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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이 사랑한 작가 최은영① “우리는 모두 소수자성을 가졌죠”

등록 2020-08-24 21:42 수정 2020-08-27 11:33
류우종 기자

류우종 기자

최은영(36) 작가는 지금 가장 사랑받는 소설가 중 한 명이다.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2016)와 두 번째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2019)이 각각 10만 부 훌쩍 넘게 팔렸다. 그의 소설들은 이곳의 폭력을 날렵하게 포 떠서 보여준다. 세월호, 용산 참사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비껴가지 않는다. 가정에 학교에 관계 안에 스민 폭력을 억압당하는 자의 시선으로 포착한다. 동시에 그의 소설은 한 사람 내면의 결을 핀셋으로 발라내 드러낸다. 이타심인 줄 알았던 이기심, 이해를 가장한 몰이해… 그의 주인공들은 섣부르게 한 사람을 판단했다는 걸 자주 뒤늦게 깨닫는데, 그럼에도 한 사람을 이해하려고 오랫동안 마음을 쓴다. 그를 전자우편과 전화 통화로 만났다.

비틀거리는 순간, 미묘한 찰나

서른 살이 되던 해, 그는 중편 ‘쇼코의 미소’가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공모전에서 여러 차례 떨어진 뒤다. 20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을 썼다. 오래 자신에겐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쓰고 또 썼다. 두 소설집이 모두 평단과 독자의 사랑을 받는 지금, 그는 소설가로서 자신의 재능을 확신할 수 있게 됐을까?

“고등학교 1학년 때 소설을 처음 써봤어요. 제가 다니던 중학교에서 정학, 퇴학을 많이 시켰어요. 복학생 언니가 많았는데 그런 언니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그때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한 자극을 받았어요. 제가 잘 쓴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작가가 될 거라는 확신은 전혀 없었어요. 공모전 예심에조차 오른 적이 없었고 이미 어린 나이도 아니었기 때문에 하다가 안 되면 관둬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이걸 하지 못해도 괜찮아, 라고 자신을 계속 다독였어요. 사실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글 쓰는 거 말고 하고 싶은 게 없었어요. 마음속 깊은 곳엔 낙관적인 게 있었던 거 같아요. 지금은 못 써도 연습하다보면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도 여전히 내가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저 자신에게 하는 중이에요. 그리고 늘 대답해줘요. 드러나지 않은 힘이 있으니 그 힘으로 계속 쓸 수 있다고 이야기해줘요.

요즘엔 동네 독서실에 다니며 글을 써요. 저는 글을 쓰는 속도가 아주 느린 편이어서 마감이 있으면 거의 매일 글을 쓰기는 합니다. 며칠 글을 쓰지 않으면 글을 쓰는 근육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고 글쓰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감을 잃지 않으려고 적은 양이라도 쓰려고 노력해요. 매일 꾸준히 소설을 쓴다면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요.”

그의 소설은 사랑이 비틀리는 순간, 마음이 다치는 미묘한 찰나를 잡아낸다. 별거 아닌 차가운 눈빛이기도 하고 위로를 가장한 단죄의 포옹이기도 하다. 말해야 했을 때 말하지 못하고 손잡아줘야 했을 때 슬그머니 놓아버렸던 찰나다.

“저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고, 가만히 있을 때도 예전에 있었던 일을 많이 기억하는 편이에요. 꿈도 많이 꾸고. 저에게 중요했던 사건이나 순간을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고 관찰하는 편이어서, 소설을 쓸 때도 그런 습관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의 작은 표정이나 말투에 민감했고, 잠깐 생각하고 말면 되는 것을 여러 번 생각해서 고통받은 적이 많았어요. 타고난 기질의 문제인데 이런 부분이 소설을 쓸 때는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토록 살아 있는 인물들

수이와 이경은 서로 사랑하는 두 여자다.(‘그 여름’) 수이는 아이들이 “개 눈”이라고 놀리는 이경의 옅은 갈색 눈동자를 오래 바라봐준 아이다. 부상으로 축구를 포기한 수이는 자동차 수리를 배우며 여러 아르바이트를 뛴다. 대학에 간 이경은 가끔 순두부찌개가 아니라 샤부샤부를 맛보고 싶다. 선택지가 없는 수이에게 이경은 선택을 말한다. 소설을 읽다보면 이경 마음의 굴곡이 느껴지면서도 축구부 시절 몸에 밴 대로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흔들며 수이가 곧 달려나올 것만 같다. 이토록 살아 있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태어날까?

