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listpark’. 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아이디다. 자신의 정체성을 표출하는 공간의 주제어에 그는 다른 단어 대신 ‘소설가’라는 직업을 써놓았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트위터엔 writer, 인스타그램엔 작가라고 추가 설명을 달며 ‘작가’라는 정체성에 못을 박았다. 마치 ‘나는 작가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듯이,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존재 이유라는 듯이. 그러나 반전. 소설가와 작가, 연달아 내걸린 문학이라는 무게감에 독자가 행여나 짓눌릴세라, 다른 문구가 뒤따라온다. ‘책 구매 링크는 아래’. 그답다는 생각이 든 건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였다. ‘대세 작가’ ‘젊은 작가’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이름, 박상영(32)이다.
라눔쿨루스를 좋아하는 남자
글을 쓰는 행위란 그에게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그토록 활자를 부여잡나. “실은 나는 글쓰기를 통해 일종의 존재 증명을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고 밝힌 그를 만나보고 싶었다(고 쓰고 싶지만, 실은 박상영이 얼마나 재미있는 사람인지 보고 싶었다. 2019년부터 팔로하는 박상영의 SNS엔 원초적인 개그가 있다).
2016년 단편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지 5년. 고질적인 불면증을 가지고 회사 생활을 병행하면서도 글을 써야만 했던 박상영을 7월22일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그의 집에서 만났다. 샤넬 로고가 박힌 검은색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 맨발 차림의 편안함이 왼쪽으로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 스타일과 묘하게 어긋나 보였다.
박상영은 주로 집이나 카페에서 글을 쓴다. 4개월 전 이사한 박상영의 집은 넓은 통창, 정리된 책장, 책상, 핑크 장미 두 송이와 그림 한 점이 놓인 테이블로 군더더기가 없다. 꽃은 인터뷰를 위해 사뒀다고 했다. 카페에서 보고 반한 라눔쿨루스가 한동안 테이블 한 공간을 차지했지만, 현재는 철이 아니라서 장미를 사다 둔다. 화병 옆엔 그림이 놓여 있다. 파란 색연필로 그린 남성이다. 팔을 괸 남성 아래엔 컵이 오른쪽으로 쓰러져 있다. 그림은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 동네 서점판 표지를 그린 전나환 작가가 선물했다. “사실은 컵이 쓰러진 게 아니라 사람이 엎드려 있는 거예요. 세로로 세워놓은 게 더 분위기 있어 보여서 세워뒀어요.”
글을 쓰는 사람이 글을 쓰는 사람을 만나서 인터뷰하기란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일. 만나자마자 토해내듯 털어놓은 문장은 “너무 부담스러워서 인터뷰한 내용을 작가님이 직접 쓰게 하고 싶었다”였다. 박상영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바빠서 안 된다”고 거절했다. 무표정과 웃는 표정의 차이가 낮과 밤처럼 달랐다. “별걱정 없이 살아온 사람 같은 느낌”이라는 말에 “부내 나나요(부자 같나요)?”라는 말이 ‘헠헠헠’이라는 글자가 어울리는 웃음과 함께 돌아왔다. 박상영과의 인터뷰 녹취를 푼 원고지 120장엔 ‘헠’이 136개 나온다.
퀴어스럽게, 발랄하게
박상영 작가를 검색하면 종종 ‘관종’(관심종자)이라는 단어가 함께 검색된다. 유튜브에서 ‘살쪄서 차인 썰’을 풀고, 2016년 문학동네 신인상 시상식에선 핑크 날개를 달고 단상에 오르기도 했다. 동료 소설가 강화길과 송지현이 선물한 날개다. SNS 활동은 책 나오고 시작했다. 스스로 작품을 홍보하지 않으면 묻히겠다는 공포심이 컸다. “형태가 다를 뿐 작가들은 모두 관종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내면을 남에게 노출하고 싶은 욕구가 큰 사람들이잖아요.”
