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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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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하고 싶은 ‘다꾸’

마테·판스로 다이어리 꾸미면 평범한 하루도 특별해진다
등록 2020-02-04 22:01 수정 2020-05-03 04:29
너도밤나무 제공

너도밤나무 제공

마테(마스킹테이프), 인스(인쇄소 스티커), 떡메(한 장씩 떼어 쓰는 메모지), 판스(사각형 스티커)….

이 알쏭달쏭한 용어를 안다면, 당신은 다이어리 꾸미기를 좀 아는 사람이다. 이 용어는 다이어리 꾸미기를 할 때 사용하는 문구용품의 줄임말이다. 여기서 또 하나. 다이어리 꾸미기 역시 줄여서 ‘다꾸’라고 부른다. 이 다꾸가 요즘 10~30대를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다.

스마트폰 대신 ‘6공 다이어리’

스마트폰 하나면 무엇이든 기록할 수 있는 세상에 웬 종이 다이어리를 쓰냐고? 레트로(복고) 열풍을 타고 종이 다이어리를 쓰는 이가 늘고 있다. 1990년대 유행했던 추억의 문구 ‘6공 다이어리’가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6공 다이어리는 구멍이 6개 뚫린 속지를 다이어리 링에 끼워 사용하는 제품이다.

교보문고의 문구 소품 판매점 핫트랙스에선 2019년 다이어리 판매량이 전년보다 4.5% 늘었다. 구매를 성별로 살펴보면 여성이 77%로 절반을 넘었고, 남성은 23%에 그쳤다. 연령별로는 10대(2%), 20대(33%), 30대(25%), 40대(25%), 50대(12%) 등이었다. 20~30대에서 판매율이 높은 편이다. 다이어리를 꾸밀 수 있는 문구 제품인 ‘다꾸’ 용품의 판매도 늘고 있다. 교보문고 핫트랙스의 다꾸 용품의 2019년 판매율은 전년보다 32% 올랐다.

10~30대에서 다꾸 문화가 형성되면서 전문용품 매장과 인터넷 ‘다꾸’ 모임이 생기고 있다. 다꾸로그, 다꾸 ASMR(특정 자극을 통해 심리적 안정이나 쾌감 등을 느끼는 현상) 등 다양한 콘텐츠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다꾸’ 관련 게시물은 30만 건이 넘고, 유튜브에는 ‘테두리 글씨로 다꾸’, ‘다꾸 잘하는 꿀팁’ 등 영상이 수백 개 올라온다.

이렇듯 사람들이 종이 다이어리를 찾는 건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적 감성’에 대한 갈증이 한 원인이다. 손으로 만지고 무언가를 꾸밀 수 있는 다이어리는 그 감성을 채워주는 도구다. 책 을 쓴 문화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색스는 “아날로그의 계량화될 수 없는 즐거움”도 다이어리를 찾는 이유라고 꼽는다. 아날로그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소유하는 기쁨을 준다는 얘기다. 한 예로 신문을 넘길 때 손에서 느껴지는 종이의 질감, 턴테이블 바늘이 레코드판에 내려가 닿으면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순간의 느낌은 스마트폰과 컴퓨터 화면에선 접할 수 없는 것들이다.

허윤희 기자

허윤희 기자

전문 쇼핑몰서 전문 유튜버까지

를 펴낸 너도밤나무(36·필명)는 “다이어리 꾸미기의 매력은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이어리에 하루 일정, 그날의 단상, 기억에 남는 말, 좋아하는 연예인이 낸 노래 가사 등을 적어요. 그렇게 적어놓은 일들은 기억에 오래 남아요. 휴대전화로 특별한 순간을 찍어놓는 것보다 더 오래 남아요. 내 손으로 적은 하루의 기록이 1년 동안 쌓이면 어느 새 나에 관한 이야기를 적은 한 권의 책이 됩니다.”

