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21이 사랑한 작가 김연수① 영원한 신인 혹은 우듬지를 올라본 까마귀

등록 2020-08-14 16:26 수정 2020-08-18 00:30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한 사람의 마음을 알 길 없어 록밴드 트래비스의 <라이팅 투 리치 유>(Writing to Reach You)를 끝없이 반복해 듣던 나날이 있었다. 노래 제목처럼 너에게 닿겠다는 일념으로 책상 앞에 앉았지만, 쓰면 쓸수록 너에게 가닿기는커녕 멀어지는 느낌만 들었다. 누군가를 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던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김연수(50)의 <밤은 노래한다>를 꺼내 아무 페이지나 펼쳤다. 작가의 말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도저히 쓸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자꾸 쓰고 싶다.” 그래, 김연수는 그런 사람인데 왜 소설 신작은 이리 뜸하지? 그런 생각을 하다 내 고민에서 빠져나오게 됐다면 거짓말이지만 간간이 궁금하긴 했다. 그런데 몇 년 뒤 그가 정말 돌아왔다. 역시나 ‘도저히’ 우리가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시인 백석과 함께 말이다. 독자들은 종이책에 앞서 ‘듣는 연재소설’인 오디오북으로 먼저 시인을 만났다. 그 덕에 <일곱 해의 마지막>을 정성 들여 듣고, 읽기를 반복한 이가 많았단다. 책을 여러 번 읽어주길 원하면서도 감히 바랄 수는 없던 일인데 이번에 그리된 셈이라고 김연수는 엷게 웃었다.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던 7월20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의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언젠가, 아마도’(김연수 여행산문집 제목) 선생님 마음에 품은 이야기들은 소설이 되는 모양입니다. 백석은 언제부터 품어온 씨앗이었나요.

대학 1학년 때 제가 좋아하는 여자 선배가 졸업논문으로 백석을 썼다면서 시집을 선물로 주셨어요. 백석 시는 1988년 10월에 해금됐는데, 해금되기 직전에 이동순 선생이 백석 시 전집을 펴냈어요. 해금 작가라니 정치적인 시를 썼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정치적이기는커녕 시골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었어요. 분단되고 북한에서 활동했다는데 아무리 공산정권이라지만 이 정도 시를 썼던 사람이 갑자기 시를 안 쓰거나 못 쓰거나 하진 않을 것 같았어요. 1950년대 북한에서 서정시를 썼던 어떤 사람이 몰래 어디에 시를 쓴다, 뭐 이런 줄기로 소설을 쓰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죠. 2000년대 들어 북한에서의 백석 행적이 알려지고 시들도 공개됐는데, 수준이 너무 떨어져서 실망스러웠어요. 그래서 쓰고 싶지 않았는데 2016년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제가 백석 시인이 삼수 파견 명령을 받고 혼자 삼수로 쫓겨간 나이가 됐더라고요. 국가권력이 만일 제게 “너는 더 이상 쓰지 마, 그리고 저 오지로 가”라고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30년 넘게 사회적으로, 시인으로 죽음을 선고받았는데 그렇게도 살 수 있을까. 그랬더니 다시 쓰고 싶다는 욕구가 일었어요. 북한에서 백석이 번역하고 쓴 작품을 찾아 읽기 시작했죠. 번역시는 수준이 굉장히 높았고, 번역소설은 말을 다루는 기술이 여전히 뛰어났어요. 반면 시들은 초기 동시는 좋았는데 추방된 뒤 올려보낸 시들은 형편없어지기 시작했어요. (당에) 맞춰서 쓴 거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죠. 그때부터 이 사람은 왜 안 쓰게 됐는지 역산해 들어갔고 제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치를 소설로 썼습니다. 대략 30년 정도 걸린 셈이네요.

당은 백기행(백석의 본명)이 혁명에 반하는 순수문학에 빠져 있느라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당과 수령을 찬양할 마음이 조금도 없으니 글을 못 쓰는 게 아니라 안 쓰는 게 아니냐고 끊임없이 추궁했다. 다른 문인들은 고향으로 보내면서도 기행만은 고향 정주가 아닌 멀고 낯선 오지, 삼수로 쫓아버린 이유다. 북한 문학사에 백석이라는 이름이 단 한 글자도 나오지 않는 건 그래서 이상하지 않다. 북한에서 백석은 시인이 아니었지만 남한에서 그의 시는 시인들과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널리 읽혔다. 정작 백석은 이 사실을 모른 채 1996년 세상을 떠났다. 생각할수록 외롭고, 높고, 쓸쓸하다(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에 나오는 구절. 시인 안도현이 시의 제목으로 쓰기도 했다).

