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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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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에 오염되지 않은 원형을 찾아서 [웹툰 고사리박사]

웹툰 <극락왕생> 작가 고사리박사
등록 2021-03-20 11:12 수정 2021-03-25 22:17
ⓒ고사리박사, 문학동네 제공

ⓒ고사리박사, 문학동네 제공

한 가지 주제로만 제작하는 특별한 잡지를 네 번째 만듭니다. 2020년 코로나 뉴노멀(제1315·1316호), <한겨레21>이 사랑한 작가 21명(제1326·1327호), 디지털성범죄 끝장 프로젝트 너머n(제1340호)에 이어 2021년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조금씩 바꾸고 있는 ‘체인저스 21명’을 펴냅니다. 지속가능한 세계, 평등한 세계, 자유로운 세계, 더불어 사는 세계를 꿈꾸며 체인저스들은 오늘도 한 걸음씩 내딛습니다. 때론 변하지 않는 사회를 보면서 분노하지만 어쨌든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고 그 작은 변화의 흐름에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한 이들은, 작지만 값진 승리를 향해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도 동행해볼까요? _편집자주

그럴 리 없지만, 가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작품을 볼 때가 있다. 오픈형 웹툰 플랫폼인 딜리헙에 등장한 <극락왕생>을 봤을 때 그런 기분이었다. 불교 신화를 재해석한 세계관 안에서 펼쳐지는 모험의 규모에, 동시대적 여성주의 관점으로 불교의 가르침을 새롭게 바라보고 구성하는 메시지, 현재의 웹툰 흐름과는 거리가 먼 펜선을 이용한 밀도 높은 작화를 결합하는 솜씨는 너무 신박하고 탁월해서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지장보살의 협시 중 하나인 도명존자가 귀신이었다가 인간으로 환생한 고교생 박자언을 도와 극락왕생을 시켜주어야 하는 미션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신나는 판타지 모험물의 약동으로 시작해 이 신화적 세계에서조차 존재하는 가부장적 질서에 대해 질문하고 이를 해체한다. 지난 몇 년간 웹툰계에서 가속화한 여성서사의 물결 속에서도 <극락왕생>은 언제나 높은 성취를 이룬 작품 목록에서 빠지지 않았다. 심지어 작가 이름도 ‘고사리박사’라니. 대체 어디서 이런 작가가 나온 걸까.

가끔 만화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래서 고사리박사는 뭐 하던 사람이래요?”라는 질문이 오갔다. 심지어 작품의 상업적·비평적 성공 이후 인터뷰들에서도 얼굴이나 본인 약력을 공개하지 않는(이번 인터뷰에서도 그러하다) 원칙 때문에 그에 대한 신비감은 더욱 모락모락 피어났다. 물론 실제 만난 그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작가는 아니었다. 그가 피와 살로 이뤄진 실존인물이라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는 자신의 개인사를 굳이 말하진 않았지만, 인터뷰 내내 동시대의 수많은 관계망과 담론 안에서 현재의 자신과 <극락왕생>이 만들어졌음을 이야기했다. 사진과 약력은 빠졌지만, 이 인터뷰 안에서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사는 구체적 인물의 존재감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고사리박사, 문학동네 제공

ⓒ고사리박사, 문학동네 제공

마른 여성 캐릭터를 체격 있는 여성으로

2020년 1월 <극락왕생> 1부를 완결하며 2021년에 돌아오겠다고 했는데, 어느새 2021년 3월이다. 어떻게 지냈나.

“시간이 너무 빠르다. 연재할 땐 그렇게 시간이 안 가더니. 연재 당시에는 휴재 기간에 여행도 다니고 새로운 경험을 충분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코로나19 때문인지 시간이 후딱 가버렸다. 오롯이 ‘인풋’의 시간으로 삼고 싶었는데 인풋은커녕 연재 당시보다 두 배로 ‘아웃풋’을 뽑아낸 것 같다. 당장 <극락왕생> 단행본 작업도 있었고, ‘젊은 작가 테마 단편집’이라는 가제로 현재 활동하는 여성 작가들과 함께 테마 단편집도 준비했다. 4월 출간인데 그 작업만으로도 몇 달 걸렸다. 지난 한 해 동안 했던 작업이 공개되지 않아서 남들 눈엔 노는 것처럼 보였을 수 있으니 좀 억울하다.”