그는 2013년 다이어리 꾸미기 카페에 가입하면서 다이어리를 꾸미기 시작했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같은 재료를 써서 다이어리 꾸미는 재미가 쏠쏠하단다. “같은 재료를 줘도 똑같이 꾸미는 사람은 없어요. 자기 취향과 개성에 맞게 다이어리를 꾸며요. 나랑 다르게 꾸미는 사람들의 다이어리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도 있어요.” 이제는 11살 딸도 그처럼 다이어리 꾸미기에 푹 빠져 있다. 딸은 주로 손글씨와 손그림만으로 다이어리를 꾸민다.

그의 주요 소비 품목은 다꾸 용품이다. 옷이나 화장품은 잘 안 사지만 펜이나 스티커 등 다꾸 용품은 꼭 산다. 한 달에 다꾸 용품 구입비로 10만∼20만원 든다. 그는 다이어리를 꾸미다보니 자연스럽게 디자인 문구, 스탬프, 공예 재료에 관심 가지게 됐다. 오로지 손으로 하는 꾸미기의 영역을 넓혔다. 선물 포장, 미니 달력, 편지와 엽서 등을 직접 만들거나 꾸며서 사용한다.

다이어리 꾸미기를 영상으로 올리는 유튜버도 늘고 있다. ‘밥팅’으로 활동하는 김민지(22)씨는 구독자 20만 명을 보유한 다이어리 꾸미기 크리에이터다. 예쁜 필기구를 좋아하면서 취미로 다이어리를 꾸미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 교환일기가 유행했어요. 일기장에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사진을 붙이고 꾸몄어요. 그렇게 어릴 때부터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그림도 자주 그리고요. 그러다 2015년부터 유튜브에 제가 만든 다이어리 꾸미기 영상을 올렸어요.”

원형 스티커, 사진 등을 이용해 다이어리를 꾸미는 ‘만두몽키’. 만두몽키 제공

원형 스티커, 사진 등을 이용해 다이어리를 꾸미는 ‘만두몽키’. 만두몽키 제공

꾸민 다이어리 다시 펴보는 뿌듯함

김씨는 나날이 높아지는 다이어리 꾸미기의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3년 전에는 자신을 소개할 때 ‘다이어리 꾸미기를 주제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어요’라고 하면 이해하는 분이 거의 없었죠. 지금은 다양한 다꾸 문구 브랜드가 나오고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꾸미기 재료를 파는 작가가 많이 생겼어요. 이제 다이어리 꾸미기는 단순히 일기장 꾸미기를 넘어 누군가의 직업, 누군가의 인생을 담은 포트폴리오가 되고 있어요.”

김씨에게 다이어리는 단순히 기록하는 도구를 넘어 자신을 표현하는 아이템이다. “다이어리 빈 공간을 나만의 방법으로, 내 취향대로, 내가 좋아하는 색으로 꾸미다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행복해져요.” 다이어리에 담긴 그날의 자기 기분도 알 수 있다. “우울할 때는 꺾임체를 써요. 그런 글씨로 시나 노래 가사를 적어요. 보통은 둥글둥글한 모양의 글씨체를 주로 써요. 이 세상 하나뿐인 내 글씨체 밥팅체예요.” 때론 다이어리를 꾸미기 싫은 권태기가 오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다이어리를 편다. “연말이 되면 1년 동안 내가 꾸민 다이어리를 쭉 다시 봐요. 지난 1년이 스치듯 지나가요. 그제야 다이어리 꾸미기의 진가를 느낄 수 있어요. 정말 뿌듯해요.”

를 펴낸 ‘만두몽키’ 하은지(32)씨는 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다꾸러(다이어리 꾸미기를 즐겨 하는 사람)로 생활한다. 어릴 적부터 사람 많은 곳에 놀러 다니기보다 집에서 손으로 무언가를 꼼지락거리는 것을 좋아했다. 책상에 앉아 이것저것 꾸미고 만들고 그리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책상에 앉아 다이어리를 꾸미는 시간은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이에요. 다이어리에 스티커를 붙이고 글씨를 쓰다보면 스트레스가 풀려요. 스마트폰에 적는 것보다 종이에 직접 적는 걸 좋아해요. 손으로 무언가를 끄적일 때 행복을 느끼는 것 같아요.” 마치 뜨개질하는 것처럼 한땀 한땀 손으로 직접 하는 다이어리 꾸미기는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그동안 꾸민 다이어리만 10권이 넘는다. 그 다이어리들이 보물 1호다.