30년을 품고 내놓은 백석

백석이 쓰지 않고 버텼다는 게 그 누구도 아닌 작가 김연수에게 힘과 위로가 됐다고 볼 수 있을까요.

소설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저는 백석처럼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어느 시점에선 나라면 어땠을까, 제 이야기로 가정해보면서 계속 기행과 대화해가며 썼어요. 그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보면,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집도 없고 온통 쓸쓸한 것들뿐이라고 해요. 하지만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부턴 전환이 일어나거든요. 도대체 이 힘이 뭘까,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오래 생각했어요. 제가 신기했던 건 그는 미래의 자기가 어떻게 될지 보고 온 사람처럼 시를 이야기했다는 거예요. 그런 그의 태도가 제게 많은 가르침이 되었죠.

당신 이야기는 다를 테니 당신도 쓰세요

<일곱 해의 마지막> 제목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네요.

기행이 기차에서 회상하는 이야기로 쓰려다보니, 처음 마음에 둔 제목은 ‘공무 여행’이었어요. 백석이 모델이니까 제목은 그의 시에서 가져오고 싶었는데, 마땅히 맘에 드는 시구가 없더라고요. 그러다 ‘일곱 해의 마지막’을 읽었어요. 이 시는 경제개발 7개년 계획에 대한 건데, 7개년 계획을 2~3년 만에 끝내자는 게 천리마운동이거든요. 첫해에도, 일곱 해의 마지막에도 빨갛게 타자는 건 석탄이 하는 말이고요. 시인의 마지막 시는 1962년에 나오는데 그해부터 역으로 일곱 해를 돌아본 거죠. 제가 정말 쓰고 싶었던 건 어떻게 안 쓰고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는가와 삼수에서 있었던 마지막 해였어요. 운이 좋았습니다. 이 제목이 딱 맞았어요. 백석 시인이 이렇게 쓰라고 도와줬나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기행은 기나긴 시간 동안 쓰는 일과 끝내 쓰지 않는 일 사이에서 번민했습니다. 김연수에게 쓴다는 것과 안 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굳빠이, 이상> 쓸 때는 못 쓰면 불행하다 여겨서 쓰는 문제만 고민했어요. 쉬지 않고 쓰는 힘이 문학의 전부라고요. 하지만 기행 이야기를 쓰면서는 안 쓰는 문제를 고민했지요. 쓰라는 압력을 받을 때 안 쓰는 게 과연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안 쓰는 것도 문학 행위가 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안 하는 힘에 주목한 거죠. 압력이 들어온다고 쓰라는 것을 맞춰 쓰다보면 미래가 바뀔 수 있어요. 결국 이전까지 썼던 것들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안 쓰는 것뿐이더라고요.

이상이나 백석처럼 유명인의 뼈대에 살점을 붙이는 게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것보다 어렵지 않나요.

저는 낭만적인 작가를 믿지 않아요. 영감이 와야 글을 쓴다, 독창적인 이야기가 있다는 말을 믿지 않죠. 이야기는 이미 다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주느냐죠. 저는 공공연하게 무얼 쓰겠다고 이야기하고 다녀요. (웃음) 그건 “당신의 이야기는 다를 테니, 당신도 쓰세요”라는 말입니다. 각자 다른 이야기를 당신도 쓰고, 나도 쓰고, 모두 쓰는 거예요. 제가 이상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 적는다 해도 실제 일어난 일과는 다른 이야기가 될 겁니다. 물론 실존했던 인물이니까 모든 자료를 다 뒤져서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재구성해야죠.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는데, 근대 문인들은 한국전쟁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관련 자료가 많이 사라졌어요. 백석도 39년 이후에는 자료도, 증언도 없어요. 그러니 차라리 자료 수집이 용이하다고 할까요. <굳빠이, 이상> 쓸 때 일본에 갔더니 나쓰메 소세키가 날마다 뭘 했는지 모조리 적어놓은 일력이 있더라고요. 이런 사람은 소설 쓰기가 되게 힘들 거예요.(웃음)

