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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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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이 사랑한 작가 황유미② ‘노힙스터존’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등록 2020-08-25 17:43 수정 2020-08-28 10:27
박승화 기자

박승화 기자


*21이 사랑한 작가 황유미① 여기는 ‘인’일까 ‘아웃’일까에서 이어집니다.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9136.html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신입사원 때부터 했죠. 성격은 내향적인데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하느라 외부로 에너지를 많이 써야 했어요. ‘내향적인 나’와 에너지를 방출해야 하는 ‘회사의 나’ 사이에 갈등이 있었죠. 늘 누구한테 끌려다닌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는 20대 중반 광고대행사에 취직해 온라인 광고 제작 등을 포함한 디지털마케팅 업무를 5년여간 했다. ‘먹고사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저울 위에서 늘 흔들렸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작가가 되어야지’ 하고 글을 쓰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일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주말이나 퇴근 뒤 어떻게든 짬을 내서 동네 글쓰기 워크숍이나 독서모임을 다녔어요.” 6개월만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고 마음먹고 2018년 여름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스스로 조기 퇴사를 선택하는 많은 청춘이 그러하듯 사직서에 ‘일신상의 사유로 사직합니다’라고 썼다.

일터에서 기른 기초체력으로 현미경을 들이대다

“회사 생활이 좋은 순간도 있었죠. 그런데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없고 회사에 끌려다닌다는 생각에 괴로웠던 적이 있어요. 이게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내했을 때 얻을 지위나 보상이 탐나지는 않았죠. 이게 (퇴사 이유로) 제일 큰 것 같아요.”

그는 회사 대신 소설 쓰는 모임에 출근해 글을 썼다. “그러다 재취업할 줄 알았죠. (웃음) 나중에 되짚어보니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자기표현 욕구가 강한 사람이구나, 내 이야기, 내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강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욕구를 풀지 않았으면 엉뚱하거나 파괴적인 방식으로 폭발했을지도 모르죠.”

그에게 회사 생활이 어떤 의미였느냐고 묻자 “사회생활의 기초체력을 기르게 된 곳”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작품 곳곳에는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전전긍긍하는 2030세대, 특히 조직과 개인, 일과 가족의 관계에서 불안해하고 갈등하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들에게 현미경을 들이대는데, 작가가 회사에서 기른 기초체력이 십분 발휘된다. 매번 발톱 사이로 피가 배어 나오지만 ‘어른 여자가 되면 당연히 신어야 하는 줄’ 알고 매일 하이힐에 발을 넣는 희수(‘하이힐을 신지 않는 이유’), 까만 옷이 좋아 매일 입을 뿐인데 직장 동료와 선배로부터 ‘어디 조문 가냐’ ‘실연당했냐’ 등의 질문에 시달리며 ‘까만 옷 청문회’에 시달리는 여자(‘까만 옷을 입은 여자’), 정규직 전환을 고대하고 버티던 직장에서 계약 종료를 통보받으며 ‘똘똘한 후임자를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는 지민(‘노힙스터존’), 회사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시영(‘강시의 심장에는 도깨비가 산다’) 등은 조금만 세심히 주변을 살피면 일터 안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청춘들이다.

“딸이 물 건너 외국에 가면 아들(남동생)에게 살이 온다”는 무당의 한마디 때문에 수학여행마저 못 가며 할머니와 부모로부터 희생을 강요받는 주영(‘물 건너기 프로젝트’)은 최근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K-장녀’(Korea(한국)의 앞글자 ‘K’와 ‘장녀’의 합성어)를 연상케 한다.(작품은 K-장녀가 화제가 되기 전에 쓰였다. 황유미 작가는 “저도 장녀”라며 웃었다.) 모두 ‘밀레니얼 세대’ ‘90년대생’이라는 납작한 개념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다양한 청춘들의 모습이다. “소비자층이 필요한 마케터들이 밀레니얼 세대를 강하게 규정하는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세대로 묶인 사람들 안에서도 사회환경, 교육수준, 자본 유무에 따라 각자 고민하는 부분이 다르다는 건데….”