“버스 타고 가다가 갑자기 어떤 사람이 생각나기도 하고 책을 읽다보면 상상되기도 해요. ‘그 여름’은 (이경이 수이를 떠나 사귀게 되는) 은지가 가장 먼저 떠올랐어요. 그러다보니 은지를 사랑하는 이경이 나왔고 이어 수이가 나왔어요. 그런데 쓰다보니 수이가 말을 많이 하는 거예요. 소설에서 인물의 캐릭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어릴 때부터 상상을 좋아해서 가만히 상상 속에 들어가서 그 사람을 봐요. 키는 작은지 큰지, 목소리는 어떤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신발을 신고 걸음걸이는 어떨지, 어떤 부분에서 콤플렉스가 있고 꿈은 무엇이며 습관은 무엇이 있는지, 시력은 좋은지 나쁜지, 어떤 냄새가 날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이런 것들을 가만히 상상하다보면 그 사람이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틀을 잡아놓고 가더라도 결국 이야기가 그 틀을 무너뜨리는 경우가 많아요. 실제로 인간이 나오기 때문인데, 소설 속 인물도 살아 있는 사람이어서 작가가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거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버리거든요. 소설 쓰기는 그런 의미에서 꿈꾸는 것과 조금 비슷해요. 무의식적 영역의 힘이 작용합니다.”

“나는 그 애를 조금도 알지 못했다.”(‘씬짜오, 씬짜오’) 최은영의 소설 속 인물들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이런 말들을 곱씹는다. 친구 진희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힐 때 미주는 잔인한 침묵으로 그를 외면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고백’). 그렇게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면, 이해와 연대는 가능할까?

“저는 사람을 좋아하는 거 같아요. 상처 많이 받아도, 저 자신을 포함해서 너무 이상하고 너무 무서워도 의심을 잘 못해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는 스타일이에요.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되겠지, 그런 기준 같은 게 있어요.

그런데 그걸 넘어버렸을 땐 절망하는 거 같아요. 사람에게 상처받는 것과 절망하는 것은 꽤 다른 일인 듯해요. 자기 존재와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 작은 희망 하나까지 잃어버렸을 때 절망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릎이 꺾여버려서 일어나기 어렵죠. 제 경우엔 글을 쓸 수도, 생활을 멀쩡히 하기도 어려웠어요. 그럴 때 자기를 존중하기 어렵기도 해요. 사람에게 절망했을 때 저는 저 자신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자기를 비난해서도 안 되고요. 저는 사랑이란 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다른 사람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해와 연대는 희귀하게 발생하는 사건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때때로 가능하지만 일상적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준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 단편 ‘씬짜오, 씬짜오’에서 응웬 아줌마는 사람들이 “우울하고 예민하다”고 말하는 엄마를 “섬세하고 사랑이 많다”고 이해한다. 베트남전의 상처 때문에 이 관계는 의도치 않게 어그러지지만 엄마는 응웬 아줌마의 털모자를 뜬다.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준 한 사람은 이미 떠났더라도 잊을 수 없는 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그 한 사람이 돼줄 수 있다. 타인을 받아들이는 건 여기서부터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세상 어느 누구도 저에게 그렇게 잔인하게 할 수는 없었을 거예요. 단 한 번을 저 자신에게 잘했다, 괜찮다, 말해줬던 적이 없어요. 부모에게 칭찬받은 적이 없고, 성취가 있어도 그것조차 인정받지 못한 경험이 쌓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저 자신으로 사랑받은 경험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 사람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건 어려운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2년 넘게 매주 상담 치료를 받으면서 그런 자기 비난은 이제 하지 않아요. 저는 제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조차 상상하지 못했어요. 자기를 사랑한다는 건 자기 마음에 공감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나에게조차 엄격하게 굴면 다른 사람에겐 얼마나 감정적으로 인색해지겠어요. 그래서 자기를 사랑하는 게 중요해 보여요.”

이해는 아름다운 말이지만 그 책임은 불공평하게 돌아간다. “왜 이해해야 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을까?” 단편 ‘모래로 지은 집’에서 묻는다. 술에 취해 들어온 아빠는 자는 ‘나’를 깨워 내가 태어나서는 안 되는 애였다고 말한다. 아이는 그 아빠를 이해하려 안간힘을 쓴다.

“저는 한국 사회에서 타인을 이해하도록 기대되는 집단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생각해요. 약자들이 더 많이 이해를 강요받죠. 권력이 있는 사람은 타인을 이해하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이 없어요. 저는 어린 여자아이로 살면서 어쩌면 제가 살아야 하니까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했던 것 같아요. 착해야 하고, 나에게 나쁘게 하는 사람도 이해해야 하고, 이런 것들이요.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악의적인 사람도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건 자신을 학대하는 일이에요. 악의적이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고 믿음을 배신하는 사람을 이해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KTX 해고노동자에게 “공부를 잘했으면…” 하던 남자

그의 소설들은 ‘폭력을 이해하길 강요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혁당 재건위 사법 살인 사건(‘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세월호 (‘미카엘라’ ‘비밀’), KTX 해고노동자 복직투쟁(‘선택’), 용산 참사(‘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이 사건들의 이름은 명시되지 않는다. 소설은 관찰자의 시선을 빌려 조심스럽게 그 상처 속으로 들어간다.