박상영은 졸업하고 한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하다가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그만뒀다. 이후 대학원에서 문예창작학을 공부하며 습작했다. 등단한 뒤엔 부지런히 책을 냈다. 2018년 9월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다음해엔 두 번째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을, 또 그다음 해엔 다이어트 분투기를 다룬 에세이집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를 냈다. 3년 연달아 책 세 권을 내고도 멈추지 않는다. 현재는 웹진 주간 문학동네에 첫 장편 <1차원이 되고 싶어>를 연재하고 있다. 2019년 초 전업작가로 전환하기 전 회사 생활과 작가 생활을 겸업하며 새벽 4시에 일어나 출근 전에 글을 써왔다는 건 알려진 내용이다.
성실함의 근원은 뭘까. 박상영의 답은 의외였다. “한번 스위치가 오프되면(꺼지면), 그때부턴 쉬거나 자야만 했어요. 그래서 퇴근하고 나서는 글을 한 줄도 안 썼어요. 작가로 살아남고 싶은 생존 본능 때문에 출근 전에 쓴 건데 그게 ‘성실의 화신’이 돼버렸네요. 회사 생활은 엉망진창이었어요.” 박상영은 스스로를 성실한 사람이 아니라고 했지만, 3년 동안 ‘작가 출근-작가 퇴근-직장인 출근-직장인 퇴근’으로 이어진 하루 18시간 이상 고강도 노동은 박상영 이름 뒤에 ‘작가’ ‘대세 작가’라는 타이틀을 붙게 했다. 그 덕에 박상영은 <대도시의 사랑법>에 실린 ‘우럭 한점 우주의 맛’으로 제10회 젊은작가상 대상,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로 허균문학작가상을 받았다.
“(다작하느라) 힘들어요. 힘들어 죽을 것 같아요. (헠헠헠)” ‘힘들어서 죽겠다’는 말을 웃으며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힘들다, 죽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상영은 쓰고 또 쓴다. 이유는 현실적이다. “부모님 모두 은퇴하셨는데, 부모님과 저를 포함해서 한 달 보험료만 100만원 가까이 돼요. 내가 쉬면 가정경제가 굴러가지 않아서 미친 듯이 일하고 있어요. 그걸 보고 욕심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욕심이 많긴 하지만 쉬고 싶어요. 쉬고 싶은 욕심이 제일 많아요.” 박상영이 또 웃었다.
좀체 심각해질 틈을 주지 않는 박상영처럼, 박상영의 소설 속 화자도 ‘웃프다’. ‘대세’ ‘젊은’보다 박상영을 더 많이 수식하는 단어는 ‘퀴어문학’이지만, 박상영은 그간 소설이나 영화에서 퀴어를 다뤄온 문법과 선을 긋는다. 묘하게 ‘개미핥기’를 닮은 남창 제제(‘제제’), “세상에 없는 퀴어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박 감독(‘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연작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의 화자 영까지, 박상영은 게이 캐릭터를 대상화하지도 신파 코드로 다루지도 않는다.
‘농담하는 퀴어’라는 신인류
게이인 영이 미상의 남성과 “온 힘을 다해” 키스하다 같은 학과 여자 동기인 재희에게 걸렸을 때, 재희는 “아예 먹어라”라고 말하며 웃음을 터뜨린다(‘재희’). 첫인상이 강렬했던 ‘형’을 보며 영은 “눈빛이 약간 맛이 간 것 같기도 했다”(‘우럭 한점 우주의 맛’) 한다. 자칫 심각하거나 슬퍼질 대목에서 어김없이 유머가 끼어드는 식이다.
백미는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에 감염된 영이 “어차피 이것이랑 죽을 때까지 함께해야 할 판인데 나 듣기에 제일 예쁜 이름을 붙여주는 게 낫겠다 싶어서, 카일리”(‘대도시의 사랑법’)라고 이름 붙이는 장면이다. 그리고 영이 애인 규호에게 ‘카일리’의 존재를 털어놓을 때 규호는 “너, 뚱뚱하고 못된 고양이같이 생겼어. 그러니까 이제 뚱고라고 부를게” 하고 만다. “농담하는 퀴어라는 신인류 등장”(김건형 평론가)이다. (울다가 웃으면 어떻게 된다는 어린 시절 불렀던 노래가 책을 읽는 내내 입안에서 맴돌았다.)
