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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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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복숭아 효소 폭발 사건

해마다 다른 맛과 색의 각종 효소들, 가스 관리 실패로 사달
등록 2022-01-10 01:58 수정 2022-01-10 01:58
주방 한쪽에 자리잡은 내 보물 효소와 술들.

주방 한쪽에 자리잡은 내 보물 효소와 술들.

우리 집 부엌 한편에 나만의 아주 작은 공간이 있다. 그곳엔 내가 요리할 때 종종 쓰는 보물이 가득하다. 대부분은 내가 직접 만든 각종 효소다. 스무 개 남짓 밀폐된 병에 담겨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주로 굵은 땀방울을 흘리던 농번기 때 밭에 다녀온 주말에 만들었다. 피곤한 몸을 이끈 채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공들여 재운 녀석들이다. 가족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데, 때로 서운하기도 하나 그보다 자주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건드리지 않아줘서….

이 가운데 3분의 1은 개복숭아 효소다. 밭 옆 들판에 개복숭아 나무 대여섯 그루가 자생한다. 6월이면 갓난아기 주먹만 한 개복숭아가 수두룩하게 열린다. 잔털이 매우 많아 서너 번은 물에 담근 채 문질러 씻은 뒤 설탕에 재운다. 초가을까지 석 달 이상 기다리면 개복숭아 성분이 듬뿍 우러난 효소를 얻을 수 있다. 기관지에 그렇게나 좋단다. 주로 겉절이를 무칠 때 설탕 대신 쓰는데, 향이 강하지 않아 썩 잘 어울리는 편이다.

같은 지방에서 난 포도로 술을 담가도 해마다 일조량과 강우량 같은 기상 변화에 따라 포도주 맛이 달라지듯이 개복숭아 효소도 해마다 조금씩 맛과 색이 다른 듯하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4년치 효소를 보유하고 있다. 개복숭아 효소가 쓰임에 비해 너무 많은 듯해 2021년에는 수확량의 절반 이상을 술로 담갔다. 향이 기가 막히다.

그러나 향에 관한 한 칡순 효소야말로 ‘넘사벽’이다. 5월에 담근 아카시아꽃 효소도 감히 도전장을 내밀기 힘들 정도다. 칡순은 호르몬 조절에 아주 좋다고 한다. 나 같은 중년이 갱년기 벽을 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가끔 물에 연하게 타 먹는다. 하지만 명심하자.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역시 밭에 자생하는 뽕나무에 열린 오디를 정성스레 수거해 만든 효소를 몸에 기운이 떨어진다 싶을 때 동네 마트에서 탄산수를 사다 레모네이드처럼 타 먹거나 따끈한 물에 차로 마셔도 좋다. 밭에서 난 건 아니고 재래시장에서 돈 주고 산 모과, 배, 생강, 레몬도 좋은 효소 재료가 된다. 개인적으로 레몬 효소는 제육볶음 같은 돼지고기 요리에 단맛을 낼 때 훌륭한 조합을 보여줘 애용한다.

이렇게 담근 효소를 서울에 사시는 부모님께 종종 상납한다. 시골에 사는 자식이 해드릴 수 있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주일 전 부모님 댁에 들렀다가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열흘쯤 전 대낮에 싱크대에서 갑자기 ‘뻥’ 하며 뭔가 폭발하는 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황급히 문을 열어보니 재작년에 내가 갖다드린 개복숭아 효소 병이 터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고 한다.

효소를 만드는 과정에선 늘 미생물 작용으로 가스가 많이 발생하는데, 이를 잘 빼주지 않아 병이 그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진 것이다. 유독 2020년치를 만들 때 그 관리를 잘하지 못했는데 기어코 사달이 났다. 우리 집에선 내가 한두 달에 한 번씩 마개를 열어주며 관리했는데…. 효도하려다 하마터면 큰 불효를 저지를 뻔했다.

글·사진 전종휘 한겨레 사회에디터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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