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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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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70후 작가, 세상 끝에서 온 아이 인터뷰

지금 바로 출발해서 진으로 가고 현으로 가자
등록 2022-04-05 19:04 수정 2022-04-06 01:05

아이(阿忆)는 중국 70후(1970년대 이후 출생) 작가 중 가장 문학성 짙은 작품을 쓰는 대표적인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2010년 <인민문학> 중편 소설상을 시작으로 <동방조보> <남방일보> 등 수많은 중국 매체가 주관하는 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뛰어난 단편소설 작가들을 발굴하는 린진란단편소설상과 푸쑹링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소설은 주로 중국 소도시나 시골 마을의 가장 밑바닥 계층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의외의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반전으로 결말지어지는 황당하고 부조리한 삶을 묘사하고 있다.
한국에 번역 출판된 그의 소설은 <도망자>(이성현 옮김, 글항아리, 2018. 원제: 下面,我该干些什么)다. ‘시간을 죽이며’ 살아가는 인생의 무료함과 공허함에 미칠 것 같아서 아무 죄 없는 착한 여학생을 무참하게 살해한 한 소년에 관한 이야기다. 여학생을 살해하고 도망 다니던 중 무능하고 멍청한 경찰들이 끝내 자신을 잡지 못할 것 같아서 스스로 자수한 뒤 재판받는 과정에서 그는 살인 동기를 ‘무료함’이라고 말해 충격을 던져줬다. “사람들은 항상 반신불수 환자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다. 매일매일 기적은 발생하지 않고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변하지 않고 끊임없이 반복될 뿐이다. (…) 마침내 어느 날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을 때 결심했다. (…) 당신들은 쫓고 나는 도망가는 것이다. 아주 간단하다.” 이 소설은 작가 자신도 인정했듯이 카뮈의 <이방인>과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소설은 현재 세계 약 25개국에서 번역 출판됐다. _편집자

“촌(村)보다 더 밑으로 내려가는 곳은 없다. 이곳은 세계의 끝이다. 나는 거기서 연애를 두 번 했다. 말하자면 사실 그건 단지 무료했기 때문일 것이다. (…) 어느 날 오후, 나는 혼자 산봉우리를 향해 걸어갔다. 산꼭대기에서 나는 멀리 굽이굽이 이어져 있는 산들과 움푹한 땅 위로 솟아나 있는, 우리 마을의 집들과 똑같이 생긴 집들 그리고 길 위에서 농부 몇 명이 소를 끌고 우둑하니 집으로 돌아가는 풍경들을 봤다. 사위가 어둑해졌다. 어두운 밤은 커다란 두 팔처럼 나에게 테를 둘러씌울 것이다. 나는 아마도 여기서 싹싹하고 유순한 아가씨와 아이들을 낳고 기르며, 그렇게 평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나는 눈물이 쏟아졌고 그 자리에서 욱하듯이 맹세를 했다. 지금 바로 출발해서 진(镇. 중국 농촌의 행정구역 단위)으로 가고, 현(县)으로 가자. 그래도 성에 차지 않으면 시(市)로 가고 성(省)으로 가고 연해 지역으로 가고 직할시로 가고 수도로 가고 뉴욕으로 가자.” ―자전적 소설 <모범청년>(模范青年)

“그는 ‘세계의 끝’에서 왔다. ‘세계의 끝’에서 시와 성으로, 연해 지역으로, 수도로, 그리고 미국 뉴욕까지 가는 데 성공했다. 2002년, 26살의 청년 아이궈주(艾国柱)는 자신이 ‘세계의 끝’이라고 부른 어느 황량한 시골 마을의 ‘따분하고 지루한’ 경찰 생활을 때려치우고 뉴욕까지 가는 긴 인생열차에 무작정 올라탔다. 탈출하지 못하면 그는 자신의 소설 곳곳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표현처럼 ‘그렇게 그들처럼 살다가 죽을 것’임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이십 대 말단 직원은 삼십 대 부주임으로 변할 거고, 삼십 대 부주임은 사십 대 주임이 될 것이다. 사십 대 주임은 2선으로 물러나서 조사연구원이 되었다가 오십 대의 원로동지(老同志)가 될 것이다. 이는 누렇게 될 것이고 피부는 축 늘어지며 머리도 벗겨질 것이다. 그렇게 한평생 살다가 무덤까지 갈 것이다.” ―단편소설 ‘의외의 살인사건’(意外杀人事件)

