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가 자유를 제한한 프랑스혁명

논쟁적 사건으로 재조명한 <프랑스혁명사는 논쟁 중>
등록 2022-05-14 14:26 수정 2022-05-15 02:30

프랑스는 헌법 서문에 “공화국은 자유, 평등, 형제애라는 공통의 이상에 기초한다”고 명시했다. 국가 정체성이 18세기 프랑스혁명에 뿌리박고 있음을 헌법에 새겨넣은 것이다. 

프랑스혁명은 “봉건신분제를 타파하고 시민사회와 자본주의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전형적 시민혁명”이라는 게 통설이다.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모순에서 시작해, 1789년 제3신분 단독 국민의회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인권선언)>,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몰락한 테르미도르 반동(1794년),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브뤼메르 쿠데타(1799년)와 제정 복귀까지 격동의 10년에서 자유와 억압, 대의와 배신은 삶과 죽음만큼이나 명징하게 구별됐다.

서양사학자 김응종 교수는 <프랑스혁명사는 논쟁 중>(푸른역사 펴냄)에서, ‘인권’이라는 빛으로만 각광받았던 프랑스혁명에 ‘폭력’이라는 어둠이 공존하는 것에 주목해 “혁명사의 “다면적인 이해”를 시도했다. 프랑스혁명의 역사적 평가는 마르크스주의 민중사관에 바탕을 둔 ‘정통주의’ 해석이 200년 가까이 프랑스뿐 아니라 세계 학계의 주류였다. “프랑스혁명은 (신흥 시민계급이 주도한) 부르주아혁명”이라는 게 확고한 공식이다. 

20세기 중반 프랑스 아날학파를 중심으로 이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다른 해석이 나오면서 프랑스혁명은 ‘예찬’의 대상에서 ‘논쟁’적 사건으로 재조명됐다. 지은이도 아날학파의 본산인 프랑슈콩테대학에서 공부했다. 지은이가 ‘틀린 생각’이 아니라 ‘다른 생각’이라고 강조한 수정주의 해석은 프랑스혁명을 농민과 상인이 대다수인 제3신분이 아니라 제1신분(성직자)과 제2신분(귀족), 제3신분 중에서도 계몽주의 세례를 받은 엘리트 계층이 주도했다고 본다.

100년 전 영국의 명예혁명(1688년)과 달리 프랑스혁명은 피로 점철됐다. 혁명 주도 세력은 시종일관 완전한 개혁을 외치며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냈다. 1793년부터 불과 1년 남짓한 공포정치 기간에 각종 재판소에서 정식 선고로 집행된 사형만 1만6594건이다. 왕의 목도 단두대에서 잘렸지만 처형자의 84%는 역설적이게도 제3신분이었다. 기소 죄목은 폭동·반역·음모뿐 아니라 악담, 매점, 화폐 위조까지 다양했다. 혁명 이후 10여 년 새 반혁명 내전과 주변국의 간섭 전쟁 사망자까지 합하면 200만 명이 숨졌다는 추산도 있다. 포로뿐 아니라 여성·어린이·노인까지 무자비하게 처형한 ‘전후 처리’는 제노사이드 논란까지 낳았다.

책은 혁명과 반혁명, 혁명가, 혁명사 등 3부로 짜였다. 지은이는 혁명의 피바람에 반대한 이들을 퇴행적 ‘반동’으로 서술하는 것을 경계한다. 또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저작 <혁명에 대하여>(1963년)에서 개인적 자유(리버티·liberty)와 공화주의적 자유(프리덤·freedom)를 구별한 뒤, 부르주아 특권층이 집착한 ‘프리덤’이 혁명의 이름으로 ‘리버티’를 제한한 것에도 주목했다. 국민의회가 <인권선언>의 ‘평등’을 만인이 타고난 평등이 아니라 공화국 시민으로서 ‘권리의 평등’으로 못박아 부르주아의 재산권을 공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부르주아는 정치혁명이 사회혁명으로 발전하는 것을 경계했고, 급진 혁명세력은 더 근본적이고 철저한 혁명의 완수를 추구했다.

정통주의와 수정주의의 차이는 루이16세 처형과 강제징집에 반발한 농민들을 혁명군이 무참하게 진압한 방데 전쟁(1793년)에 대한 평가에서 극명하게 갈린다. “공화주의 역사가들은 방데 전쟁을 반혁명 전쟁으로 규정”한 반면, 프랑수아 퓌레 같은 수정주의 학자들은 방데 전쟁을 “공안이라는 이유로 사면될 수 없는 공포정치의 최대 집단학살”이라고 봤다. 

지은이는 “민중이 계몽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진행된 혁명은 엄청난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을 프랑스혁명은 잔인하게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전히 논쟁적 의문은 남는다. 혁명은 민중의 계몽이 선행조건인가, 그 여부는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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