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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 만다꼬! [21WRITERS①]

[한겨레21이 사랑한 논픽션 작가]<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쓴 김하나 작가 인터뷰
등록 2022-03-26 13:46 수정 2022-03-28 09:24
사진=박승화 기자

사진=박승화 기자

2019년 에세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등장은 출판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결혼으로 이뤄진 부부,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로 구성된 이른바 ‘정상가족’이 아닌, 새롭고 다양한 가족에 관한 책이 다수 출간됐지만 그 가운데서도 이 책은 단연 돋보였다. 결혼이 ‘정답’이 아닐 수 있고, 다른 방식으로도 재밌고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줬을 뿐 아니라 고양이 네 마리와 함께 사는 여자 둘의 현실적이면서도 유쾌한 이야기 자체도 ‘읽을 맛’이 났기 때문이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일본, 대만, 중국에서도 출간됐다. 이 책은 독자에게 김하나(46) 작가의 존재감을 묵직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김하나를 떠올릴 때, 쓰기만큼 말하기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는 그가 인기 있는 독서 팟캐스트의 진행자이기 때문이다. 신뢰감을 주는 중저음의 목소리, 그 속에 담긴 유머감각에 빠져들다보면 나도 모르게 내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게 된다. 2022년 3월4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국어 경찰’과 ‘빅토리 노트’

“글쓰기에 매혹된 적은 없어요. 글읽기에 매혹됐을 뿐이죠.”

언제 글쓰기에 매혹됐냐는 질문에 김하나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러나 그는 태생부터가 글쟁이가 될 환경이었다. 중학교 국어 교사에 이어 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오랜 세월 강의하다 은퇴한 아버지는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었다. 아버지의 국어 사랑은 유난했다.

부산에 살던 어린 시절, 온 식구가 함께 TV를 보다가 출연자가 “깨끄치”라고 발음하기라도 하면 어머니와 오빠와 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곧 아버지의 쩌렁쩌렁한 불호령이 떨어진다. ‘깨끄시’지, ‘깨끄치’가 뭐꼬! ‘깨끗하다’의 부사형은 ‘이’를 붙여서 ‘깨끗이’란 말이다! 저런 무식한 놈들이 마이크를 잡고서는…. -<힘 빼기의 기술>, ‘나의 국어 경찰 아버지’ 중

역사 교사이던 김하나의 어머니는 지금도 딸보다 먼저 새로 나온 책을 읽을 정도로 다독가다. 김하나가 인생에서 가장 많이 읽은 책 ‘빅토리 노트’의 저자이기도 했다. ‘빅토리 노트’가 무엇인가 하면 1976년 김하나의 어머니가 그를 낳은 뒤 꼬박 5년간 쓴 육아 일기다. 노트에는 뜬금없이 이탤릭체로 ‘빅토리 노트’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김하나가 스무 살이 될 무렵 감춰뒀던 이 노트를 줬다.

<힘 빼기의 기술>에는 ‘빅토리 노트’ 일부를 옮겨놓았는데, 어머니 이옥순 여사의 간결하고 명확한 기록 사이사이에 배어나는 은근한 유머감각 때문에 읽는 재미가 있다. ‘빅토리 노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고 싶었단 말에 김하나가 반가운 답을 들려줬다. “곧 책으로 나올 거예요. 예전에는 그저 개인적인 기록이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생각이 바뀌어서 저한테만 귀중한 기록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요즘은 기록하기가 정말 쉽지만 사진 한 장 없이 빛바랜 종이에 직접 쓴 기록이 전해주는 것이 너무 많더라고요. 하지만 이 기록의 주인공은 제가 아니라 엄마잖아요. 엄마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치아라, 마!” 이러셨거든요. 그래서 제가 오랫동안 설득했고 지금은 동의했다기보단 “아이고 마, 니 알아서 해라” 이러셨어요. 5~6월쯤 나오니까 기대하세요.”

사진=박승화 기자

사진=박승화 기자

광고주를 위한 글에서 나를 위한 글로

‘국어 경찰’이자 시인인 아버지, 곧 책 <빅토리 노트>(가제)의 작가가 될 어머니 밑에서 자란 김하나가 작가가 된 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작가를 꿈꿔본 적은 없다고 한다.

김하나는 직업 작가가 되기 전 여러 해 유능한 카피라이터로 실력을 인정받으며 광고회사에서 일했다. 에스케이(SK)텔레콤 ‘현대생활백서’, ‘네이버-세상의 모든 지식’ 등 굵직한 광고 문구를 썼고, 아시아의 젊은 광고인들이 실력을 겨루는 ‘아시아태평양 광고제’에 참가해 2006년 한국인 최초로 1등인 영로터스상을 받았다. “10년 정도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나에게 월급을 주는 광고주가 사랑받게 하려면 어떤 말을 써야 할지 열과 성을 다해 궁리했어요. 광고 문구에는 제 이름이 안 들어가잖아요. 제 노력의 결과는 광고주가 사랑받는 것으로 귀결되죠. 그런 글쓰기를 10년 했더니 제 안에서 이런 글쓰기 말고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 내 방식대로 나를 위해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죠.”