박상영은 유머러스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제 인간됨”이라고 설명했다. “얼마 전에 한 친구가 제가 쓴 글들을 보고 ‘네가 학창 시절에 그렇게 힘들었는지 몰랐다,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제가 맨날 ‘죽고 싶다, 자퇴할 거다’라고 이야기했거든요. 물론 웃으면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계속하면 듣는 사람도 질리잖아요. 나의 주관적인 문제와 고통을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잘 이해시킬 수 있을까 했던 고민이 지금의 작품에 주로 나온 것 같아요.”
유머의 끝에는 박상영이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저 “보통의 존재”로서 화자를 호명하는 박상영의 소설 곳곳에선 성소수자를 찌르는 시선들이 나온다. 성소수자를 소비적으로 다루는 문화계 현실, 성소수자를 전환치료해야 한다고 말하는 보수 기독교의 행태, 동성애를 찬반으로 나눌 수 있다고 믿는 진보 인사의 모습까지.
박상영은 성소수자를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이들에게 묵직한 한 방을 날린다. 퀴어영화답지 않다거나 일반 연애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는 영화 관계자의 지적에 “성적 소수자가 뭔지나 알기는 하냐. 알 리가 없겠지. 특별히도 불행하고 이상한 섹스를 하는 애들 같겠지. 평범하고 발랄한 동성애자들은 현실성이 없고 순전히 다 지어낸 것 같겠지. 애초에 보통의 존재로 생각한 적조차 없었겠지”(‘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라는 박 감독의 말이나, 또 게이인 아들을 전환치료하기 위해 정신과로 밀어넣은 엄마에게 “내가 아니라 엄마가 아픈 거래”(‘우럭 한점 우주의 맛’)라는 말도 그렇다. 박상영이 던지는 질문은 비단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여성, 장애인, 노인, 난민 등 사회적 약자를 2등 국민으로 대해온 한국 사회를 향한다.
그래서 박상영은 퀴어문학의 대표 주자로 언급되기도 한다. 이것이 부담스럽진 않을까. “독자와 세상이 만들어준 호칭이라서 제가 벗고 싶다고 벗을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단어부터 주제의식까지 모든 층위에서 더 고민하고 더 섬세하게 쓰려고 노력해요.” 박상영은 <대도시의 사랑법> 20쇄 수익 전액을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에 기부하기도 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21이 사랑한 작가 박상영② 욕심 많은 무소유자 박상영으로 이어집니다.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91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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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의 실패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은 화자인 영이 사람을 만나고 이별하는 내용이다. 이별을 ‘사랑의 실패’라고 한다면, <대도시의 사랑법>은 실패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는 다이어트 실패기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들이 ‘실패’로 읽히는 걸 경계했다. “김광석도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고 했고, 아리아나 그란데도 ‘땡큐 넥스트’라고 했다. 나는 그런 감정인 것 같다. 실패가 아니라 결국은 나라는 삶의 관점에서 볼 때 관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가는 것처럼. 나는 실패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자신의 삶을 받아들여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썼다.”
그런 점에서 보면 세 작품은 하나의 맥락으로 읽힌다. 비록 “세상에 없는 퀴어 영화”를 만드는 데 실패하더라도, 연인과 이별하더라도, 오늘 밤 굶고 자지 못하더라도 또 다른 나를 만드는 과정인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열심히 살았지만 내내 자책했던 마음은 버리자는 마음으로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를 쓰면서 지금은 많이 자유로워졌다”는 작가가 좋아하는 문장은 “다만 내게 주어진 하루를 그저 하루만큼 온전히 살아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로 했다”이다. “망해도 어떠하리” “너무 열심히 쓰지 말자”는 자유로움을 얻으며 박상영은 “시즌1”을 마무리하고 시즌2를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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