철없는 질문일 수 있지만 <극락왕생>의 경우 작화부터 연출까지 웹툰보단 출판만화에 훨씬 가까운 편이라, 단행본 작업이 타 웹툰보단 수월했을 것 같다.

“질문처럼 처음부터 출판 스타일로 그린 터라 단행본이 원본 원고에 더 가까운 편이다. 그런데 단행본 작업을 하며 미처 생각 못했던 문제를 발견했다. 초반부 원고와 후반부 원고의 작화 차이기 눈에 보이더라. 미흡한 부분을 보강하고, 밀도도 높였다. 특히 초반 원고에선 여성 캐릭터들이 되게 말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체격 있는 여성을 잘 못 그려서. 그냥 넘어가기에는 캐릭터의 튼튼한 외형이 작품에 중요한 요소라 생각해서 고민 끝에 수정했다. 1화는 완전히 새로 그렸고, 2화부터는 많이 수정하는 방식으로. 그래서 단행본이 생각보다 느리게 나오고 있다.”

생각보다 바빠 인풋을 별로 못했다고 했지만 그 와중에 기억에 남는 경험이나 만남 같은 것은 없을까.

“코로나19 때문에 기대만큼 사람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내가 만날 수 있는 범위 안에선 최대한 많이 만났다. 특히 여성주의 활동가들. 나도 창작 분야 활동가라고 생각하는데, 상당히 자연스럽게 그들과 연결되며 만나는 게 신기했다. <극락왕생>은 처음부터 2030 페미니스트를 타깃으로 한 작품인데 그들이 실제 작품을 보고 무엇을 느꼈고 어떤 생각을 했고 작품이 그들의 삶에 어떻게 도움이 됐는지 직접 들으니까 정말 고무되더라. <극락왕생>이 여성 개인의 삶을 담아내는 이야기인 만큼, 실제 이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너무 중요하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삶을 보고 관찰하는 과정을 통해 내 삶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니 인풋이 없었다고는 못하겠네.”

삶의 지평 확장에서 2015년 트위터와 메갈리아를 필두로 한 ‘넷페미니즘’ 물결도 큰 경험이었겠다.

“당시 ‘메르스 갤러리’를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생겨난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은 서구의 그것과는 계보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굉장히 독특한 폭발력의 맥락이 있다. 그때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를 조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상의 페미니즘이 여성들의 인식을 크게 전환시킨 오늘날과 비슷한 경험이 한국의 지난 세대에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 거다. 서구적 여성주의의 수입이 아닌, 한국만의 독자적 계보를 찾아내고 싶었고, 지금까지 기록되지 않은 여성의 이야기, 여성의 신화를 만화로 엮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게 지금의 <극락왕생>인 거고.”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만화 <극락왕생>에는 바다가 자주 등장한다. 부산 해운대는 작가 고사리박사의 고향이다.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만화 <극락왕생>에는 바다가 자주 등장한다. 부산 해운대는 작가 고사리박사의 고향이다.

작가 고사리박사가 상상한 다양한 귀신을 구경하는 것도 <극락왕생> 감상의 큰 재미.

작가 고사리박사가 상상한 다양한 귀신을 구경하는 것도 <극락왕생> 감상의 큰 재미.

기록되지 않은 걸 발굴한다는 것은

멋진 기획이면서도 모순적인 게, 기록되지 않은 것을 어떻게 발굴할 수 있을까.

“거기에 창작자의 상상력이 개입하는 거다. 나는 <극락왕생>에서 불교 신화를 모티브로 하는 여성주의 서사를 쓰는데, 사실 그 모티브가 되는 신화도 누군가의 창작물인 거다. 신화가 재밌는 건, 그 신을 만든 인간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뭔가 거룩하거나 수정 불가능한 사실에 대한 기록이 아니다. 혹시 아나. 내 작품이 300년이나 1천 년 뒤엔 불교의 한 종파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 여기에 고증을 따지는 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완전 창작이 아닌 불교 신화를 모티브로 선택한 건, 그 안에 여성주의를 위한 개념적·서사적 자원이 풍부하다고 본 걸까, 아니면 이러한 수정 작업을 통해 기존 신화의 남성중심적인 세계관을 전복하려는 의도가 큰 걸까.

