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속 예서가 무대로 갔다. 예서는 제10회 손바닥문학상 대상을 받은 ‘파지’(최준영 작)의 주인공이다. 산다이테크 공장에서 일하던 예서는 회사가 경기도에 공장을 짓고 공장을 하청화하면서 파업에 나선다. 몇몇 직원에게 회사 쪽은 본사 자리를 제안하며 회유한다. 몇몇은 받아들이고 몇몇은 천막을 펼치고 농성을 계속한다. 예서는 어중간하다. 같은 회사 내 커플인 진철 역시 예서를 어떻게 응원해야 할지 모르겠다. 예서는 파업하다가 회유하는 쪽지에 적힌 영업팀으로 향한다. 영업팀에서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을 한다. 일도 그렇지만 사람들도 자꾸 밀어낸다. 어디에 속하고 싶던 예서는, 마지막 결단을 한다.
소설이 연극화된 것은 손바닥문학상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2017년 소설 속 예서는 외로웠고, 사람들로부터 버려진 꾸깃꾸깃한 파지가 된 듯했다. 2021년 연극 속 예서는 좀더 센 자기장 속으로 들어간다. 2021년 11월2일 연출과 출연자들을 만나러 서울 광진구 자양동 지하의 연습 스튜디오로 향했다.
박다정이 ‘예술인 인력사업’ 공모에 선정된 뒤 4년 전 읽었던 작품 ‘파지’를 떠올리면서 연극으로의 전환은 시작됐다. 자신이 주인공 예서를 맡고 최준영에게 연출을 제안했다. 둘은 대학교 동창 사이고, 최준영은 영화연출을 전공했다. 최준영은 당시 상을 받으며 ‘소년급제’한 듯 동창들 사이에 유명해졌다. 등장인물인 구선 역을 맡은 박지수 역시 동창이다. “그때 글을 읽고 되게 감동받아서 장문의 카톡을 보냈죠.” 조 과장 역에 이우정, 반장 역에 차시윤, 주하 역에 임혜선까지 5명이 연극을 만들기 위해 의기투합했다.
단편영화 3편을 만들어봤지만 연극은 최준영에게 새로운 도전이다. “희곡은 소설보다 덜 친절하죠. 소설에서는 이런 감정이에요, 할 수 있지만 연극에서는 대사로만 전달되지 못하는 게 있죠.” 참여 배우들이 큰 의지가 됐다. 연기자들은 배역 속 인물이 되어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소설과 달리 회의를 정말 많이 했죠. 연극은 배우 예술이니까요.”
각각의 배우가 만드는 ‘입장들’은 시대가 맞물리는 주제의 한 대목이 됐다. 4년 사이 시대는 무엇이 옳은지 혼란스러운 시절로 접어들었다. “이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각자의 입장에선 다 맞는 것들이거든요.” 반장은 파업이 잘되게 해야 하고, 과장은 상품이 많이 팔려야 하고, 예서도 자기가 살려고 파업했다가 기획팀(연극에선 ‘기획팀’으로 가게 된다)으로 또 옮기는 것이다. “모두 도덕적인 선택인 거죠. 모두 맞는 주장을 하는데 그것이 부딪치는 것이죠.”
소설 ‘파지’에서 화합할 수 없는 입장들은 간략하게 드러났다. “직원들은 뒤에서 예서를 흉봤다. 옮기란다고 진짜 옮기냐고 눈치 없다는 사람도 있었고, 동료를 배신했다는 사람, 본인들은 면접에 시험에 힘들게 입사했는데 예서가 쉽게 사무직으로 신분 세탁했다고 억울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연극에서는 ‘입장들’이 잘 드러나도록 연인 대신 친구가 들어갔다. “사랑이라고 하는 감정이 파업이라고 하는 계층 간 갈등을 조금 덜 드러나게 하잖아요. 사랑을 하니까 그것만으로 포기할 수 있죠. 친구는 그런 것을 벗고 자기 처지를 강변하면서 갈등이 더 고조돼가죠.”
