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이 사랑햔 작가 김연수① 영원한 신인 혹은 우듬지를 올라본 까마귀에서 이어집니다.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9105.html
내가 하고 싶은 내 말이 아닐 때
최근 <한겨레> 인터뷰에선 문학 개념이 변화되고 작가에게 원하는 것도 달라졌다고 하셨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는 좋은 글을 쓰면 된다는 바람만 커서 소설로는 돈을 벌면 안 된다는 생각마저 했어요. (웃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가 그렇게 쓴 글이에요. 이 소설로는 돈을 벌지 않겠다, 많은 사람이 읽지 않도록 하겠다, 누구의 간섭도 심지어 나의 간섭도 받지 않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다 2010년쯤 되니까 모든 게 판매와 연동되더군요. 작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강연, 심지어 방송에 나가 얼굴을 알린 뒤 책을 팔아야 한다는 거예요. 일단 알려지면 그다음부터는 계속 갈 수 있다는 거죠. 얼마간은 저도 인정했어요. 그 논리에 맞서기 어려웠으니까요.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세상의 변화에 따라가기 위해서 했던 강연 같은 일들은 제겐 별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해가 된 거 같아요. <일곱 해의 마지막>을 쓰면서 장기적으로 볼 때 세상이 바뀐다고 덩달아 바뀌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 확신이 그를, 다시금 원칙대로 쓰는 ‘문학주의자’이게 한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글을 펴내는 것이고, 글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어쩌면 시대에 거스르는 일인지 몰라도 백석을 쓰고 큰 용기를 얻었으니 이 원칙대로 가야겠다고.
깊은 속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어떤 작가들은 절필하기도 합니다. 김연수는 절필할 수 있나요.
저는 절필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소설이 제 맘에 안 들면 자연스럽게 그럴 테죠. 실제 어느 시점까지는 글이 계속 나아졌기 때문에 좀더 나은 걸 쓰면 못 썼던 소설들은 다 버리고 싶어져요. 그래서 못 쓴 소설은 다 버립니다. 누가 이의를 제기한다? 그러면 바로 버려요. 제 책이 안 나와도 상관없어요. 심지어 압박이 오면 곧장 안 쓸 거 같아요. (웃음)
작가로서 정치적 올바름과 미학 사이의 긴장은 어떻게 견지하시나요.
두 개 다 가질 수는 없다고 봐요. 상당수 문제는, 내가 하고 싶은 내 말이 아닌데 할 때 빚어진다고 보거든요. 예전 같으면 눈치 보며 다른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을 했겠지만, 이제는 아닌 거 같아요.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면 문제가 생겨요. 속마음하고 달라지니까. 일부에게는 욕도 얻어먹겠죠. 그때 뭘 선택해야 하는지가 제가 이번 소설에서 도달한 결론이에요.
김민아 <아픈 몸 더 아픈 차별> 저자
*21이 사랑한 작가들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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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작가와 인터뷰 약속을 잡고 실제 만나기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매일 밤 그의 전작들을 다시 읽었다. 역시나 주경야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지만 나는 약간 조증 상태였기 때문에 다음날 업무에 지장을 받기는커녕 일이 즐거웠다. 그건 내게는 좀 신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를 만나는 날, 굳게 닫힌 그의 작업실 앞에 섰을 때 인터뷰가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장에 들어가는 입시생처럼 머릿속이 하얘졌기 때문이다. ‘걱정 마, 이건 오픈 테스트야. 네 노트북에 질문이 다 적혀 있잖아.’ 또 다른 내가 주눅 든 내게 속삭였지만,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그를 만나기 위해 제법 공들여 뽑은 질문들은 인터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기분이었다. 이를테면, “옛날에는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요…” “30대에는 이런 글을 쓰셨죠?” 같은,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들. 그럼에도 그는 ‘거참, 바보 같은 질문이군요’ 싶은 기색 없이 진지하게 답해주었다.
왜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은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풀렸다. 시인이자 그의 친구인 문태준에 따르면 김연수는 “상당한 실력을 갖춘 아마추어 마라토너”인데, 나를 그걸 잊고 있었다. 달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인식의 지평 너머가 궁금한 사람이다. 그런 이에게 안주(安住)는 궁금하지 않은 현재가 아닐까. 그리 생각하는 내게 김연수는 “제 소설이 지금 관점에서는 낡았을지 모르지만 이런 소설도 읽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씁니다”라고 했다. 그가 말한 ‘이런 소설’이 오로지 문학주의자를 고수하려는 이의 작품이라면, 나는 그걸 낡기는커녕 신인(新人)이 쓴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신인은 현재에 머물면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음을 알아 먼 미래를 그려보고, 쉬지 않고 쓰면서도 쓴다는 게 무엇인지 늘 궁금하며,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현재 시점에서 계속 재해석해야 분이 풀리는 사람이다. 그런 이는 그의 소설 <밤은 노래한다>에 ‘까만 새’로 등장한다. “삼나무 높은 우듬지까지 올라가 본 까마귀, 다시는 뜰로 내려앉지 않는 법.” 김연수는 <일곱 해의 마지막>에서 다시, 새롭게 이 까마귀에 대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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