“대학에서 읽는 책과 나누는 담론의 수준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내가 겪은 일이 더없이 초라하고 부끄러워졌다.”(‘물 건너기 프로젝트’)

소설 속 2030 여성들이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끊임없이 꿈꾸는 이유는 이 문장으로 압축되는 것 같다. 세상은 달라진 것 같은데 자기 삶은 엄마나 언니들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데서 오는 괴리감이다. 회사에서 인정받겠다고 거침없이 달리는 여성 팀장에게 ‘욕망녀’라고 하는 사람들, 아무렇지 않게 “여자가 너무 똑똑하면 남자들이 싫어한다”고 말하는 어른들, 가족관계부터 연애 여부까지 궁금해하며 사적 영역을 수시로 넘는 직장 상사들 앞에서 소설 속 인물들은 대응할 언어를 찾지 못하고 자기감정을 숨기는 데 급급하다.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지만 여성 독자들은 자연스레 자기 삶을 소설에 겹쳐보는 듯했다. “‘물 건너기 프로젝트’(가족 몰래 외국으로 떠나는 주영의 이야기)에 여성들이 특히 좋았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가부장제 안의 불편함, 불평등, 권력 구도에 대한 반응이었죠. ‘나랑 비슷하게 (문제를) 느끼는 우리가 많아’ 이런 짜릿함에 많이 반응해주셨던 것 같아요.”

첫째도 둘째도 경제적인 일

그는 소설을 쓰는 게 어렵다고 느껴질 때마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달려라, 아비>(2005년 11월 출간)를 펴본다고 했다. “표제작 ‘달려라, 아비’를 읽고 무책임한 아버지, 가장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무능력한 아버지를 충분히 독하게 비난할 수 있을 텐데도 끝까지 아버지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 따뜻함을 놓지 않는 이야기 구조에 신선함을 느꼈어요. 아버지를 가장이 아니라 그냥 인간으로 대하는 여성 화자들의 이야기로 카메라 포커스가 이동하는구나….”

소설 속 2030 여성들의 삶은 각양각색이지만 하나로 통하는 게 있다. 아버지는 물론이고 회사 동료, 친구, 가족 등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이들과 고민을 나누지도, 이들에게 기대지도 않는다. 대신 ‘이대로 보내지는 않으려 해’의 제이처럼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모임’ 같은 소셜모임에 열정을 쏟고 위로를 얻는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독서모임, 소셜살롱 등이 유행하는 최근 현실과 겹친다. “실제로 (2030세대가) 회사와 가족에게 의지하지 않는다고 느껴져 그렇게 썼어요. 노동·주거·결혼 등 삶의 방식에 대해,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일수록 오히려 내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이 누구나 있는 듯해요. 나랑 사적 관계가 없고,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생각되는 집단을 찾아가면 마음이 한결 편해져요. 점점 (가족이나 회사에서 벗어나) 인간 대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황유미 작가 역시 현실에서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모임’에 애정을 쏟고 있다. 동네 책방에서 초단편소설(A4용지 한 장, 2천 자 분량) 쓰기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두 번째 소설집에서 잘 드러나듯 그의 관심사는 이제 안정된 울타리 바깥, 자신과 비슷한 동년배들의 삶으로 확장되고 있다. “기혼·정규직 친구들은 노후가 고민이더라고요. 아주 먼 미래가 고민이죠. 그런데 요즘 저랑 가깝게 지내는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 특수고용에 해당하는 친구들, 혼자 사는 친구들은 ‘중년 대비’가 고민이거든요. 노후 대비가 아니라. (웃음) 중년을 어떻게 하면 즐겁게, 안정적으로 버틸지가 고민이죠. 앞으로도 제 자리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로 사회적 의미를 담아서 글을 쓰고 싶어요.”