독자 5분을 초대합니다소설에서처럼 삭발이 중요하게 등장한다. 삭발이 소설에서는 화해의 모티브였다면 연극에서는 갈등의 정점에 위치한다. 소설과 크게 달라진 점은 연극에서는 예서가 삭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삭발하면 1회 공연밖에 안 되잖아요.”(박다정) 삭발 장면은 예서의 독무로 표현된다. 무용 전공인 임혜선과 이우정이 안무를 맡으면서 독무와 군무를 넣어 볼거리를 만들었다. 깔리는 음악도 새롭게 만들었다.
연극 <파지>는 서울 신촌의 원엠스페이스(1M SPACE)(서울시 서대문구 연세로4길 27 지하 1층, 신촌역 3번 출구 3분 거리)에서 11월27일(토) 오후 3시와 7시, 11월28일(일) 오후 4시, 세 차례 무대를 가진다. 이 무대에 독자 5명(연극 티켓 각 2장)을 초대한다. <한겨레21> 독자에게도 코로나19 이후 첫 연극무대가 될 법하다. 참석하고 싶은 공연 시간을 전자우편(anyone@hani.co.kr)에 적어 11월19일(금)까지 보내면 된다(선착순 마감).
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저희 밥 한 번도 못 먹었어요.” 코로나19 시대 대부분 연극인의 고충이다. “대본 회의와 대사 연습도 모두 줌(화상회의 플랫폼)으로 했습니다.” 그렇게 연극이 만들어졌다. 그들이 겪은 ‘어제와는 다른 세계’다. 이 주제를 들었을 때 어떤 이야기가 떠오르는지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최준영 요즘 해파리에 관심이 많아요. 어부가 배를 타고 나갔는데 어제와 달리 해파리가 엄청 많아진 거예요. 해파리에는 기후변화와 코로나19로 달라진 산업시스템 모두 영향을 미쳐요. 어부는 해파리를 퇴치하려 고군분투하면서 이런 상황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박지수 한 사람을 만나는 건 한 세계를 만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코로나19로 사람들과 단절돼 지냈잖아요. 그런 세계와의 절연, 이런 것을 생각해봤습니다.
차시윤 저는 버추얼 배우를 떠올렸어요. 지금 가상 모델이 많은데 이제 가상 배우가 나오면, 이들은 얼굴이나 몸매 모두 고칠 필요 없이 완벽하고 액션도 더 잘하고 외국어도 완벽하죠. 그런 점에 배우들이 위기감을 느끼는 이야기.
이우정 앗, 저도 비슷한데요. 요즘 키오스크(무인단말기)든 일상에 인공지능(AI) 기술이 들어온 게 많은데요, 코로나19가 그런 기술의 일상화를 앞당겼어요. 그것을 통해 일을 잃는 사람도 많을 텐데, 나는 이 속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박다정 저는 고립된 공간이 떠올라요. 고립 공간에 있다가 ‘위드 코로나’가 되면서 밖으로 나왔을 때의 느낌을 표현해보고 싶어요.
임혜선 저도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머리에 떠오르네요. 주거공간 형태가 바뀌었는데 인간들의 공간감도 달라진 것 같아요. 그것을 무용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고요. 그리고 제가 공기에 예민한데, 코로나19로 공기가 맑아졌는데 ‘위드 코로나’ 되면서 공기가 예전으로 돌아가잖아요. 이런 공기니까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쓰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대상 논픽션·픽션 불문 ‘어제와는 다른 세계’를 주제로 한 문학글
분량 200자 원고지 50~70장
응모 방법 아래아한글이나 MS워드 파일로 작성해 전자우편(palm@hani.co.kr)으로 접수
*전자우편 제목에 [제13회 손바닥문학상 공모] 쓰고 ‘작품명’ ‘응모자 이름’ 포함(메일 본문 내 응모자 연락처 기재)
마감 11월14일(일요일) 밤 12시
발표 12월13일 배포되는 <한겨레21> 제1392호(2021년 12월20일치)
문의 palm@hani.co.kr(전자우편으로만 받습니다)
상금 대상 300만원, 가작 100만원(제세공과금 본인 부담)
*‘파지’ 인터넷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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