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이 구려요.” “뉘앙스를 완전 못 살렸잖아, 이게 뭐야!”
여태껏 외국 콘텐츠의 ‘자막’에 대한 평가와 불평불만은 우리 몫이었다. 현재 한국에서 외국 콘텐츠를 소비하는 대부분의 경우 더빙 대신 자막을 통해 콘텐츠를 소비하게 돼 있다. 더빙을 거의 필수적으로 하는 프랑스와 달리 한국은 더빙 시장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성우들이 더빙한 외화가 브라운관을 가득 채웠던 시절도 있었다.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가 전성기였다. <맥가이버> <엑스파일> 같은 히트작도 연이어 나왔다. 하지만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가 터지면서 성우들의 목소리는 갈 곳을 잃기 시작했다. 지상파 3사는 2010년대 들어 제작비 부담을 덜기 위해 외화 프로그램에 더빙을 입히는 대신 자막을 깔아 내보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오역 논란’도 자주 불거졌다. 특히 팬이 많은 마블 시리즈의 경우 <어벤져스 3> 등의 오역이 크게 문제가 되기도 했다. 오역과 의역 때문에 영화의 감상을 망쳤다며 분노하는 관객의 게시물이 번역가의 소셜미디어(SNS)를 뒤덮기도 했다. 이런 종류의 실망과 분노는 비영어권 한국어 사용자들의 전유물처럼 보였다.
상황이 바뀌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의 흥행 덕분이다. 2021년 10월5일 영국 BBC 방송은 한 트위터 이용자의 불평을 소개하며 <오징어 게임>의 청각장애인용 자동 영어 자막 문제를 수면 위에 올렸다. 트위터 이용자 ‘영미 메이어’는 자신의 계정에 “번역이 아주 나쁘다”며 드라마의 훌륭한 대사를 번역이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고 썼다. “꺼져” 같은 강한 대사를 “저리 가”(Go away)로 번역하고 ‘오빠’를 ‘올드 맨’(old man)으로 번역하는 등 원어의 뉘앙스를 잘 담아내지 못해 캐릭터를 덜 살렸단 누리꾼 평가도 이어졌다.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다른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오징어 게임>은 전세계에서 시청순위 1위를 기록하며 흥행 가도를 달리는 중이다. 이젠 한국어의 섬세한 뉘앙스를 다른 언어로 표현해내기 위해 애쓰는 시대가 왔다. 케이(K)-콘텐츠의 세계적 흥행이 불러온 전세 역전이다.
천다민 유튜브 <채널수북> 운영자
관심 분야 문화, 영화, 부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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