그렇게 처음 쓴 책이 2013년 나온 <당신과 나의 아이디어: 창의성을 깨우는 열두 잔의 대화>다. 에세이스트로 유명한 그의 데뷔작이 ‘자기계발서’였다는 점은 다소 의외다. “당시 일종의 깨달음 같은 걸 얻었다고 생각했어요. 카피라이터로 일하는데, 그 깨달음 덕분에 일이 재밌어졌고 인생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까지 긍정적으로 변했죠. 이 깨달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책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계약된 것도 없었지만 그냥 썼어요. 우연한 기회에 출판사 분을 만났다가 원고를 보여드렸더니 흥미를 보였고 그렇게 이 책이 나왔죠.” <당신과 나의 아이디어>는 2021년, 8년 만에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첫 책이 나온 뒤 직업 카피라이터로서 사고의 유연함에 관해 쓴 책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 <15도> 또한 출판계에서 호평받았지만 대중적 인기는 얻지 못했다. 김하나의 책이 큰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한 건 2017년 에세이 <힘 빼기의 기술>부터다. 이후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와 <말하기를 말하기>가 나왔다.

자기계발서와 에세이의 작법은 어떻게 다를까. “자기계발서는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독자에게 설득하고 동기화하기 위해 많이 노력한다면, 에세이는 그럴 필요가 없죠. 오히려 나는 나, 너는 너 세상에 이렇게 사람들이 다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게 미덕이죠. 다만 에세이를 쓸 땐 자꾸 ‘내가 그렇게 중요한 사람인가, 내가 뭐라고’ 이런 죄책감이 있어요. 그런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해요.”

여자 둘과 고양이 넷의 동거기를 다룬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김하나의 마음속에선 에세이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자기계발서를 쓰듯 목적의식을 갖고 이 책을 썼다. 그래서 김하나의 ‘조립식 가족’ 형태를 읽고 ‘다른 삶’을 꿈꾼다는 비혼 여성들의 말을 들을 때면 기분이 좋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마냥 에세이가 아니었어요.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는 것이 가족구조의 완전 기본인 것처럼 다들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고도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사회에 도움이 되고 다양성에도 기여하는 일이 아니겠냐는 명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메시지를 사회에 던지겠다는 목적의식을 갖고 썼죠.”

*김하나, 최대한 힘 빼고,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사람 [21WRITERS②]으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1771.html

출간 목록

<당신과 나의 아이디어>(세개의소원, 2021): 창의성을 말하는 수많은 책과는 궤도를 달리하는 이 책은 뜬구름 같은 창의성의 허상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우리를 주눅 들게 하는 무거운 단어 ‘창의성’을 버리고, 드넓은 가능성과 유용성을 가진 단어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김영사, 2015): 김하나가 아이디어의 원천을 얻는 방식을 낱낱이 털어놓은 책. 문학, 음악, 미술, 정치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지식을 연결하고 새롭게 조합하는 이 책은 섬세하게 일상을 바라본 사람만이 비로소 천재적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15도>(청림출판, 2017): 남다른 아이디어와 안목이 필수인 직업을 가진 저자는 독자의 하루에 매일 하나씩 다르게 생각할 거리 155개를 준다. 그저 흘려보내던 하루에 시점을 조금만 달리해도 생각지 못했던 아이디어가 차오른다.

<힘 빼기의 기술>(시공사, 2017): 여러 매체에 기고한 단편들과 과거에 기록해둔 수필 중 김하나 작가가 가장 아끼는 에피소드를 모은 책으로, 유연한 사고방식이 가져다주는 유쾌한 일상을 이야기한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위즈덤하우스, 2019): 완벽한 싱글 라이프를 즐기던 두 여자, 김하나, 황선우. 4인 가족이 기준인 이 나라에서 살아갈수록 아쉬웠던 두 사람이 혼자도 그렇다고 결혼도 아닌, 조립식 가족을 이뤄 한집에 살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말하기를 말하기>(콜라주, 2020): 누구보다 내성적이던 작가가 어떻게 말을 업으로 삼게 됐는지 그 과정을 담담히 보여준다. 구체적인 말하기 지침이 아닌, 말하기에 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보게 하고, 이것을 시작으로 독자가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말하기 방법을 찾을 수 있게 한다.

사진 김하나 제공

사진 김하나 제공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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