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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이 사랑한 작가 황유미① 여기는 ‘인’일까 ‘아웃’일까

등록 2020-08-25 17:38 수정 2020-08-28 10:27
박승화 기자

박승화 기자

인(In)일까? 아웃(Out)일까? 초록색 코트에 그려진 흰색 라인(선). 그 위를 지나는 오렌지색 피구공은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이다. 황유미(31) 작가의 첫 소설집 <피구왕 서영>의 표지를 보고 피구공이 경계의 ‘안과 밖’ 어디에 떨어질지 궁금했다. 작가의 작품을 하나둘 읽어도 좀처럼 피구공의 궤적은 가늠하기 어렵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피구공은 이리저리 튄다. 작품 속 인물들은 가족이나 학교, 회사나 조직의 ‘안’에서 버틸지 ‘밖’으로 탈출할지 끊임없이 망설이고, 고민하고, 흔들린다. 모두 ‘밀레니얼 세대’라는 모호한 단어로 불리는 2030세대의 이야기다. 1989년생인 작가는 친구일 수도 있고 동료일 수도 있는 소설 속 인물들과 울고 웃고, 고민을 나누고, 서로 위로한다.

요즘 애들 같지 않은 독자들

“‘지민이는 참, 요즘 애들 같지 않네.’ 회의실에서 태어난 밀레니얼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기보다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혼합물에 가까웠다. 그렇게 태어난 밀레니얼은 자고로 스타일 좋은 또래들이 많이 모인 장소를 기웃거리며 (…) 동틀 때까지 노는 핵인싸에 히피여야 마땅했다. (…) 내 주변에 널린 밀레니얼의 이야기는 적절치 않았다.”(‘노힙스터존’)

황유미 작가는 문학상·신춘문예 등 전통적인 경로(등단)가 아닌 독립서점가의 ‘입소문’으로 책을 내고 작가가 됐다. ‘요즘 애들 같지 않은’ 독자들이 반응했다. 2018년 여름, 직장인 황유미는 5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그해 가을 개인 돈 80만원을 들여 독립출판으로 <피구왕 서영>을 냈다. 당시만 해도 6개월만 하고 싶은 일을 해본 뒤 재취업할 생각이라 평범한 이도 쉽게 낼 수 있는 독립출판을 선택한 것이다. 200권만 찍어 친구와 지인에게 주고 남는 걸 동네 책방 몇 군데에 내놨다. 일주일이 지나자 작가에게 “재입고를 해달라”는 서점의 전자우편이 오기 시작했다. 작가는 “특히 20·30대 여성들이 책을 읽고 ‘내 얘기인 것 같다’는 피드백을 많이 주셨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한 달 만에 출판사에서 정식 출판 제의가 들어왔다. 2019년 1월 정식 출간된 <피구왕 서영>은 한 달 만에 2쇄를 찍고, 두 번째 소설집 <오늘도 세계평화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2019년 11월)로 확장된다. 2030세대 독자들이 그의 작품에 ‘좋아요’를 누르기 시작했다. 작가의 작품을 다 읽고 나자 작가와 그의 작품에 호응하는 이들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비가 오락가락하던 7월28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마포동의 한 카페에서 황유미 작가를 만났다. 그가 평소 글을 쓰는 작업공간이다. 사람들이 찾기 힘든 주택가 언덕에 있지만 인스타그램에선 2030세대에게 ‘세련되고 예쁜 카페’로 유명한 곳이다. 그는 2년째 마포구에 사는데 지역 여러 카페에 매일 오전 출근한다. 태블릿PC에 휴대용 키보드를 연결하고 글을 쓴다. 최근에는 창작자들에게 공간을 제공하는 마포출판진흥원 ‘플랫폼피’에 자리를 얻어 그곳으로 출근하기도 한다.

“서영은 초조한 마음으로 교실을 둘러보았다. 평범하고 튀지 않으면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는 무리를 찾기 위해서였다.”(‘피구왕 서영’)

황유미 작가의 첫 소설집 표제작 ‘피구왕 서영’은 안과 밖의 경계에서 서성이는 초등학교 4학년 서영의 이야기다. 자주 전학을 다닌 서영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교실 안 권력관계를 가늠한다. 누가 ‘인싸’(인사인더)인지 또 누가 ‘아싸’(아웃사이더)인지 감지하는 더듬이가 있는 것처럼. ‘적당한 틈’에서 자신을 지키며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서영은 새 학교에서 피구를 잘한다는 이유로 ‘피라미드 최정점의 포식자’ 친구들과 엮이고 만다. 경쟁에 민감하고, 누군가를 따돌려야 마음이 편한 포식자들에게 끌려다니며 속내를 숨겨야 하는 서영의 마음은 편치 않다.

