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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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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이 매일 먹는 ‘운세 칵테일’

사주 중독기 ① 각자 자기만의 종교를 배합하는 세대
등록 2021-01-09 22:47 수정 2021-01-10 10:16
유튜브의 운세 관련 콘텐츠들.

유튜브의 운세 관련 콘텐츠들.

사주, 그러니까 내가 태어난 연월일시를 닳도록 보고 또 봤다. 토익 시험 보는 날짜가 길할지, 나에게 도화살 같은 매력이 있는지, 언제쯤 취업할지, 내가 글을 계속 쓸 만한 위인인지 알고 싶어서였다. 처음에는 점집에 가서 사주를 봤지만, 한 회당 몇만원씩 드는 탓에 직접 정보를 찾게 됐다. 나중에는 사주 카페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할 만큼 어느 정도 사주를 해석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알아야 할 한자와 개념이 많아서 어려웠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삶은 왜 이렇게 흘렀는지 출생의 비밀(?)을 캐려는 열망 덕에 금세 익혔다. 나아가 내가 만난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 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좀체 알 수 없어서 타인들의 사주도 뻔질나게 들여다봤다.

사주 정보는 대부분 온라인에서 익혔는데, 나처럼 젊으면서 혹은 어리면서(중학생도 있다) 사주를 공부하거나 강의까지 하는 사람이 많아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사주뿐 아니라 점성술, 타로점, 수비학(숫자와 사람, 장소, 사물, 문화 등의 사이에 숨겨진 의미와 연관성을 공부하는 학문) 분야도 알게 됐다. 또 점 보는 건 어릴 적 신문 귀퉁이에 일일 운세 코너로만 봤는데, 좋아하는 예술가들도 작품에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난 원래 이런 말들은/ 재미라고 생각하는데/ 심리학을 공부했었고/ 휘둘린 적이 없는데/ 집으로 오자마자 눈물이 줄줄 났어”(신승은의 노래 <올해의 운세>) “(등장인물들의 체질을 만족시키는 저녁 메뉴를 정하는 중에) 저는 신축(辛丑) 체질, 혜성씨 갑자(甲子) 체질.”(이랑, 웹시트콤 <집단과 지성>) 나만 사주에 빠진 줄 알았는데 역시 사는 일은 나만 어려운 건 아니구나, 위안이 됐다.

요즘은 서울 혜화역이나 종로 일대 점집을 찾는 대신 스마트폰 앱이나 유튜브에 접속하고, 복채는 ‘좋아요’와 ‘구독’으로 내는 것 같다. 우리나라만의 얘기는 아닌 듯하다. 2020년에는 점성술 앱이 미국에서 ‘황금알 낳는 거위’라고 할 만큼 인기가 많다는 기사가 나왔다.

독일 작가 올리버 예게스는 <메이비(Maybe) 세대>에서 밀레니얼 세대의 운세 보기 현상을 ‘대안 종교 칵테일’에 비유했다. “우리 세대는 기존 종교에 등을 돌리는 대신 각자 자기만의 종교를 ‘배합’하고 있다. 배합 재료는 대개 루돌프 슈타이너의 사상, 이슬람 신비주의의 일종인 수피즘, 중세 유대교의 신비주의인 카발라, 힌두교, 불교 등이다. 여기에서 약간, 저기에서 약간, 그렇게 내용물을 덜어서 잘 섞으면, 짜잔! 혼돈과 밀림 속 21세기로부터 나를 지켜주고 마음의 평화를 안겨줄 약물이 탄생한다.”

예게스에 따르면 내가 21세기를 버티기 위해 매일 삼키는 약물은 ‘사주 한 컵에 점성술 한 스푼, 타로 한 닢, 에니어그램(9가지 성격 유형) 한 꼬집’이다. 내 룸메이트가 알려준 명상 교재에 사주 공부가 있는 걸 보면 그 교재를 구독하는 사람들의 약물은 ‘명상과 사주’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운세를 보는 이유로 흔히 미래에 대한 불안을 꼽는다. 하지만 요즘 운세 콘텐츠는 친구와 친해지는 법, 반려동물의 속마음, 저녁 메뉴를 정하는 일까지 두루 다룬다. 무당들끼리 ‘신기’(神氣)를 겨루는 유튜브 프로그램까지 나왔다. 이쯤 되면 운세는 예언을 넘어 힐링, 위로, 조언에다 엔터테인먼트 구실까지 한다.

도우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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