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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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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쌉싸름한 바닷물고기 이야기

동해, 남해, 서해, 제주도 바다에서 건져 올린 <바다 인문학>
등록 2022-04-06 04:23 수정 2022-04-06 10:05

책갈피에서 짠내가 난다. 새해 첫날 강원도 삼척 장호항에서 도루묵을 그물에서 떼어내는 어민의 손에서, 전남 무안군 도리포에서 맑은 숭어탕을 끓여 낸 식당 주인장의 너스레에서,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 덕장에 널려 스무 번쯤 얼고 녹은 황태에서 바다 냄새가 진동한다. 마을과 사람, 고기잡이 기술과 음식 문화로 버무린 바닷물고기 이야기에 침이 고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지은이 말대로 ‘어디 맛을 혀로만 느끼던가?’

<바다 인문학>(인물과사상사 펴냄)은 동해, 남해, 서해, 제주도 바다에 서식하는 22종 물고기 이야기다. 명태, 조기, 대구, 방어처럼 대개는 우리 밥상과 술상에 오르는 이들이다. 바닷물고기를 안주 삼아 이야기는 물고기의 생태, 음식 문화, 어민의 삶과 기술, 바다의 역사, 생태계와 기후변화 등으로 뻗어간다. 2006년 6월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된 뒤, 바닷물고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지은이 김준은 오랫동안 섬과 바다, 갯벌과 어촌을 연구하고 기록한 해양 인문학자이자 이야기꾼이다.

‘웅어회부터 맛을 보았다. 첫맛은 담백하고 밍밍하다. (…) 입안에 넣고 꼭꼭 씹으면 은근하게 달콤한 맛이 배어난다. 어떤 이는 이 맛을 복숭아 맛이라 하고 미나리 향이라고도 했다. 첫맛에 혀를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은근히 끌어들인다. 이 맛에 선비들이 반했던 것일까?’ 먹어본 적 없는 웅어회 이야기에 침이 꼴깍 넘어갔다. 그것도 잠시, 이어진 대목에선 애간장 타는 마음에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는 낙동강 하구 하단마을 어촌, 영산강 하구 해남군 화원이나 신안군 지도 어촌, 금강 하구 서천, 한강 하구 김포 일대에서만 드물게 잡히고 있다. (…) 한강을 제외하고 웅어가 즐겨 찾던 물길은 모두 막혔다.’

물길을 막아 아파트와 공장을 올리고, 지구온난화로 수온을 올리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어획량을 올린 결과다. 웅어뿐만이 아니다. 지은이가 해역별 대표 물고기로 넣은 명태와 조기도 이젠 동해와 서해에서 만나기 어렵다. 다만 그 바닷물고기들의 ‘문화적 가치가 매우 크기 때문’에 뺄 수 없었다고 한다. 어쩌면 사라진 건 물고기가 아니라 문화일 것이다. 고소하고 달콤한 회 이야기도 뒷맛이 쓰다. 그건 지은이가 의도한 맛이기도 하다. ‘지속 가능한 미식이란 이렇게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공존하고 공생하는 그물로 차린 밥상이다. 미식은 혀끝에서 이루어지는 본능이 아니라 학습과 교육을 통해 만들어진다.’

씁쓸한 뒷맛에도 읽는 재미는 쏠쏠하다. 이를테면 이런 내용. 아귀는 <자산어보>에선 ‘조사어’(낚시를 잘하는 물고기), 인천에선 ‘물텀벙이’라 불렀다. 무안군 도리포에선 작은 숭어를 ‘눈부럽떼기’라고 부른다. 남해 멸치잡이 기술인 ‘죽방렴’은 과학적이다. 모두 바닷물고기와 어민의 입장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대목이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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