하씨는 일정을 적는 다이어리와 ‘작은 일기장’ 같은 다이어리 2개를 꼭 갖고 다닌다. 그날 하루를 기록하는 건 일상이 되었다. 바쁜 일정이 끝난 뒤나 점심시간 등 틈날 때마다 스마트폰을 보는 대신 다이어리에 그날그날을 기록한다.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 같지만 다이어리에 적은 날을 보면 다 특별해 보여요. 내가 ‘이럴 때 이런 생각을 했구나’ 다시 돌아봐요. 잘 몰랐던 나를 발견할 때가 있어요.”

할머니 될 때까지 다꾸!

다이어리 꾸미기는 ‘힐링 취미’이기도 하다. “제 다꾸 블로그를 찾는 분 중에 ‘육아 우울증이 왔는데 다꾸를 하면서 나아졌다’고 댓글을 남긴 분이 있었어요. 저 역시 다이어리를 꾸미면서 스스로 다독이고 위로해요. 오늘을 돌아보고 더 나은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어요.”

하씨는 무엇보다 다이어리를 꾸미면서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알게 됐다. “라는 책 제목처럼 ‘다꾸’ 하는 매일이 제겐 행복이고 기쁨이에요. ‘다꾸’ 덕분에 행복한 일이 매일 있네요. 제 꿈은 ‘다꾸’ 하는 할머니가 되는 거예요. 한때의 취미가 아니라 앞으로도 쭉 ‘다꾸’를 할 겁니다.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에 이만한 취미가 또 있을까요.(웃음)”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금손’들이 전하는 꿀팁


이것만 알면 ‘프로 다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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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 첫 장부터 어떻게 꾸며야 할지 막막한 초보자들. 글자 한 자를 쓰기도, 선 하나 긋는 것도 조심스럽다. 첫 수작업에 손 떨리는 이들에게 다이어리 꾸미기 고수인 너도밤나무, 밥팅, 만두몽키가 초보자에게 유용한 다꾸의 팁을 알려준다.
# 너도밤나무
다이어리를 꾸밀 때 제일 먼저 그 페이지의 색을 정해요. 예를 들어 회색으로 정하면 그 색에 어울리는 스티커, 스탬프를 고릅니다. 이렇게 색만 맞춰도 정돈돼 안정감이 있어요. 손글씨나 손그림에 자신이 없으면 다양한 소품을 활용하세요. 폴라로이드 사진이나 영수증, 승차권 등도 붙이면 색다른 다이어리를 꾸밀 수 있습니다.
#밥팅
다이어리를 다시 책상 위에 꺼내놓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당신은 다꾸의 고수입니다. 일단 시작이 반입니다. 빈 공간을 채우는 걸 막막해하는 이가 많은데, 이런 분들은 비교적 공간이 작은 먼슬리(매월) 다이어리를 시작하길 권합니다. 작은 공간을 채우는 것으로 시작하면 좋아요. 그렇게 ‘다꾸감’(다이어리 꾸미기 감각)을 익히는 게 좋습니다. 저는 제목과 레이아웃을 먼저 생각해요. 그 공간의 콘셉트를 정하고 제목을 달아요. 사진이나 스티커를 어디에 붙일지 생각하면서 꾸미기를 해보세요.
#만두몽키
글씨 못 쓴다고 다이어리 꾸미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요. 어떻게 글씨를 잘 쓰냐고 묻는 분도 많고요. 무엇보다 자신의 글씨체를 미워하지 말았으면 해요. 글씨 쓰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딱 한 달만 꾸준히 해보세요. 빈칸을 채우기 힘들면 스티커도 활용하고요. 꾸준히 하다보면 습관이 돼요. 한 달 치를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해집니다. 그게 다음 달을 꾸미는 힘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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