중국 작가 아이를 베이징의 서점 단샹쿵젠에서 만났다. 그는 아침 7~8시 일어나 식사하고 오전이나 오후에 글을 쓴다. 만난 날은 하루 분량을 쓰고 나와서 기분 좋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중국 작가 아이를 베이징의 서점 단샹쿵젠에서 만났다. 그는 아침 7~8시 일어나 식사하고 오전이나 오후에 글을 쓴다. 만난 날은 하루 분량을 쓰고 나와서 기분 좋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하루에 최소한 800~1천 자를 꾸준히

그곳을 벗어나지 못했더라면 그는 아마도 ‘세계의 끝’에서 밤마다 마작판 자리를 옮겨 다니고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살다가 진즉에 병들어 죽었을 거라고 했다. 그곳은 생각만 해도 절망스러운 무덤 같은 세계였다. 몇 년 전 친척의 부음을 듣고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간 그는 1980년대에 자신의 큰누나와 함께 동네 구멍가게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던 여자가 아직도 판매원으로 일하는 걸 보고선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세계로 돌아간 것 같았다고 했다. 변한 게 있다면 옛날에는 성냥을 팔았지만 지금은 라이터를 팔고 이십 대의 얼굴이 주름살과 검버섯 자욱한 오십 대 후반의 늙은 얼굴이 됐다는 사실. 그것은 아주 공포스러운 장면이었다. 그가 다시 찾아간 ‘세계의 끝’은 여전히 그렇게 변함없이 무기력하게 늙어가고 있었다. 26살에 그곳을 탈출했던 말단 청년 경찰 아이궈주는 20여 년이 흐른 뒤 중국 문단이 주목하는 작가 아이(阿乙)가 됐다. ‘세계의 끝’에서 온 작가 아이는 지금 중국의 중심, 수도 베이징에 안착했다.

아이는 자신의 집 근처 서점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곳은 그의 집에서 걸어서 3천 보 정도 되는 거리에 있는 베이징의 유명 서점 단샹쿵젠이다. 단샹쿵젠은 서점 안에 카페를 겸한다. 그는 이곳에 자주 와서 글을 쓴다. 글을 쓰다가 지치면 서점의 책을 구경하거나 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곳에 오면 자신의 ‘허영심을 만족시킬 수 있어서’라고 한다. “이곳 카페에서 글을 쓰다 보면 마치 내가 교향악단의 지휘자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컴퓨터를 켜고 글을 쓰고 있으면 마치 내가 지휘자이고 다른 사람들이 내 뒤에서 나를 지켜보며 예의 주시하는 듯한 느낌을 받거든요. 일종의 허영심이죠. 그래서 집에서 글을 쓰다가 무료해지거나 뭘 해도 지금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 집을 나와 이곳으로 와요. 나와 비슷한 사람들 속에 앉아서 모든 사람의 응원과 지지를 받으며 글을 쓰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의 일상은 아주 단조롭다. 몇 시에 자고 일어나서 반드시 뭘 완성해야 한다는 군대식 규율을 가진 일상은 아니지만 보통 아침 7~8시쯤 일어나 식사하고 몸과 마음 상태에 따라 오전에 글을 쓰기도 하고 오후에 쓰기도 한다. 고정된 목표는 없지만 하루 최소한 800~1천 자는 꾸준히 쓰고 있다. “하루에 최소한 그 정도도 못 쓰면 남은 하루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아요. 뭘 해도 내키지 않죠. 오늘도 다행히 이 인터뷰를 하기 전 오전에 이미 하루 쓸 분량을 다 썼기 때문에 이렇게 기분 좋게 나와서 이야기할 수 있어요. 안 그랬더라면 인터뷰하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을 거예요.”

