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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 최대한 힘 빼고,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사람 [21WRITERS②]

[한겨레21이 사랑한 논픽션 작가]<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쓴 김하나 작가 인터뷰
등록 2022-03-26 22:50 수정 2022-03-28 18:23
사진 김하나 제공

사진 김하나 제공


*김하나, 만다꼬! [21WRITERS①]에서 이어집니다.

장 보러 갈 때도 그리는 ‘마인드맵’

김하나가 글을 쓸 때 꼭 필요한 것은 펜과 줄 없는 노트인데, 마인드맵을 그리기 위해서다. 김하나는 2012년부터 마인드맵을 써왔고 생활과 일 전반에서 이를 활용한다. 강연 준비, 칼럼 구상, 책 목차 짜기 등에는 물론이고 장 보러 갈 때, 여행 계획 짤 때도 마인드맵을 그린다. “마인드맵은 좌뇌와 우뇌를 동시에 활발히 사용하기 때문에 내용을 기억하는 데 유리해요. 줄 노트에 줄을 맞춰서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고 줄 없는 노트에 사방팔방으로 그림과 함께 낙서하는 형식이기에 그것 자체가 저에게 주는 자극도 있고요. 글을 쓰다보면 나도 모르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제 생각 지도인 마인드맵을 다시 보면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죠.”

‘마감 노동자’로서 김하나의 마감 루틴(습관)이 궁금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몇 시간씩 쓴다거나, 마감 전에 미리미리 써둔다는 ‘모범생’ 같은 답을 기대하면서. 그러나 김하나는 “마감이 없어야 잘 쓴다”고 했다. “연재하거나 매일 조금씩 쓰는 것은 잘 안돼요. 저는 자발성이 중요한 사람인데, 아무도 시키지 않은 마감을 할 때는 오히려 스스로 분량과 기한을 정해서 잘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약속된 마감이 있으면 숙제 같아서 하기 싫어져요. 편집자님들이 출판 계약이 밀려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저는 그것을 못 견디는 사람이거든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좋은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 정답 같지만 김하나는 독서가 ‘숙제’가 되지 않길 바란다. 김하나의 독법은 ‘책을 업신여기자’이기 때문이다.

독서는 대화다. 물론 내 반응을 작가가 알아차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책을 읽는 동안은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에 반응하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즐겁지 않은 대화를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 -<힘 빼기의 기술>, ‘오른쪽 귀에 연필을 꽂고’ 중

김하나가 요즘 ‘대화’하고 있는 작가는 <형식들>을 쓴 캐롤라인 레빈이다. “제 마음속 작가는 너무 많아서 절대 꼽을 수 없어요. 최근 읽은 책 중 좋았던 작가에게 열광하는 경우가 많아요. <형식들>은 학술서라 어려울 수도 있지만 유연하고 창의적인 시각으로 문학과 사회와 정치를 바라보는 책이에요. 또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도 제 글쓰기에 도움이 된 책이에요. 글쓰기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구현해서 쓴 책이라고 생각해요.”

김하나가 글을 쓸 때 꼭 필요한 것은 펜과 줄 없는 노트다. 마인드맵을 그리기 위해서다. 김하나 제공

김하나가 글을 쓸 때 꼭 필요한 것은 펜과 줄 없는 노트다. 마인드맵을 그리기 위해서다. 김하나 제공

말하기, 공동의 기록

믿을 수 없겠지만 김하나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아는 친척을 만나도 인사를 잘 못할 정도였다. 그런 그에게 중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김하나, 기억해. 너는 말하는 사람이 될 거야”라고. 선생님의 선견지명대로 김하나는 말하는 사람이 됐다. 2017년부터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 김하나의 측면 돌파>를 진행했고 각종 강연, 공개방송, 관객과의 대화(GV), 대담 진행 등 말하는 일이 쓰는 일보다 많을 정도다.

김하나에게 말을 잘하는 ‘비법’을 물었다. “말하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듣기입니다. 말하고 있을 땐 배울 수가 없어요. 일방적인 연설을 하더라도 듣기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야 말하기도 잘할 수 있어요. 대화는 물론이고요.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데, 인터뷰도 열심히 질문을 들어야지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모든 말하기는 잘 듣기가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하나가 스스로를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읽고 쓰기가 듣고 말하기보다 먼저 오는 것은 읽고 쓰기의 호흡이 더 느리기 때문이에요. 천천히 받아들이고, 느리게 사유하고, 꼼꼼히 정리하고 나서 듣고 말하기에 나서죠. 듣고 말하기는 아무리 천천히 해도 즉시적이어서 실수하거나 무례를 범하기 쉬우니까요.”

김하나의 말하기는 쓰기에 어떤 영향을 줄까. “저는 좋은 게 있거나 어떤 에피소드가 생기면 친구들에게 말해요. 친구들이 제 외장메모리가 되는 거죠. 항상 메모도 하고 마인드맵도 그리지만 그건 혼자만의 기록인 데 비해, 말하기는 말함으로써 공동의 기록이 되죠. 그렇게 사소한 것이 좀더 풍성한 메모가 되고 이것이 글쓰기의 소재가 되고 표현이 되죠. 말하기가 짧은 선행 글쓰기나 스케치가 된다고 생각해요.”