‘먹고사는 일’ ‘좋아하는 일’ 사이에서 흔들리며

서영이가 그랬던 것처럼 황유미 작가도 일찍부터 ‘적응을 위해’ 더듬이를 세웠다. “마산에서도 살고, 부산에서도 살고, 경기도 여러 소도시를 많이 다녔어요. 전학을 많이 다녀 동네 친구가 없었어요. 새로운 곳에 갈 때마다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뿌리라고 할 만한 동네가 없어요.”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황유미 작가는 유년시절 아버지 직장을 따라 전국을 돌아다녔다. 초등학교 3곳, 중학교 2곳을 거쳤다. 그는 안과 밖의 경계를 가르는 유·무형의 폭력에 예민했고, 자연스레 집단 속에서 쪼그라들어 불안해하는 개인에게 마음을 썼다.

“34평 이서영, 그리고 54평 유현지. 교실에 비치된 출석부에 아이들의 이름마다 번호가 따라붙듯 교실 밖에서는 아파트 평수가 서로를 식별하는 꼬리표처럼 자연스레 붙어 있었다.”(‘피구왕 서영’)

서영과 유미에게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레토릭(수사)이 너무나 절절하게 다가온다. 도시로 전학 간 초등학생 유미 역시 ‘아파트 평수’와 ‘부모님 직업’에 궁금해하는 아이들의 눈빛을 마주했다. “11살 아이들이 평수라는 개념을 인식하는 게 저한테는 ‘어, 이상한데’ 이런 감정이었어요.”

“희수는 언제나 집단 내에서 모범군이 되고 싶어 한 사람이다. 모난 부분 없이 집단 내에서 가장 평균적인 모습으로 그렇게 살아가기를 바랐을 뿐이다.”(‘하이힐을 신지 않는 이유’)

‘피구왕 서영’ 이후 작품들은 학교를 벗어나 어른이 된 서영이 사회 속에서 좌충우돌하는 ‘성장담’으로 읽힌다. 서영에게 사회는 피구 경기장과 다르지 않다. 공을 던지고 받다보면 누군가는 밖으로 쫓겨나고, 누군가는 안에 남는다. 모범군에 속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만 늘 불안하고 불편한 ‘서영이들’은 2020년 한국 사회의 청춘들과 오버랩된다. 작가 역시 작품 속 인물들과 공명한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21이 사랑한 작가 황유미② ‘노힙스터존’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로 이어집니다.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9137.html

*21이 사랑한 작가들 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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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미의 콘텐츠

황유미 소설의 매력은 2030세대에 현미경을 들이댄 것 같은 생생함에만 그치지 않는다. 소설의 ‘찐 매력’은 엉뚱함과 기발함이다. 주변의 흔한 청춘들 모습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초능력자 작업복 세탁소, 도깨비, 범지구 알레르기 협회, 디지털 화형식, (힙스터는 출입 금지인) 노힙스터존 등 독특한 발상과 만나며 떠들썩한 소동이나 블랙코미디로 번진다. 이는 작가가 이야기를 구상하고 쓰는 방식과 닿아 있다.

작가는 영화, 드라마, 책, 웹툰,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콘텐츠는 무조건 많이 본다고 했다. 그는 마블 영화 덕후기도 하다. 콘텐츠를 훑다가 길어올린 한 단어나 아이디어에서 그의 상상은 시작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나무숲 페이지에서 본 ‘연어동아리’라는 단어는 단편 ‘이대로 보내지는 않으려 해’ 이야기로 발전했다. 두 번째 소설집 표제작 ‘오늘도 세계평화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는 마블, DC코믹스가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할 이야기라고 작가 스스로 말한다. ‘강시의 심장에는 도깨비가 산다’(누구나 갖고 있는 약점을 심장에 사는 도깨비에 빗댄 소설)는 커피를 많이 마셔 심장이 빨리 뛰던 날, 도깨비방망이를 떠올리며 시작됐다고 한다. “도깨비방망이로 절구질하는 장면을 연상하다가 방망이가 아니라 도깨비가 심장에 살면 어떨까라는 설정을 만들었어요.” 두 번째 소설집을 펴낸 출판사는 “현실을 복사해놓은 동시에 몽글몽글한 상상력을 덧입은 작품들은 능숙하게 우리를 다른 세계로, ‘황유미 월드’로 인도한다”고 작품을 소개한다. 소설을 일단 접하고 나면 ‘황유미 월드’라는 표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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