불과 눈, 변주되는 노래

백석이 살았던 시대를 알기 위해 1950~60년대 자료를 넓게 읽어가다가 어느 날 김연수는 소련의 시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1890~1960)의 ‘눈보라’를 만난다. “눈보라가 날려, 온 대지 위에 눈보라가 흩날려/ 사방 구석구석까지 휘몰아쳤다./ 책상 위에 촛불이 타고 있었다./ 촛불이 타고 있었다.” 소비에트 사회에 격동이 몰아치지만, 시인은 내면을 지키고 있다. 흩날리는 것들은 잠깐 존재하다 흩어지거나 사라질 시대 상황이나 정권일 테지만, 촛불은 시다. 그렇다면 시인이 할 일은 눈보라 속에서도 불꽃을 지키는 일이 아닐까. 김연수는 파스테르나크를 믿기로 했다. 그 믿음은 <일곱 해의 마지막> 안에 이렇게 부려졌다.

“시의 할 일은 눈보라 속에서도 그 불꽃을 피워 올리는 데까지다. 잠시나마 타오르는 불꽃을 통해 시의 언어는 먼 미래의 독자에게 옮겨붙는다.” -<일곱 해의 마지막>, 81쪽

단편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세계의 끝 여자친구>에 수록)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인물들이 불을 보고, <일곱 해의 마지막>에서도 기행이 저절로 생겨난 천불을 봅니다. ‘불’이 변주처럼도 느껴지는데요.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불은 그 시절에 제가 실제로 봤던 서울 용산과 남대문의 불이에요. 그 불들이 우리를 변화시켰죠. <일곱 해의 마지막>의 불은 눈과 대비되는 불이고요.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김계옥이 연주한 ‘눈이 내린다’는 원래 혁명 가곡입니다. 눈은 하얗게 뒤덮는 혁명의 순수성, 순결한 이미지를 상징하죠. 김수영의 시 중에 눈에다 기침하고 침을 뱉으라는 시(‘눈’)가 있는데, 이 시가 무척 묘합니다. 사람들은 눈을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시인이 그 하얀 데다 침을 뱉으라고 합니다. 이상하잖아요? 눈은 생명의 순수성이라 아름답지만 너무나 연약해서 금방 녹고, 찰나적으로 바뀌고, 한번 밟히면 훼손되는 순결성이에요. 그것이 무엇이든 젊었을 땐 절대 양보할 수 없어서 목숨 걸고 지키려 들지만 30~40대가 지나면서 저는 누구든, 한 번은 훼손당한다고 생각해요. 기행도 마찬가지로 한 번 훼손됐고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김수영 시인이 왜 젊은 시인에게 침을 뱉으라 했을까 생각해보면 어차피 인간 삶은 훼손되는 과정이다, 네가 생각하는 순결성이나 아름다운 이념이라는 것도 이 정도밖에 안 된다고 봤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아무런 구원도 없는 걸까요. 파스테르나크가 말한 불은 불이 옮겨붙는다는 의미예요. 찰나적으로만 존재하는 인간하고는 다른, 계속 이어지는 삶 같은 겁니다. 백석은 자기 시가 세상에 남아 있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남한 사회에 널리 퍼졌어요. 불이 되살아나는 것과 같은 속성이 만들어진 거죠.

옮겨붙어 삶을 계속하게 하는 울음

옮겨붙어 삶을 계속되게 하는 게 꼭 ‘불’만은 아닐 것이다. 울음은 어떤가. “동쪽에서 정체불명의 낯선 민족이 화물칸에 실려와 황야에 버려졌다는 소식을 듣고 카자흐의 여인들이 빵을 구워 식을세라 모포에 감싸고” 찾아온다. “한인들이 울면서 그 빵을 먹는 동안, 카자흐 연인들도 울음에 합세”한다(<일곱 해의 마지막>, 95쪽). 그렇게 옮겨붙는 울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생명에의 의지가 아니었을까.

어떤 사람들은 ‘왜’에서 놓여나지 못해 한평생 괴로워합니다. 선생님은 작품마다 ‘왜’는 알 수 없다면서도 매번 원인을 파고들어 갑니다. 이번 소설에서도 백석이 왜 다시 쓰기 시작했는가, 왜 못 쓰는가에 주목했고요. ‘왜’는 모르지만 ‘어떻게’를 정교하게 드러내면 ‘왜’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 건가요.