‘중년 대비’라는 말에서 느낄 수 있듯 좋아하는 일로 먹고산다는 건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어려움은 첫째도 둘째도 경제적인 것 같아요. 퇴사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창작노동으로만 먹고사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라. 수입 구조를 짠 다음 퇴사를 설계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곤 해요. 책을 내는 일은 하나의 명함이 생기는 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명함이 있다고 바로 돈이 들어오지는 않잖아요.” 등단하지 않은 채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한 생각도 궁금했다. “처음에 ‘작가가 되겠어’라고 시작했던 건 아니라 큰 고민 없이 독립출판물을 냈어요. 등단의 의미를 나중에 알게 됐어요.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저한테도 (정식 출판) 기회가 온 거겠죠. 장기적으로 활동하고 큰 기회를 얻으려면 결국 등단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진지하게 일을 이어나가려면 등단이 중요하구나 하는 고민이 들긴 하죠.”

다른 사람은 알지만 나는 모르는 나

“선배들은 가끔 셈에 밝은 것 같으면서도 또 어떤 면에서는 세상 물정 모르는 천진한 아이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때가 있었다. (…) 그들은 내 영역을 침범할 권리가 있다는 듯 행동할 때면 거부감까지 느껴졌다.”(‘노힙스터존’)

황유미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2030세대 마음의 아주 작은 조각을 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끝까지 찝찝함을 떨쳐버리지 못한 게 있었다. 그의 작품 속 대부분의 어른과 선배는 악의는 없지만 해맑은 얼굴로 늘 주인공들을 불편하게 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급기야 단편 ‘알레르기’에서는 ‘사람’을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항원으로 규정한다. 작품을 읽으며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느꼈던 순간이 떠올랐다. 동시에 지금까지 나 역시 누군가에게 불편을 주는 존재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그런 존재가 되지 않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자신도 누군가를 불편하게 했고, 불편하게 할 수 있다고 몸을 낮췄다.) “(윗세대와 아랫세대 사이의) 이해는 조금 힘들 것 같아요.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이미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데 따로 살 수는 없잖아요. 내가 고민하지 않고 던진 말이 그 사람한테는 가장 곤란한 부분을 건드릴 수 있다는 걸 한 번만 생각하면 서로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터뷰 막바지에 그가 가장 좋아하는 다른 작가의 문장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달려라, 아비>를 펼쳐 ‘영원한 화자’의 한 구절을 읽었다. 서로 이해는 하지 못하더라도 공존하기 위해 늘 자신을 돌아보며 떠올려야 하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신에 대해서는 ‘당신들이 모르는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타인에 대해서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는 다 알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21이 사랑한 작가들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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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황유미 작가와 만나기 며칠 전 모바일 쇼핑몰 창을 열고 닫기를 반복했다. 첫 소설집 <피구왕 서영>을 떠올리며 ‘피구공’을 사서 인터뷰할 때 가져가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자 생활 중 소설가를 인터뷰하는 건 처음이라 긴장한 탓에 ‘혹시 불쾌해하면 어떡하지?’ ‘인터뷰 시작부터 썰렁해지는 것 아니야’라는 생각에 전전긍긍했다. ‘에라 모르겠다.’ 고민 끝에 책 표지에 그려진 이미지와 비슷해 뵈는 오렌지색 피구공을 주문했다. 서명을 받은 뒤 내가 가져올지, 작가에게 선물로 줄지 마음도 못 정한 상태로 인터뷰 장소에 가져갔다. 그러나… 괜한 걱정이었다. 황유미 작가는 밝은 표정을 지으며 흔쾌히 피구공 위에 서명했다. 피구공 선물은 처음인 듯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는 피구공을 마음에 들어 했다. 피구공은 인터뷰 내내 그의 곁을 지켰다. “저… 이거 가져가도 돼요?” “네네, 당연히!”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던 먹구름이 완전히 걷혔다. (피구공에 온통 정신이 팔려 책에 작가 서명을 받는 걸 잊어버렸다는 사실은 그와 헤어진 뒤에 깨달았지만….)

황유미 제공

황유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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