‘힘 빼기’는 김하나의 말하기, 쓰기뿐 아니라 인생 전반의 철학이다. ‘힘들 때 힘을 빼면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김하나는 이 내용으로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 CBS)에서 강연했는데, 이 강연은 2020학년도부터 중학교 교과서 말하기 파트에 수록됐다(미래엔 출판사 발행). “저는 수영 영법 중 평영을 제일 좋아하는데요. 팔을 젓고 발을 차고 난 뒤 글라이드하는(미끄러지듯 움직이는) 구간이 있거든요. 그때는 몸에 힘을 빼고 물살에 나를 맡겨야 해요. 그때 제일 많이 앞으로 나가거든요. 충분히 기다리지 않고 팔을 젓고 발로 차면 글라이드할 수 있는 구간이 줄어들어요. 이게 말하기에서도, 쓰기에서도, 인생에서 중요한 깨달음이더라고요.”

힘을 빼려고 해도 힘을 빼는 게 쉽지가 않다. 김하나는 그럴 때 “만다꼬!”를 외쳐보자고 한다. ‘만다꼬’는 ‘뭐 하러’ ‘뭐 한다고’ ‘뭘 하려고’ 등에 해당하는 경상도 사투리로, 김하나 집안의 가훈이다.

왜 이것을 하는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사는가? 나는 이것을 진정 원하나? 아니면 다들 그렇게 하니까 떠밀려서 하는 건가? 내 안에 내재된 ‘만다꼬’에 대한 대답을 찾으면서 나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 무엇인지에 대해 짚어보게 되는 거였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불필요한 부분에 쏟고 있던 힘을 거두어들일 수 있었다. -<힘 빼기의 기술>, ‘프롤로그’ 중

쓸 수 있는 만큼은 쓰자

김하나의 다음 책은 고전 읽기에 관한 책이다. “예전 같았으면 고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훌륭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뭐라고 이걸 쓰나 생각했을 텐데, 이제는 작가로서의 길을 계속 걸어왔으니 내가 쓸 수 있는 만큼은 써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들더라고요. 예를 들어 서울은 거대한 도시고, 제가 모르는 동네도 많잖아요. 하지만 서울 안에서 제가 잘 알고 좋아하는 골목길도 있단 말이에요. 고전 읽기에서 그 골목길 정도는 쓸 수 있지 않을까요?”

김하나가 쓰는 고전 읽기라… 기대가 된다. 그는 분명 힘을 빼고 썼을 것이다. 우리는 아마 그 글을 읽고 힘이 날 것이다.

에필로그

김하나 작가를 섭외한 뒤, 인스타그램에 그와 인터뷰한다는 말을 슬쩍 흘렸다. 몇몇 기자 동료와 지인이 ‘부럽다’ ‘나도 작가님 만나보고 싶었다’ ‘후기 들려줘’라는 연락을 해왔다. 기자 일을 하면서 수많은 유명인과 인터뷰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부러움을 산 것은 방탄소년단(BTS) 콘서트 취재 이후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 부러움을 표시한 사람들은 모두 ‘비혼 여성’이었다. 김하나는 비혼 여성들의 ‘워너비’이자 ‘롤모델’이었다.

그런 그를 인터뷰하려니 힘이 많이 들어갔다. 겁이 나기도 했다. ‘프로 기자’처럼 보이고 싶었다. 좋은 질문은 무엇인지, 인터뷰이에 대한 예의와 배려는 어떻게 표하는지 수도 없이 고민했다.

어떤 질문을 할지 고민하면서 김하나가 <말하기를 말하기>에서 조언한 대로 마인드맵을 그려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노트를 펼치고 펜을 들어서일까. 어색했다. 인터뷰에 앞서 그의 책을 전부 다 다시 읽었는데도, 대체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앞이 깜깜했다. 결국 나는 노트를 덮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익숙한 방식으로 질문을 써내려갔다. 힘 빼기는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

인터뷰가 끝난 뒤, 나는 김하나에게 마인드맵을 그리는 것도, 힘을 빼는 것도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내게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오늘 하루 일과부터 마인드맵으로 그려보라”고 조언했다. 너무 잘하려고 하면 더욱 힘이 들어간다는 말과 함께.

인터뷰 기사를 쓰기에 앞서 기사를 어떻게 쓸지 마인드맵으로 그려봤다. 시작이 어려웠을 뿐 순식간에 몇 시간의 인터뷰가 종이 한 장에 정리됐다. 기사가 다른 방향으로 갈 때마다 생각 지도가 돼줬다.

그렇다. 김하나와의 인터뷰는 마인드맵을 바탕으로 힘을 빼고 써보았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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