“전자로부터 후자가 자연스럽게 연역된다. 한국 불교가 흥미로운 게, 한국에 있는 여성 신화들이 불교의 수입과 함께 불교 안으로 흡수됐다. 그래서 내가 할 일은 거기에 흡수된 여성 신화, 모계사회 여신 신앙의 원형을 찾아내는 거다. 그것이 어떻게 가부장제적 이야기로 윤색됐는지 역추적하는 거지. 여기에 상상력이 가미된다. 나와 내 주변 여성들의 삶을 통해 여성들의 관계가 단절되지 않았던 시기의 신화를 유추하고 재구성하는 거지. 과거 백인들이 흑인들을 지배하기 위해 흑인 간의 관계를 단절시켰다고 하지 않나. 과거 한국 여성들의 경우도 그렇지 않았을까. 남성들이 여성과 여성의 관계를 끊어내지 않았을까. 인간 대 인간으로서 여성 간 연결을 통해 가부장제에 오염되지 않은 여성 신화의 원형을 찾는 게 <극락왕생>에서 하는 일이다.”

현재 나오는 다양한 여성주의 만화 중 상당수는 남성 중심 세계를 비판적으로 재현하는 반면, <극락왕생>에선 아예 남성이 존재하지 않는 듯한 세계를 그리는 건 그 때문일까.

“모두 필요한 작업인데 서로의 전략이 다른 것 같다. 내 경우 농담 삼아 말하면 그런 남성들을 그리기엔 지면도 아깝다.(웃음) 조금 진지하게 말하면 여성끼리의 이야기를 하면 자연스럽게 남성은 해체된다. 여성 간 관계에 끼어들 수 없으니까. 그래서 레즈비언 관계는 그 자체로 여성주의적이라고 본다. 여성밖에 없고 남성이 존재하지 않아도 모든 유의미한 관계가 여성들 사이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때, 가부장제가 우리에게서 무엇을 빼앗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극락왕생>의 회당 가격은 3300원. 얼핏 들었을 때는 “그렇게 비싸다고?” 할 수 있지만, 에피소드 하나의 분량이 평균 80~100쪽에 육박한다고.

<극락왕생>의 회당 가격은 3300원. 얼핏 들었을 때는 “그렇게 비싸다고?” 할 수 있지만, 에피소드 하나의 분량이 평균 80~100쪽에 육박한다고.

왜 그 사람만 남성이죠, 그 질문을 듣고 싶어서

주인공 중 하나인 도명과 지장삼존을 이루는 무독귀왕만 남성인 이유가 있을까.

“바로 그 질문을 독자에게 듣고 싶었다. 왜 그 캐릭터가 남자냐고 물어보는 것 아닌가. 왜 여성이 아니고 남성이죠? 보통은 그 반대로 질문하니까. 여성이 기본값인 세계에서는 남성이 오점 혹은 어울리지 않는 얼룩처럼 느껴지는 거지. 서사 안에서 무독귀왕을 남성으로 설정한 건, 우선 지장보살과 협시인 무독귀왕, 도명존자, 이렇게 지장삼존의 관계성 안에서 지장과 도명의 관계가 특별해야 했기에 무독귀왕은 작품의 주요 서사에 절대 낄 수 없는 설정을 갖게 됐다. 남성이기도 하고 복장부터 불교 신화와 전혀 다르지 않나. 때로 재밌고 매력적일 수는 있겠지만 주요 인물들 관계에 끼지 못하는 그런 존재.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 보통 남성이 기본값인 세계에서 여성에게 주어진 역할이다. 그런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인터뷰 당시 고사리박사는 이런 전략이 한국적 맥락에서 이른바 ‘미러링’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부분적으로 인정했지만, 분명 그의 미러링은 설득과 논증의 전략과는 거리가 멀다. 메갈리아 초창기부터 미러링은 남성들에게 너희가 당연하게 생각하던 세상이 사실은 이렇게 이상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해주는 전략으로 쓰였지만 항상 효과적이었던 건 아니다. 이라영이 책 <타락한 저항>에서 정확히 지적했듯 “‘미러링’은 완벽하게 성공하기 어렵다. 거울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울을 들이대도 거울 속의 모습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여성들로만 관계를 맺는 <극락왕생>의 세계에서 남성의 세계, 가부장적 질서의 세계는 거울 속 대립항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대립항조차 되지 못한다. 고사리박사는 굳이 남성들이 자신의 모순을 인식하길 기대하는 대신, 여성들에게 도래할 미래에 대한 유토피아적 전망을 제시하는 길을 택한다. 그의 작품 세계가 현실 종교 교리의 도그마(신념이나 학설)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 종교적으로 느껴지는 건 이 지점이다. 종교는 수많은 비관의 근거 앞에서도 도래할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력의 자원을 서사적으로 풍부하게 제공한다. 그렇다면 철저히 현실적 문제의식에 발을 딛고 있는 고사리박사는 이런 개념적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까. 그는 어떤 ‘극락왕생’ 세계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까.