중국 작가 아이는 “카페에서 글을 쓰다 보면 교향악단의 지휘자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인터뷰하면서 아이는 자신의 노트와 함께 여러 표정을 보여줬다.

중국 작가 아이는 “카페에서 글을 쓰다 보면 교향악단의 지휘자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인터뷰하면서 아이는 자신의 노트와 함께 여러 표정을 보여줬다.

스타카토의 짧은 문장, 감정 없는 냉혹한 문체

그는 아내와 단둘이 산다. 아내는 그의 일상의 버팀목 같은 존재다. 10년 전 그는 연애 두 달 만에 결혼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고향에 있는 아버지가 “너도 이제 결혼해야지!”라고 끊임없이 채근했지만 눈 한 번 깜짝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는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아내만 있으면 된다”는 오글거리는 말로 아내에 대한 ‘깊은 감정’을 표현했다. 그는 소설 속 차갑고 냉정한 문장들과는 달리 의외로 풍부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아이의 소설을 읽은 독자와 평론가들은 흔히 그의 소설의 가장 큰 특징으로 ‘감정 없는 냉혹한 문체’를 꼽는다. 다른 소설가들의 작품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화려한 수사나 미문이 거의 없고, 음악으로 치면 마치 스타카토처럼 짧고 날카롭게 비수를 겨누듯 독자의 심장과 머리를 내리친다. 나는 그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온몸이 강한 전기에 감전된 듯 전율을 느낄 때가 많았다. 등장인물들의 생각이나 인생 여정을 감정 없는 아주 짧은 한 문장 속에 녹여낸 표현이 자주 ‘기습’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이다. “그들은 진지하게 살았지만 이미 죽음의 문턱에 서 있다. 멀지 않아 내 차례가 돌아올 것이다. 우리들은 마치 줄을 서서 죽어가는 것과 같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그는 자신의 ‘문체’와는 달리 부드럽고 따듯한 표현을 자주 했다. 또 누구보다 더 진지하게 살고 있지만 죽음의 문턱에 가서 줄을 서듯이 죽어가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그는 아주 맹렬하게 최후까지 살아남아서 쓰고 싶은 소설을 마음껏 쓰고 싶어 했다.

아이의 본명은 아이궈주이다. 1976년 중국 남쪽 지방의 장시성 루이창 출생인 그는 고등학교 졸업 뒤 경찰학교에 들어갔다. 경찰학교를 마치고 고향 마을에서 두 시간 반 정도 떨어진 황량한 시골 벽지 마을로 첫 발령을 받고 경찰 인생을 시작했다. 그에 따르면 대도시 출신이 아닌 자신처럼 소도시나 촌에서 자란 아이들의 진로는 ‘뻔하다’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 당시 반에서 대학을 갈 수 있는 성적을 받은 이는 총 4명 정도였고 그중 자신은 3등이었지만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 정도로 압축됐다. 사범대학이냐 경찰대학이냐. 중국 소도시나 촌에서 학교 선생과 경찰이라는 직업은 가장 인간다운 ‘존중’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이자 신분이어서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재수해서 더 좋은 대도시 대학을 가는 것보다 3년제 경찰 전문대를 가라고 했다. ‘아버지의 말을 거스른 적이 거의 없던’ 아이궈주는 순순히 경찰학교에 들어가 그럭저럭 학교생활을 하다가 또 그럭저럭 졸업했고, 그렇게 그럭저럭 한평생 무난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경찰이 됐다. 하지만 첫 발령을 받은 시골 벽지 마을에 부임하는 순간부터 그는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재 사진은 아이가 보내줬다. 아이 제공

