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서재의 첫 책은 현직 임상심리학자가 쓴 교양서였다. 저자는 일본 오키나와의 돌봄시설에서 조현병 환자들과 함께한 경험을 바탕으로 ‘일상’과 ‘돌봄’에 대해 이야기한다. 얼핏 에세이나 소설 같지만 철학, 사회학, 인류학, 심층심리학을 광범위하게 인용한 학술서다. 어려운 내용인데 잘 읽혔다. 재미있지만 가볍지 않았다. 도입부터 결말까지 퀄리티가 일정하게 유지됐다. 몇 달간의 광범위한 탐색 끝에 그 책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단박에 알았다. 이 책이다. 이 책이 바로 우리의 첫 책이다.
바로 계약하고 작업에 들어갔다. 정부의 청년창업 지원사업에 선정돼 받은 자금을 반년 안에 모두 소진해야 하기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한 달간 출석해 창업교육을 받은 남편이 대표, 내가 편집장이 되었다. 번역에서 편집에 이르는 과정은 수월했다. 원고를 만지며 다섯 번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감동받았다. 행복했다. 아, 나만을 위한 일이라는 건, 하고 싶은 일만 한다는 건 이토록 즐거운 일이구나. 그런 순진한 생각을 했다.
창업지원자금 소진 기한이 임박할 무렵, 책이 나왔다. 한숨 돌렸다, 하고 생각했다. 나는 10년 넘게 조직에서 일한 편집자다. 규모 있는 회사에서 편집자는 책을 내고 보도자료를 넘기고 몇 가지 홍보 업무를 지원하면, 다음 책을 만들었다. 이 책을 다 만들면 저 책을 만든다. 그게 편집자의 일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모든 일을 해야 하는 작은 출판사에서 ‘내 일’이란 것은 없었다.
일은 끝난 것 같다가도 다시 시작됐고 해본 적 없는 일도 해야 했다. 서점 영업, 출고와 재고 관리, 회계, 마케팅 콘텐츠 생산, 독자 응대, 우편과 택배를 포함한 각종 잡무…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는 회사는 없었다. 출퇴근이 따로 없는, 회사의 온갖 허드렛일을 다 해야 하는, 매일 야근해도 월급 한 번 안 주는 회사. 창업이란 그런 것이었다.
책은 예상만큼 나가주지 않았다. 책 한 권 팔아야 겨우 몇천원 손에 들어오는 출판사에서 1천원도 벌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래도 매일 잊지 않고 책을 챙기고 살폈다. 책을 뚝딱 만들어놓고 돌아서서 다른 책을 만들던 시절에는 한권 한권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이 책이 좀 안 팔려도 다음 책을 잘 팔면 되니까. 안 팔리는 책은 이미 나와버린 결과이고, 어쩔 수 없는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둘이서 책 한 권을 몇 달에 걸쳐 공들여 만드는 지금, 그런 결말은 없다. 책이 나온 뒤에도 이어지는 수많은 일을 한다. 책을 생산할 뿐 아니라 양육하고 간병한다. 첫 책의 주제처럼 우리는 책을 꽤 오래 ‘돌보았다’.
출간된 책이 신간 코너에서 사라질 때쯤 이런저런 일이 끝난다. 그렇다고 아, 이제 끝! 하고 후련해하며 맥주를 마시지 않는다. 다음 책의 여정을 이어가며 이전 책을 진행하며 했던 고민을 계속할 뿐이다. 책을 만드는 일도, 한 권의 책도, 일의 결과가 아니라 거대한 일의 부분을 이루는 하나의 과정이다. 어쩌면 그래서 이 일을 계속해나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책에 최선을 다하지만 잘 안돼도 실패를 교훈 삼아 다음을 기약하는 것. 그렇게 책을 쌓아가며 출판사를 만드는 것. 그게 내가 하는 일의 본질이었다.
기대만큼 팔려주지 않은 첫 책은 그래도 우리에게 한 가지 선물을 주었다. 다다서재의 방향, 앞으로 낼 책에 대한 실마리였다. 우리는 ‘돌봄’ ‘당사자성’ ‘다양성’으로 주제를 좁혀, 다음 책들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김남희 다다서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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