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2월1일 콩고민주공화국 동부 최대 도시 고마에서 피란민 여성이 가재도구 앞에서 망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5년 1월27일 중앙아프리카의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 동부 최대 도시이자 북키부주 주도인 고마를 무장반군 엠23(M23)이 장악했다. 인구 약 200만 명이 몰린 도시는 전날부터 사실상 전쟁터였다.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민주콩고 군병력은 반군의 명령에 따라 현지에 주둔하고 있는 유엔 평화유지군에 무기를 반납하고 투항했다. 주민 수천 명은 국경을 넘어 르완다로 피란길에 올랐다. 고장 난 영사기처럼 악몽 같은 옛 기억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고마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민주콩고(옛 자이르) 내전의 뿌리는 가깝게는 1994년 르완다 대학살, 멀게는 제국주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6년 지금의 르완다 땅을 장악한 벨기에는 소수 투치족을 내세워 인구의 85%에 이르는 다수 후투족을 ‘분할 통치’했다. 1962년 독립국가 수립 이후엔 상황이 정반대로 달라졌다. 다수 후투족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오랜 세월 군림해온 투치족은 변방으로 밀렸다. 북쪽으로 국경을 맞댄 우간다로 넘어간 투치족은 반군단체를 결성하고 국경을 넘보기 시작했다. 종족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1994년 4월6일 후투족 출신인 쥐베날 하비아리마나 당시 르완다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수도 키갈리 공항 인근에서 격추됐다.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을 포함한 탑승객 전원이 숨졌다. 이튿날부터 다수 후투족이 소수 투치족을 ‘바퀴벌레’라고 부르며 공공연히 ‘박멸’을 외쳤다. 그해 4월부터 7월까지 3개월 남짓 만에 투치족과 투치족 이웃을 도운 후투족 약 80만 명이 무참히 살해됐다. 학살은 우간다를 근거지로 활동하던 투치족 반군단체 르완다애국전선(RPF)이 키갈리를 장악한 뒤에야 막을 내렸다. 당시 RPF를 이끌었던 인물이 폴 카가메 현 르완다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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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은 또 다른 비극을 불렀다. 이번엔 투치족의 보복을 우려한 후투족 주민 약 200만 명이 피란길에 올랐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이 르완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민주콩고의 고마로 몰렸다. 삽시간에 난민이 불어나면서, 이들에게 제공할 물과 화장실 등 위생시설조차 마련할 수 없었다. 곧 전염병이 창궐했다. 의학 전문매체 랜싯은 1995년 2월11일치에서 “1994년 7월 말부터 불과 3주 만에 고마 일대에서 르완다 피란민 1만2천여 명이 콜레라로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카가메 정권은 학살에 가담한 후투족이 민주콩고를 근거지로 무장세력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르완다군은 후투족 무장세력 단속과 국경 지역에 자리를 잡은 투치족 주민 보호를 명분으로 무시로 민주콩고 땅을 밟았다. 르완다와 민주콩고는 1996년과 1998년 두 차례나 전면전을 벌이기도 했다. 갈등은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2025년 2월4일 고마에서 위생복을 입은 적십자사 요원과 자원활동가들이 무장반군 M23이 벌인 유혈사태로 숨진 이들을 매장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제국주의가 남긴 유산이 내전의 뿌리라면, 내전을 지속시키는 원동력은 ‘자원의 저주’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2024년 9월 펴낸 보고서에서 “민주콩고 동부 이투리와 북키부, 남키부 등 3개 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장단체만도 100여 개에 이른다”고 전했다. 르완다 정부의 지원 속에 북키부를 무대로 2012년께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투치족 중심의 M23이 이 가운데 가장 세력이 큰 단체다.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로 꼽히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1월27일 펴낸 보고서에서 외교 소식통의 말을 따 “M23은 르완다판 바그너 그룹”이라고 짚었다. 러시아 민간군사기업(PMC)인 바그너 그룹은 수단·리비아·말리·부르키나파소 등 아프리카 각국에서 군사지원을 대가로 광물자원 개발권 등 이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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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콩고는 구리·코발트·주석·텅스텐 등 다양한 광물자원을 보유한 나라다. 특히 북키부 등 동부 일대엔 고강도 내열성 초합금 생산에 필요한 탄탈룸과 2차전지 제조의 핵심 소재인 리튬이 대량 매장돼 있다. 미국 국제개발처(USAID)는 민주콩고가 보유한 광물자원 매장량의 가치를 “24조달러 규모”로 추정한 바 있다. S&P는 보고서에서 “북키부 주도인 고마는 광물자원 거래의 중심지다. 고마에서 취합된 광물자원은 르완다를 거쳐,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 항구로 옮겨져 수출된다”고 전했다. 민주콩고 동부 일대에서 무장세력이 들끓는 배경이다.
M23의 고마 장악 이후 현지에선 치안 불안 속 유혈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1월27일 이른 아침 고마의 문젠제 교도소에서 화재가 발생한 뒤 죄수들의 대탈주극이 연출됐다. 3천~4천 명의 수감자 가운데 적어도 2천여 명이 도주해 고마 시내를 배회하고 있다”고 전했다. 파트리크 무야야 민주콩고 공보장관(정부 대변인)은 2월1일 기자회견을 열어 “M23이 즉결 처형 등 무차별적 폭력을 휘두르면서 인명 피해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고마 현지에서 활동하는 세계보건기구(WHO) 쪽은 2월3일 자료를 내어 “적어도 900여 구의 주검이 고마 거리에 방치돼 있다. 이미 수습된 주검까지 포함하면 M23의 고마 장악을 전후로 벌어진 유혈사태로 인한 사망자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전했다.
고마 장악 나흘째인 1월31일 M23 쪽은 “(민주콩고 수도) 킨샤사까지 해방의 진군을 계속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2월3일 돌연 ‘인도적 이유’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포했다. M23은 2012년 11월에도 고마를 장악한 바 있다. 당시엔 미국과 유럽 각국 등이 “르완다에 대한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압박하면서 열흘 남짓 만에 철수했다. 고마가 M23 수중에 떨어진 직후부터 민주콩고 수도 킨샤사 주재 서방 외교공관 주변에서 거친 시위가 벌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에선 르완다 정부가 M23을 동원해 북키부 일대를 아예 자국 영토로 편입하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북키부의 면적은 약 5만9천㎢로, 르완다(약 2만7천㎢) 국토의 2배가 넘는다. 로이터 통신은 2월5일 “휴전을 주장했던 M23 쪽이 교전 끝에 남키부 주도인 부카부에서 약 70㎞ 떨어진 탄광촌을 장악했다”고 전했다. 이번엔 상황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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