관음보살로부터 1년의 시간을 받은 자언은 하필이면 대입 시험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으로 돌아간다.

관음보살로부터 1년의 시간을 받은 자언은 하필이면 대입 시험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으로 돌아간다.

작품 안에서 불교 개념을 잘 활용하는 동시에, 또한 해체한다. 가령 1·2화만 봤을 때는 자언과 도명 콤비가 선행하며 자언이 극락왕생하는 과정을 그리는 모험물 느낌인데, 실제로는 극락왕생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의심하고 질문하며 2화까지 본 독자의 기대를 보기 좋게 배신한다.

“그래서 2화까지가 무료다.(웃음) 독자를 계속 배신하기 위해서. 배신당한다는 느낌은 좋은 감상이다. 그런 의심이 <극락왕생>의 테마다. 마땅히 이렇게 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에 대해, 당신은 그걸 왜 믿고 그게 대체 뭐라고 생각하느냐 질문하는 거지. 나는 그게 불교라는 종교의 교리와도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불교에 매혹된 게, 불교에선 만물에 이중적 성격이 있다고, 이중성 자체가 사물의 본질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극락왕생>에서도 이런 대사가 있지 않나. ‘이중적이지만 하나, 그것이 비로자나다.’ 나는 이 말이 웬만한 모든 사물의 이치를 설명해주는 것 같다. 우리가 뭔가를 하나로만 규정하기 어렵지 않나. 좋았던 일이 나쁜 결과를 주기도 하고 또 그 반대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 의심하며 살 수밖에 없다. 의심하지 않는 순간 급속도로 어리석어진다. 그 테마를 앞으로도 이어나갈 것 같다.”

2030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만화인 만큼, 작품은 우리가 그리워하는 출판만화의 ‘톤 앤드 매너’를 충실하게 구현한다.

2030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만화인 만큼, 작품은 우리가 그리워하는 출판만화의 ‘톤 앤드 매너’를 충실하게 구현한다.

‘윈윈’의 가치와 의심의 힘

그런 면에서 질문하는 태도를 지닌 자언이 가장 현명한 판단을 하는데, 오히려 지혜의 보살 문수는 혼자 판단하고 혼자 결정하다가 자언의 분노를 사는 등 계속 헛발질한다.

“똑똑한 사람이 많이 하는 실수 같다. 똑똑한 사람들은 결론을 먼저 내고 더는 의심하지 않기 시작한다. 안 될 것을 아는 거지. 사실 나도 마음 한쪽에선 알고 있다. 내가 죽을 때까지 여성해방이 오진 않을 거다. 더 비관적으로 보면 여성해방 이전에 환경파괴로 지구가 골로 갈 수도 있겠지. 그럼에도 내 안의 어리석음이 무언가 실천해보자고 바꿔보자고 추동하는 거다. 그걸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작품에서 그렇게 ‘왜’라는 질문을 잊은 존재가 귀신이다. 하지만 그들을 부정적으로 그리기보단 다분히 연민을 드러낸다.

“나는 <극락왕생>이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환영받는 기분이면 좋겠다. 스스로 소외된 사람, 내쳐진 사람, 단절된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고 연결되고 화합된 존재라고 느끼면 좋겠다. 귀신이 요괴와 다른 건 원래는 사람이었던 존재라는 거다. 그런 면에서 인간과 대등하지만 어떤 이유로 윤회의 질서 안에 정처 없이 떠도는 거다. 자언과 도명이 귀신을 돕고 싶어 하는 것도 스스로 깨닫든 깨닫지 못했든, 조금은 상황이 더 나은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극락왕생>은 자율적인 개인들이 타율적인 개인을 돕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타율적인 개인에게 자율의 상상력을 부여하는 것도 창작물이 해야 할 일이다.”

