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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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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씨앗이 있다는 소리만 들으면

농민들 손에 언제 들어올지 모르던 조생통일벼를 한발 앞서 재배한 남동생
등록 2021-08-23 15:23 수정 2021-08-24 01:55
구둘래 제공

구둘래 제공

오늘은 나는 장사를 하는데 오직 농사 얘기에만 관심이 있었던 남동생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남동생은 오직 농사짓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습니다. 잠을 안 자고 어떻게 하면 농사를 잘 지을까 늘 연구하고 열심을 다했습니다. 그 집은 농한기도 없이 바빴습니다. 겨울이면 상에다 콩을 깔아놓고 제일 크고 잘생긴 알을 고릅니다. 강냉이고 팥이고 가마니를 다 뒤집어가며 우량종을 골라놓습니다.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고르느라 끄떡끄떡 졸다가 상에다 이마를 찧기도 합니다. 콩알을 쥐고 상 앞에 쓰러져 자다가 큰일이 난 것처럼 깜짝 놀라 일어나 또 고릅니다. 거름을 마련하느라고 마구간도 돼지우리도 매일 짚을 깔아줍니다. 동생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모든 곡식이 탐스럽고 별난 종으로 보이게 됐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농사를 잘 짓느냐

어떻게 이렇게 농사를 잘 짓느냐고 사람들은 묻습니다. 동생은 농담으로 어디든지 좋은 씨앗이 있다는 소리만 들으면 멀리 가서 두 배의 돈을 주고 구해다 심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가을이면 씨앗을 바꾸러 옵니다. 동생의 콩 한 말을 자기네 콩 두 말을 갖고 와서 바꾸기도 합니다.

남동생은 잠시 만나도 씨앗 얘기를 합니다. 어느 날은 이런 이야기를 해줍니다. 정부가 필리핀에 있는 국제미작연구소에서 통일볍씨를 들여왔답니다. 혹시 씨앗을 실은 비행기가 테러당할까봐 공군 비행기가 양쪽에서 에스코트하고 들여왔답니다. 필리핀에서 삼모작하던 볍씨를 우리나라에서는 일모작만 해야 해서 연구한 결과 만생종(같은 작물 가운데서 다른 것보다 늦게 성숙하는 품종) 통일볍씨가 만들어졌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후에 맞지 않았습니다. 다시 필리핀으로 가서 우리나라 기후에 맞는 조생종(일찍 성숙하는 품종) 통일볍씨를 만들었답니다. 조생종 통일볍씨를 구하는 게 소원이라고 만나기만 하면 이야기했습니다.

하루는 해가 다 졌는데 남동생이 왔습니다. 평창읍 중리 노성산 밑에 사는 최부잣집 어르신이 조생종 통일볍씨를 구해왔다는 소문이 있으니 매형이 같이 가달라고 했습니다. 그 집 아들이 경기도 수원 농장에 연구원으로 있어서 신종 볍씨를 구했다는 소문이 있답니다. 동생은 어디서 듣는지 정보가 빨랐습니다. 서둘러 저녁을 먹고 정종 한 됫병을 샀습니다. 돼지고기도 한 근 사다 안주를 만들었습니다. 술만 갖고 가서 그 집을 번거롭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어두컴컴한 밤에 두 사람은 멋쩍은 마음을 누르고 어르신 계세요 계세요 불렀습니다. 어르신은 무척 의아해하셨지만 들어오라고 하셨습니다.

동생과 남편은 넙죽 절하고 갖고 간 정종을 따라 올렸답니다. 얘기를 들은 어르신은 자기네도 얼마 안 되지만 농사지으려는 젊은 사람의 성의가 놀라우니 조금만 나눠주겠다고 했답니다. 누구야 누구야 손주딸을 불러 호롱불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르신이 곳간으로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다음해에는 농촌진흥원으로 달려가

손주딸이 호롱불을 비추고 어르신은 작은 버럭지(그릇)에 담가놓은 볍씨를 한 움큼 건져올렸습니다. 동생과 남편은 큰 비닐봉지를 양쪽에서 잡고 기다렸습니다. 어르신은 물에서 볍씨 한 움큼을 비닐봉지에 담아주고 다시 허리를 숙였습니다. 더 주는 줄 알고 기다렸는데 어르신은 손을 헹구고 일어섰습니다. 동생은 물에서 건진 볍씨 한 홉을 들고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좋아했습니다. 아직 아무도 조생통일벼 이름도 몰라서 농민들 손에 볍씨가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데 자기는 한발 앞서서 재배해보면 많은 소득을 얻을 것이라고 좋아했습니다.

동생은 마냥 행복해하며 그 밤에 옥고개재를 걸어서 집으로 갔습니다. 조생종 통일벼 한 줌은 못자리 한쪽에 뿌렸는데 냉해를 받아서 누리끼리한 것이 잘 자라지 않았답니다. 아무도 못 보게 집 가까운 논 한가운데 옮겨 심었답니다. 가을이 되니 벼이삭이 보통 벼이삭보다 배는 더 컸습니다. 멋지게 고개를 척 숙인 것이 아주 멋있었습니다. 우량종 가운데 우량종이었습니다. 벼이삭을 보면 가슴이 쿵쿵 뛰었답니다. 한 줌의 볍씨를 심었는데 두 말이 넘게 수확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해는 이른 봄 농촌진흥원에 씨앗을 구하러 갔답니다. 재배 기술도 가르쳐달라고 했답니다.

나이 많은 허만호 국장님이라는 분이 자네 같은 사람이 애국자라고 등을 토닥이면서 신종 볍씨가 다 심고 지금 밥식(밥그릇) 하나 담아놓은 게 남았다며 주었답니다. 여전히 못자리는 재래종처럼 싱싱하지 않고 누리끼리하게 자라더랍니다. 동네 사람들은 “전찬기(동생 이름)가 올해 농사를 망쳤다”고 비웃었답니다. 동생은 누가 뭐래도 심어본 경험이 있어서 별로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못자리를 처음 시작할 때는 날씨가 좀 쌀쌀하지만 모를 심고 나면 따뜻해져 벼가 잘 자랐습니다. 어른 장뼘이 넘는 벼이삭은 겸손하게 고개를 푹 숙이고 바람이 불면 일렁거리며 황금물결을 만들었습니다. 어디서 보지 못한 풍경입니다.

비웃던 사람들이 볍씨를 바꿔달라고 몰려와

정부도 아직 시험재배를 할 때 동생은 조생통일벼 재배에 성공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디서 소문만 듣고 신종 통일벼는 처음에는 잘되다가도 수확기가 되면 벼알이 우수수 떨어진다더라 하며 별의별 소리를 다 합니다. 정말로 벼농사가 다 망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 같았습니다. 벼알이 떨어지기 전에 남보다 빨리 타작했습니다. 아무리 비웃어도 그해 벼 수확은 대박이 났습니다. 일반 토종벼를 할 때보다 수확이 두 배 넘었습니다.

비웃던 사람들이 볍씨를 바꿔달라고 모여서 왔습니다. 농사지을 때 약 올린 것 생각하면 안 바꿔주고 싶지만, 재수가 좋아서 먼저 볍씨를 구할 수 있었으니 그냥 바꿔줬습니다. 볍씨를 바꿔주고 농사법도 잘 가르쳐줬습니다.

전순예 1945년생·<내가 사랑한 동물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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