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레인 N. 아론은 ‘민감성’에 주목한 최초의 심리학자다. ‘매우 민감한 사람’(The Highly Sensitive Person)을 분류하면서, 민감성을 창조성과 공감 능력의 근원으로 봤다. 까칠하다거나 신경질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이유가 없는, 하나의 분명한 심리적 캐릭터라는 것이다. (웅진지식하우스 펴냄)는 민감성을 파고든 70대 심리학자가 마침내 도착한 목적지다.
원제목은 ‘과소평가된 나’(The Undervalued Self). 이 개념은 ‘사랑받을 권리’를 관통하는 열쇳말이다. 책에서는 ‘못난 나’로 번역돼 사용된다. 자신을 지나칠 정도로 낮게 평가하고 심지어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심리 기제를 ‘못난 나’로 이름 붙였다. 아론은 ‘사랑’과 ‘호감’을 주로 연구해왔다. ‘타인을 좋아하고(사랑) 도우려는(호감) 타고난 성향’ 반대편에, 타인을 경쟁자로 인식하거나 절대 지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다. 이를 반영하듯 세상은 ‘관계 맺기’와 ‘순위 매기기’가 혼재된 곳이다. 아론은 관계를 맺으려는 욕구도, 순위를 매기려는 욕구도 모두 선천적이라고 본다. 문제는, 순위 매기기의 욕구가 ‘못난 나’를 끊임없이 유발한다는 데 있다. ‘나는 여태 뭘 하고 살았길래 이 모양 이 꼴이냐, 친구는 벌써 저 자리에 올랐는데…’ ‘못난 나’는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관계를 망치는 치명적인 요소다.
그럼, ‘못난 나’의 목소리를 스스로 혼내며 다스려야 할까. 아론은 아니라고 말한다. ‘못난 나’의 목소리를 그대로 ‘인정’해보자고 권한다. 민감한 사람들에 대한 연구로 선천적 성향을 인지하고 나면 적응이 쉬워진다는 결론을 가진 아론은 ‘못난 나’ 또한 어쩔 수 없이 타고난 특질임을 받아들이자고 제안한다. 그때부터 ‘못난 나’에 대한 통제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천적으로 놀고 먹고 자는 걸 좋아하고 더 많은 걸 갖고 싶지만, 동시에 그런 욕구를 통제하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못난 나’의 구체적인 역할을 밝히는 대목이다. “내면의 보호자이자 학대자”인 ‘못난 나’는 자신을 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트라우마는 대개 권력이 있는, 즉 순위를 매길 수 있는 이들이 만든다. 심리는 손상을 겪으면 보호에 집중한다. 생명 유지라는 한 가지 목적으로 움직이는 뇌의 체내 균형을 향한 노력이다. 이러한 정서적 도식을 인지하면 방어기제인 ‘못난 나’를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다. 혼자가 아니었구나. 이 책을 들고 나서면, ‘상처받은 나를 포기하지 않은 나’라는 슬픈 문지기를 만난다.
2010년 미국에서 출간된 책이다. ‘못난 나’를 더는 혐오하지 않게 된 당신은, ‘사랑받을 권리’를 밑동 삼은 트라우마 치유에 관한 요즘 책들을 한결 쉽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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