서재 사진은 아이가 보내줬다. 아이 제공

세상의 끝에서 뉴욕까지

독립된 건물조차 없어 식당 건물 2층에 세 들어 있던 파출소의 말단 경찰 시절, 그는 매일 밤과 낮을 하루도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 없었다. 도박꾼이나 불법 매춘행위 단속 같은 ‘소일거리’ 외에는 딱히 사건이라 부를 만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촌구석 마을에서 달리 무료함을 달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날 술자리에서 반농담조로 동료들에게 “나는 뉴욕으로 갈 거야”라고 말한 뒤 밤새도록 술을 진탕 퍼마시고 또 밤새도록 농약 냄새 같은 비린내 나는 토악질을 해댔다. 그런 무의미한 날을 살아가던 어느 날, 그는 정말로 ‘뉴욕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토악질 나올 만큼 절망적이었던 그 세계를 떠났다. 그가 자주 소설 속에서 ‘세상의 끝’이라 부르던 곳에서의 탈출이었다. 그가 기차를 타고 떠나던 날, 아버지는 노발대발해서 온몸을 부르르 떨었고 걸음조차 제대로 걷지 못하는, 전족을 한 할머니는 그의 발목을 붙잡고 “나 죽는다, 죽는다”라고 통곡했다. 그날의 상황을 묘사해놓은 자전적 소설 <모범청년>에서 그는 이렇게 독백하고 있다. “나는 독한 바이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없이 떠나왔다.”

아이는 2002년 26살이던 어느 여름날, ‘세계의 끝’을 벗어나 정저우로 왔고 그 뒤 상하이, 광저우를 거쳐 베이징에 안착했다. 그는 그 도시들의 한구석에서 초라한 방 한 칸을 전전하며 기자나 편집자 생활을 하면서 이를 악물고 버텨나갔다. 2008년 전업작가가 된 뒤에는 자신의 책이 번역 출판된 도시 뉴욕으로까지 날아갔다. ‘세상의 끝에서 뉴욕까지’ 날아간 그는 아이궈주의 삶을 버리고 아이라는 필명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한 번도 자신이 작가가 되리라고 생각을 못했던 그는 2000년 이후 인터넷 여기저기에 각종 글을 꾸준히 올렸다. 그러던 2008년 어느 날, 지인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우연히 알게 된 뤄용하오(조선족으로 중국에 처음 인터넷 블로거 홈페이지를 만든 유명 기업가)가 인터넷에 올라온 그의 글을 읽은 뒤 여러 출판업자에게 소개했고 그의 도움으로 첫 소설 <회색 이야기>(灰故事)가 출판되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곧바로 중국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왼쪽부터) 아이 작가의 책은 <도망자>가 한국어로 출간됐다. 스타카토 문장의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책이다. 제3회 한중일 동아시아문학포럼에서 3국 대표 작가들이 발표한 내용을 엮은 책 <문자공화국의 꿈>에서도 그의 글을 만날 수 있다. 중국어로 출간된 아이 작가의 소설과 에세이, 회고록. 박현숙

(왼쪽부터) 아이 작가의 책은 <도망자>가 한국어로 출간됐다. 스타카토 문장의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책이다. 제3회 한중일 동아시아문학포럼에서 3국 대표 작가들이 발표한 내용을 엮은 책 <문자공화국의 꿈>에서도 그의 글을 만날 수 있다. 중국어로 출간된 아이 작가의 소설과 에세이, 회고록. 박현숙