“스물네 살 때 친구랑 여행 가다가 서울역에서 KTX 해고노동자들이 팸플릿을 나눠주는 걸 봤어요. 그때 한 아저씨가 ‘니들이 공부를 잘했으면 정규직 갔을 텐데 거저 얻으려 한다’며 화를 냈어요. 너무 충격받았어요. 제가 몸집이 작은 여자라 그 아저씨에게 말을 못했어요. 계속 그 생각이 나는 거예요. 이건 잘못됐다고, 사람한테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요. 화가 나서 말하고 싶은 게 쌓였어요. 이런 일이 반복되니까요. 사건 이름을 적지 않은 이유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일어난 많은 고통스러운 사건이 사실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부조리와 폭력적인 구조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 중 하나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도 있었어요.

동네에 장애인 학교가 들어오면 아파트값 떨어진다고 시위하는 사람들이 한국 사회의 잔인함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누구나 약함이 있는데, 약함이 노출되는 동시에 공격받을 수 있는 곳은 야만성이 승한 사회죠. 그 뿌리에는 군사주의 문화가 있어요. 상명하복식 문화가 가정에서도 재현되고요. 사회가 군대같이 돌아가면서 약한 사람이 말할 수 없게 됐고 가해자 위주의 사고방식이 발달했다고 생각해요.

글을 쓰면서 고통을 겪으신 분들을 타자화할까봐 두려웠어요. 그래서 아는 사람이 저에 대해 이렇게 쓰면 어떨지 상상해봐요. 관찰자 시점으로 쓰는 이유엔 그런 부분도 있고 또 대상을 바라보며 판단하는 방식이 관찰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기 때문이기도 해요.”

폭력은 이변이 아니라 일상이다. ‘모래로 지은 집’에서 고등학생인 나비가 모래를 처음 만난 날 두 사람은 이유도 없이 선생님에게 따귀를 맞았다. 오빠는 여동생을 때리고 부모는 그것을 모른 척한다.(‘601, 602’)

“저는 보이지 않는 학생이었어요. 말썽을 피우지는 않았지만 돋보이지도 않았어요. 키가 작은 편이어서 늘 맨 앞줄에 앉았고 나름대로 수업을 따라가려고 했지만 늘 공상을 해서 집중을 잘 못하는 편이었어요. 학교생활에서 계속 겉돌고 소수의 친구만 사귀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하려고 했는데, 고등학교 교사인 아버지가 저를 꾸짖었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학교가 정말 싫었고 끔찍했고, 어른이 되어서 힘든 일들을 겪었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고등학교 2·3학년 때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은 없었어요. 학교에서 많이 때렸어요. 기절할 때까지 때리고 폭언하고 성희롱도 많았어요. 실수하면 맞거나 사람들 앞에 불려나가 모욕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항상 있었어요.”

김소민 자유기고가

*21이 사랑한 작가 최은영②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로 이어집니다.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9135.html

*21이 사랑한 작가들 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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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의 해외출판

최은영 작가의 소설들은 해외에서도 관심받고 있다. 소설집 <쇼코의 미소>와 <내게 무해한 사람>은 일본에서 출판돼 독자를 만났다. 이어 <쇼코의 미소>는 대만·멕시코·이탈리아·미국에서, <내게 무해한 사람>은 대만에서 출간을 앞두고 있다. 출판사 문학동네 쪽은 “<내게 무해한 사람>은 출간 넉 달 만에 3쇄 7천 부를 찍었다”며 “해외 작가 작품으로는 드물게 고무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최은영 작가 작품 속에 스민 페미니즘 색채와 한국 사회의 폭력을 잡아내는 날카로운 시선이 해외 독자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가고 있다. 2019년 2월 <쇼코의 미소> 출간 직후 일본 진보초 출판클럽에서 열린 최은영 북콘서트는 매진됐다. 2천엔짜리 유료 콘서트인데도 80여 명이 몰렸다. 문학동네 담당자는 “북콘서트에 온 독자들은 작품에 담긴 세월호, 베트남전 등 사회적 문제를 담아낸 부분이 인상적이었다는 평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미국 쪽 출판을 맡은 에이전시는 “여성 중심적 서사가 영미와 유럽에 불고 있는 ‘미투’ 운동과 맞닿아 있다”며 “한강, 편혜영 작가 등의 작품과 비견할 만한 수준의 작품”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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