주인공 자언은 ‘윈윈’ 개념을 좋아하며 귀신을 돕는데, 작가 본인도 윈윈을 믿나.

“윈윈이 궁극적인 신의를 끌어낸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깎아서 저 사람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내게도 궁극적으로 이득이 되고 그에게도 이득이 될 때 서로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나와 딜리헙의 관계가 그랬다. 우리가 단순히 계약관계로만 끝났다면 이렇게까지 잘해내지 못했을 텐데, 딜리헙 쪽에서 <극락왕생>을 작품으로서 매우 좋아해줬고 나도 딜리헙이라는 플랫폼의 가치관을 좋아하다보니 서로 강한 시너지를 낼 수 있었다.”

그런 믿음과 작품에서 이야기하려는 의심의 힘은 어떻게 병행될 수 있을까.

“의심하기 때문에 믿음이 견고해진다. 내가 이 가치를 믿지만 또한 의심하는 거다. 의심할수록 내가 이걸 왜 믿고 싶은지 그 본질에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결국 다시 이중적이지만 하나인 비로자나의 이야기로 돌아가는 거지. 믿는 동시에 의심하는 이중성.”

고사리박사를 바꾼 것

내가 만나고, 기억하는 여성
이야기를 만들도록 이끄는 힘.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 나는 내가 만났던 여성들을 떠올린다. 그는 내 가족이고 친구이며 지하철에서 잠시 스쳐 지나갔을 뿐인 낯선 이다. 그들이 나를 변화시킨 만큼 나도 그들의 새로운 예감이 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믿음에 대한 질문
온몸에 힘이 빠지는 순간에는 쉽게 속아 넘어가고 싶어진다. 오늘 내일 당장 나를 무너뜨리는 것에 가까운 비극에 힘이 부칠 때. 그럴 때는 우주적 관점에서 낙관으로 황급히 도망치는 수밖에. 다 잘 풀리겠지… 알아서 해결되겠지. 하지만 그 순간 찌르듯이 파고드는 의심. 과연 그럴까? 아무것도 안 해도 알아서 잘 풀린다고? 그제야 비로소 번쩍 정신이 들면서 몸을 움직이게 된다.
레즈비어니즘
굳게 결심했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연결과 사랑을 언어로, 만화로 기록하기로. 새로 발견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줄곧 거기 있던 거였다. 연결과 사랑은 내가 만난 여자들 사이에 모두 있었다. 가족, 친구, 심지어 지하철에서 잠시 스쳐 지나간 당신에게도.
<극락왕생>의 큰 감상 포인트는 다름이 아니라 독자들이 직접 가꾼 ‘댓글창’에 있다. 여성 개인의 삶을 세밀히 펼쳐놓는 작품인 만큼, 그에 대한 화답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여자들이 있다.

<극락왕생>의 큰 감상 포인트는 다름이 아니라 독자들이 직접 가꾼 ‘댓글창’에 있다. 여성 개인의 삶을 세밀히 펼쳐놓는 작품인 만큼, 그에 대한 화답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여자들이 있다.

에필로그
지금까지 웹툰 작가 인터뷰를 수십 건 진행해오며 깨달은 게 있다면, 작품을 창조했다는 사실이 작품에 대한 모든 것을 안다는 뜻은 아니란 것이다. 작품의 의미란 결국 작가의 의도를 벗어나 수많은 독해와 소통의 관계망 속에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주 간혹,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그것이 이 세계의 지평에서 어떤 정치적 의미를 지닐지 거의 완벽한 수준의 이해를 보이는 작가들이 있다. 고사리박사가 그러했다.
그는 신화에 대한 매혹과 동시대적인 문제의식 사이에서 자신이 어떤 길을 선택하고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창작 지도를 높은 해상도로 지니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메시지의 선명함이 누군가에게는 프로파간다(선전)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리고 딱 그 의구심에 대해 그는 조금도 변명할 생각 없이 말했다. “예술과 프로파간다를 구분하려는 시도 자체가 촌스러운 거 같아요. 일상적 여성혐오 안에서 싸워야 하는데 무기를 갖는 게 뭐가 문제죠?” 문제일 리가. 그저 그의 무기가 앞으로도 날카롭게 빛나길 바랄 뿐. 그러니 <극락왕생> 2부를 어서 내놓아주세요, 박사님.

글 위근우 칼럼니스트, 그림 문학동네 제공

*1355호 - 체인저스 21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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