그런 셈이죠. 말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저는 글쓰기 기술자인데 전달이 안 될 걸 알면서도 조금 더 잘 전하고 싶어서 더 묘사하려 애써요. 마음은 쓸 수 없으니 형식만 쓰는 겁니다. 쓸 수 없는 건 포기하고 쓸 수 있는 것만 썼는데도, 읽는 사람이 제가 쓸 수 없다는 걸 이해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때 새삼 알죠. ‘아, 이렇게 전달이 되는구나.’ 저는 그걸 비어 있는 도넛으로 이해해요. 제가 빵집 아들인데도 도넛의 동그라미는 메울 수 없어요. (웃음) 그냥 열심히 도넛의 고리만 만들 뿐이죠. 정작 전달하고 싶은 건 가운데 빈 부분이지만, 그건 끝내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산문집 <시절일기> 출간 뒤 가진 매체 인터뷰들을 보면 40대를 힘들게 보냈다고 하셨어요. 한동안 소설이 나오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할까요.

그 시절에 제가 좋아하던 분들이 많이 돌아가셨어요. 책이 나와서 보내드리면 무척 좋아하시던 분들인데…. 정권이 망가지고 역사가 뒤로 돌아가니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는 비관적인 생각도 강했어요. 촛불시위에도 자주 나갔는데, 좀 지나면 몹시 피곤한 거예요. 왜 이러고 있어야 하나 싶어서요. 제가 좋아하는 건 귀로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으면서 교보(문고) 가서 책 보는 정돈데 이 정도도 해줄 수 없나, 원망도 들더군요. 그땐 글 쓰는 게 별로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써봐야 다 비관적인 이야기밖에 안 나오고. 그 시절에 빛이 드는 방향으로 달려가는 외젠 뷔르낭의 베드로와 요한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스위스 화가 외젠 뷔르낭의 그림 <무덤으로 달려가는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유명하다). 모르는 순간에는 ‘빛’을 선택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니까요.

*21이 사랑한 작가 김연수② 언젠가, 아마도, 반드시로 이어집니다.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9106.html

*21이 사랑한 작가들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446/

—————————

김연수의 뮤직박스

소설가 김연수의 팬이라면 그가 까다롭고도 좋은 귀를 가진 ‘리스너’라는 걸 모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꽤 오랫동안 그의 블로그 ‘읽Go 듣Go 달린다’에 드나들며 그가 올려놓는 음악을 들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어째 올라오는 게 없었다. ‘요즘은 어떤 음악을 혼자서만 듣고 있는지’ 묻는다면 당연히 신곡들을 알려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는 요즘 이광조·한영애·김영미·이정선이 멤버로 활동하던 시절의 첫 번째 음반 《해바라기》를 거의 매일 듣고 있다고 했다. 나이 들어가는 이유인지 요즘은 옛날 노래가 좋다는데, 하긴 “우리가 지금은 헤어져도 하나도 아프지 않아요”로 시작하는 <지금은 헤어져도>의 첫 소절을 듣고 나면, 《해바라기》를 한 번도 안 들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듣는 사람은 없게 되리라.

또 <원더풀 투나이트>(Wonderful Tonight)가 수록된 에릭 클랩턴의 1970년대 음반 《슬로 핸드》(Slow Hand)에도 빠져 있다. 어쩐지 중년 남자의 느끼함이 묻어나는 것 같아 <원더풀 투나이트>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느린 멜로디도 기타 소리도 좋기만 하다고.

작업실 한쪽엔 기타와 악보가 있다. 머릿속을 비우고 싶을 때 그는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라그리마>(Lágrima·눈물)를 손가락 운동하듯 연습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 곡만 쳤다니 연주는 어떨지 한없이 궁금했지만, 청해보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만일 <일곱 해의 마지막>을 음악 버전으로도 느끼고 싶다면 저자가 ‘작가의 말’에 소개한 대로, 김계옥의 <눈이 내린다>나 아와야 노리코의 <남의 마음도 몰라주고> 그리고 바흐의 칸타타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을 찾아 들어도 좋겠다.

김민아 <아픈 몸 더 아픈 차별> 저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