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트위터리안의 ‘배민맛’ 설명. 트위터 화면 갈무리
“치킨 시킬까?”
‘답정너’처럼 식구에게 물었다. 셰어하우스에서 친구들과 생활하는데, 서로 식사 당번을 돌아가며 일주일에 한두 번 맡고 있다. 그런데 그날은 요리하기가 너무 귀찮았다. 식구와 공장식 축산과 육류 소비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했지만, 그때는 그런 ‘의식’을 붙잡을 여력이 없었다. 어쨌든 돈을 버니까 돈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배달이 왔고, 치킨이 담긴 종이상자를 펼치고, 치킨 조각을 들어 한입 베어 물었다. 예상대로, 내 혀에 ‘배민맛’이 퍼졌다.
배민맛이란 배달음식 포장 비닐을 허겁지겁 찢는 것에서 시작해, 다 먹고 난 뒤 생각보다 맛있지 않다고 느끼고, 벌건 고추기름이 남은 플라스틱 용기들을 허탈하게 바라보며 ‘배달음식 끊어야지’라는 결심까지 하는 것을 뜻한다. 배민맛이란 용어를 처음 봤을 때, 그 뜻을 듣기도 전에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배달앱을 켜는 건 대부분, 식사는 해야겠는데 요리할 여유가 없어 배달음식을 시키는 상황일 때가 많다. 더욱이 꼭 한창 식사 시간대라서 1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허기를 붙잡다가 도착한 배달음식을 ‘허버허버’ 먹다보면 양념 범벅이 된 플라스틱 용기가 남는다. 배달음식에는 보통 고기와 치즈가 듬뿍 들었지만 채소가 적어 다 먹고 나면 속이 더부룩하다. 남은 음식이 아까워 냉장고에 넣어두지만, 다음날이면 그 음식에 대한 욕구까지 차갑고 축축하게 굳어 있다. 그렇게 음식을 냉장고에 방치하다가, 또 요리할 여력이 없어 ‘이거라도 먹어볼까’ 생각해서 꺼내보면 이미 상해 있다. 코를 막고 남은 것을 음식물쓰레기통에 버린다. 나에겐 이 모든 과정이 배민맛이다.
배민맛을 말하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같은 음식이라도 직접 매장에 가서 사먹으면 괜찮다고 한다. 매장에선 갓 나온 음식을 먹고 플라스틱 용기가 아닌 식기에 담겨 나오는 등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배민맛의 핵심은 ‘대충 식사를 때운다’인 것 같다. ‘편의점맛’, 그리고 배달음식이나 편의점 음식으로 때우면서 보는 적당히 자극적이고 적당히 여운이 남는 넷플릭스 작품을 뜻하는 ‘넷플릭스맛’이란 말만 봐도 그렇다.
내 요리 담당을 매식으로 해결하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을 때, 식구들 말로는 “도우리 증발 시기”였다. 그 정도로 직장에서 일에 매달리고, 귀가하면 못다 한 일을 생각하다 잠들고, 주말에는 기절하듯 내내 자느라 식구의 얼굴을 볼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돈만 있으면 음식은 물론 웬만한 상품은 로켓배송으로 그때그때 필요한 걸 채우고, 요즘에는 빨래나 청소도 맡길 수 있으니까.
나는 ‘자본 없는 자본주의 인간’일지 모른다! 평소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대안적인 삶을 지향한다고 생각했는데 공동체 생활이 아니었으면 ‘배민맛 삶’이지 않았을까? 근데 그게 그렇게 안 좋은 삶일까? 우선 붙잡은 직장에서 경력을 쌓고, 능력을 계발하고, 돈을 벌어둔 다음에 삶을 챙겨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갑자기 결혼까지 하고 싶어졌다. (계속)
도우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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