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하다보면 길을 물어보는 사람이 많다. 누가 봐도 배달 복장이니, 길을 잘 알 것 같은가보다. 잘 찾았다. 조금 자랑하자면, 서울 마포구 합정·홍익대·망원 쪽 주소만 불러주면 머리에는 내비게이션 3D 그래픽처럼 지도가 떠오른다. 길을 잃었다면 근처 배달라이더를 붙잡고 신주소(도로명주소)를 불러주면 금방 찾을 수 있다.
잘 모르는 것, 잘 아는 것처럼
지난 토요일, 중년 여성이 길을 물었다. 억양을 보니 중국에서 온 동포 같았다. 그가 찾는 곳은 식당이었다. 신기하게도 다음 배달지 골목에서도 길을 물어보는 중년 여성을 만났다. 이번에는 다급한 반말이었다. “어디야?” 역시 중국 억양이다. 나도 모르게 중국 억양으로 “주~소~, 주소 불러주세요”라고 했다. 한국말을 잘 못하는 듯해, 주소가 적힌 휴대전화 문자를 보여달라고 했더니 한자로만 적혀 있었다. 입장이 바뀌니 그의 막막함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겨우 ‘아구찜’이라는 말을 알아듣고 길을 알려줬다.
그때그때 일감을 받아 식당을 찾아가는 이주여성 노동자가 늘어나는 것 같다. 문득 이들이 일감을 중개받는 방식과, 일당을 얼마 받는지 궁금했다. 우리는 이미 대부분 식당에서 이주여성 노동자를 고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들이 어떻게 일자리를 얻고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지는 잘 모른다.
마침 JTBC <뉴스룸>에서 평소 궁금하던 지하철 노인택배의 노동환경을 다뤘다. 수수료는 20%. 하루 2만 보를 걸어 겨우 2만원을 손에 쥔다. 배달하는 무게의 제한도 없고, 수수료도 제각각이다. 이들을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은 아무 규제 없이 사업을 운영한다. 노인들이 배달 콜을 잡기 위해 대기하는 공간에는 휴게실이 없어 일하는 사람 스스로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우리는 노인들의 택배·카드배달 서비스를 이용하지만 이들의 노동환경은 잘 모른다. 사실은 알 필요가 없다. 이주노동자, 노인 등 노동 담론에서조차 배제된 이들 삶의 동선은 주류 삶의 동선과 분리돼 있다.
<매일경제>에서 최근 배달라이더에 대한 기사를 썼다. 배민라이더스가 노동자 신분의 라이더이고 라이더가 원하면 근로자와 플랫폼노동자를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배민라이더스는 근로자가 아니라 회사와 위탁계약을 맺은 특수고용형태노동자다. 근로자 신분의 직고용 라이더는 100명이 채 안 되고, 3개월 계약직에 불과하다. 쿠팡이츠를 비롯한 다른 플랫폼은 직고용 라이더를 뽑지 않는다. 거짓말이 기사가 됐다. 기사에서는 플랫폼의 지휘·감독을 받을 필요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플랫폼 프로그램에서 배차하는 배달을 거부하면 앱 접속이 막히거나, 페널티를 받는다. 1분이면 되는 쿠팡이츠를 깔아보기만 해도 단번에 알 수 있고, 배민커넥터로 등록해 위탁계약서를 써봤거나 지나가는 라이더를 붙잡고 물어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이런 기사에 유명 대학 교수들의 말이 얹힌다. 일부 학자와 정치인 오피니언리더는 잘 모르는 것도 잘 아는 것처럼 발언한다. 그리고 취약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한다는 명분도 얹는다.
똑같은 ‘나는 임차인입니다’
우리의 삶과 노동은 울타리가 쳐져 있고 분리되어 있다. 울타리를 부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반드시 식당일을 해봐야, 노인택배일을 해봐야, 배달일을 해봐야 발언할 수 있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다만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돌아보고, 잘 모르는 삶과 노동 앞에 겸손하길 바랄 뿐이다. ‘나는 임차인입니다’로 시작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의 연설이 똑같은 말로 시작한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의 말보다 힘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