힘과 용기가 되어준 베이다오

2010년 두 번째 소설 <새가 나를 봤다>(鸟,看见我了)가 발표되자 중국 현대 시인 가운데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베이다오가 그를 두고 “근래 몇 년간 내가 읽었던 중국 작가 중 가장 우수한 작가”라고 극찬했다. <새가 나를 봤다>라는 단편집에는 자신이 경찰로 재직했던 시골 마을을 주 배경으로 해서, 그 마을에 사는 온갖 비루한 인간 군상이 등장하고 주로 살인사건과 연루돼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이의 소설에는 대부분 자신이 ‘세계의 끝’에서 경험하고 관찰했던 인물과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베이다오는 나중에 직접 그에게 전화해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글을 쓰라”고 격려했다. 격려는 그에게 ‘글을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과 용기가 됐다. “베이다오 선생님이 친히 전화를 걸어서 나를 격려해줬던 일은 아주 벅찼어요. 만일 이창동이나 박찬욱 같은 유명 영화감독이 어느 날 갑자기 영화 대학의 한 학생에게 직접 전화해서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지 말고 앞으로 꿋꿋하게 영화를 만들라’고 격려한다면 그 학생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자신의 마음속 영웅으로부터 재능을 인정받는다는 건 정말로 아름답고 멋진 경험이랍니다.” 베이다오는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아이의 인생에 구세주가 됐다. 그가 도저히 글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심하게 병들어 큰 수술을 몇 차례 받아야 했을 때 베이다오는 두말없이 거금의 수술비를 보내왔다. 조건은 단 한 가지. 돈 때문에 글쓰기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 젊고 재능 있는 작가가 병원비와 수술비 걱정으로 펜을 놓을까봐 걱정했던 것이다.

그는 현재 캐슬만병이라는 희귀 질환을 앓고 있다. 최근에야 겨우 병명을 알게 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정해진 치료법이나 약이 있는 건 아니다. 한 달에 한 번 병원에 가서 약물치료를 받고 있고, 몸에 무리가 갈 정도로 과로해서 글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과 제때 밥을 잘 챙겨 먹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예전에 몸을 너무 혹사해가면서 글을 쓴 탓인지 몸이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지금은 하루 네 시간 이상 글을 쓰지 않으려 하고, 되도록 아픈 몸과 많은 타협을 하면서 끈질기게 버티고 살아남아서 쓰고 싶었던 글을 다 쓰고 싶다고 했다.

최초로 공개하는 필명에 얽힌 비밀

그는 지금 자신의 작가 인생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소설이 될 것으로 믿는 ‘역작’을 쓰는 중이다. 제목만 미리 공개하자면 <약혼자>(未婚妻)다. 이 소설은 기존의 소설기법과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한다. 최근 들어 온 힘을 다해 읽으며 공부하고 있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처럼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전작들과는 완전히 다른 작풍의 소설을 쓰고 있다. 그는 소설의 첫 페이지를 나에게 보내줬다. 파란색 글자에 ‘내 시력으로는’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아주 작은 크기로 씌었다. 컴퓨터로 글을 쓸 때 그는 항상 파란색 글자에 크기는 11로 놓고 쓰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고 파란색이 눈에 편하고 글자 크기 11 역시 자신이 보기에 가장 편하기 때문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 언론에만 털어놓는 ‘비밀’ 한 가지를 공개했다. 아이라는 필명에 얽힌 이야기다. 중국 언론 등에는 대충 자신이 남자 형제 중 둘째이고 원래 자신의 성이 아이(艾)이기 때문에 이것들을 조합해서 아이(阿乙)라 지었다고 둘러댔지만, 사실은 자신이 짝사랑했던 여자와 관련됐다 한다. 그 여자의 이름이 Z로 시작하는데 Z를 그대로 쓰면 들킬 것 같아서 그걸 비슷해 보이는 한자 乙로 교묘하게 바꿨을 뿐이라고. 이건 정말로 세상에 처음 털어놓는 ‘비밀’이라고 했다. 이제 더는 비밀이 아니게 됐지만 말이다. 비밀을 털어놓은 뒤 그는 결국 탈진하고 말았다. 인터뷰가 2시간이 넘어가자 숨차고 힘들어서 당장에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표정이 된 그는 “몸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 쉬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의자에 푹 꺼질 듯이 앉아 있었지만, 눈은 한없이 저 멀리 바라보고 있었다.

베이징=글 박현숙 자유기고가, 사진 김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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