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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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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어

등록 2020-01-03 11:37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여자는 아침에 쓰는 클렌징폼을 소개했다. 거울을 보며 화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며 여자의 출근길이 빠르게 지나갔다. 사무실에서는 조용히 속삭이며 말했다. 아침에는 꼭 비타민을 먹어요. 여자는 비타민통을 화면에 가까이 보여주었다. 어떤 성분이 있는지, 효능은 무엇인지 꼼꼼하게 읽었다. 그러다 급하게 일어나서는 회의에 가야 한다고 속삭였다.

그야말로 무해하고 다정한 영상이었다. 유튜브의 재생 목록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일상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연예인부터 직장인, 고시생,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 모습을 영상으로 올렸다. 나는 지루하게 흘러가는 여자의 업무 시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번 역은 사당입니다. 2호선으로 갈아타시는 승객께서는….”

환승 소리는 잔잔한 음악을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지하철 안은 사람들로 빽빽했다. 모두 정수리만을 서로에게 보인 채 출입문을 향해 밀어댔다.

“회사 앞에 있는 빵집에서 사온 샌드위치예요.”

아침부터 옆자리의 효진은 휴대폰 카메라에 대고 혼잣말을 했다. 샌드위치 포장을 야무지게 뜯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먹기 시작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입꼬리를 둥글게 말며 웃었다. 효진은 종종 회사에서 브이로그*를 촬영했다. 점심시간에는 옆 테이블에 휴대폰을 두고 식사하는 모습을 찍기도 했다. 황 대리는 우리 뒤를 지나가며 헛기침을 했다. 효진은 깜짝 놀란 듯 어깨를 들썩였다. 아마 저 부분에는 대리님한테 딱 걸렸어요! 같은 자막이 들어갈 것이다.

내 책상 위에는 글씨가 빽빽한 종이 뭉치가 있었다. 오늘 할 일이다.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후 나는 당연하게도 세 번의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그리고 결국 1년째 교육 출판 회사에서 일하는 중이다. 임용고시를 포기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중학교 국어 문제집을 출판하기 위해서 나는 몇천 개의 문제를 풀어보아야 했다. 어색한 내용은 없는지, 지문과 잘 어울리는지, 오·탈자는 없는지. 임용 문제집을 이렇게 풀었다면 아마 한번에 붙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우리의 농담이었다. 이곳에는 임용고시생이던 사람이 많이 있다. 우리는 비슷한 고시원에서 같은 기출문제를 풀던 날들로 공감대를 형성했다. 왜 교사가 되지 못했냐고 묻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비슷한 이유일 테니까. 그리고 각자 나름의 이유를 만들어 소란스러운 틈 사이에 끼워넣곤 했다.

“나 다음달 휴가 때 블라디보스토크 가보려고.”

뒷자리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던 현 주임이 내 등을 톡톡 치며 말했다. 나는 느리게 뒤로 돌며 머릿속을 헤집었다. SNS에서 보았던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지를 찾아야 했다.

“와, 정말요? 거기 해적 커피 마셔야 하는 거 아시죠?”

겨우 생각해낸 커피 이름을 장난스럽게 말하자 현 주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게 뭔데? 하고 물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스타벅스 같은 곳이에요. 엄청 싸니까 꼭 가세요. 현 주임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역시, 하는 표정으로 주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이게 바로 나의 변명이었다. 운이 없어서, 라는 말보다 더 설득력 있는 내가 임용고시에 실패한 이유.

“역시 영주씨는 안 가본 데가 없네.”

효진이 쓰레기통에 샌드위치 포장지를 버리며 나를 돌아보는 것이 느껴졌다. 에이, 아니에요. 내가 손사래를 치며 웃자 현 주임은 자리로 돌아갔다. 휴대폰 진동과 함께 항공권 사이트의 알림이 잠금화면에 떴다. 최근에 본 항공권의 검색 횟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빨리 구매하세요! 매번 검색만 하고 구매한 이력이 없는 회원에게는 무의미한 알림이었다. 나는 휴대폰 검색창에 블라디보스토크 해적 커피를 검색했다. 기억해낸 내용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런 작업은 섬세하게도 나를 괴롭혔다. 손바닥에서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임용고시를 3년이나 준비했는데 1차도 붙은 적이 없다고? 한심하다는 친척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실패한 시간 동안 내가 해온 것은 오직 실패였다. 그러니까 나의 3년은 오롯이 실패만을 위한 시간이었다. 차라리 여행이라도 많이 다녀본 척, 시험 준비에 성실하지 않았던 사람이 되는 게 마음이 편했다. 여행을 다녔다고 말하는 나를 지금 와서 탓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나는 다시 책상 위에 늘어놓은 문제들을 들여다보았다. 참 쉬운 문제들이었다.

효진은 회의 시간만 되면 조용해졌다. 카메라 앞에서 소곤소곤 잘만 말하다가도 이때는 고장 난 테이프처럼 말이 느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회의 시간마다 보고해야 하는 실수가 너무 많았다. 꼼꼼하지 못한 탓에 오·탈자가 그대로 인쇄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녀 때문에 이미 발행된 문제집에 일일이 스티커를 붙여야 하는 사건도 있었다.

“휴대폰으로 영상 같은 거 찍지 말고 제발 한글이나 똑바로 읽어요.”

화난 황 대리가 종종 하는 말이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딴청을 피우며 힐끔힐끔 효진을 엿보았다. 회의실 공기는 아주 미지근하고, 무거웠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그녀는 씩씩거리며 나를 탕비실로 끌고 갔다. 작은 의자 세 개가 있는 탕비실은 사무실과 독립된 공간이었다. 효진은 문을 닫았다. 커피머신 때문에 눅눅한 공기가 답답했다. 효진은 커피 한 잔을 내렸다. 영주씨도 마실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빠른 속도로 하소연을 했다. 커피머신 소리 때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최대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그녀를 처음 본 건 2년 전쯤이었다. 사람들은 고시원에서 밤새 공부할 때면 외롭지 않냐고 묻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다닥다닥 붙은 고시촌에서는 밤만 되면 한숨 소리가 들렸고, 인터넷 강의가 나지막하게 벽에서 흘러나왔다. 그럴 때마다 어떤 사람은 벽을 쿵쿵 두드렸다. 나만 그 시간까지 잠을 잘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걸 너무나 잘 알았다. 방문과 마주 보는 곳에 놓인 책상, 바로 옆에 놓인 냉장고, 옷장 그리고 화장실. 여섯 개의 층에 사는 모두가 같은 구조의 공간에서 서로 포개진 채 비슷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면 오랫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끝없는 생각을 하다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기도 했다. 그럴 때면 꼭 책상에 앉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들과 똑같이 해야 할 것 같은 느낌. 어떤 강의를 듣고 있을까, 어느 파트를 풀고 있을까. 그런 이유를 알 수 없는 궁금증을 달래주던 것이 바로 효진이었다. 정확히는 효진이 공부하는 영상이었다.

그녀는 ‘같이 공부해요’라는 타이틀로 하루하루 영상을 올렸다. 구독자 수는 30명도 채 되지 않는 채널이었다. 나는 대부분 그렇듯이 그녀가 누군지 알 수 없었지만, 영상을 틀어 책상 한쪽에 올려두었다. 반에서 1등을 하던 옆자리 친구의 교과서를 몰래 훔쳐보던 때가 떠올랐다. 허리를 뒤로 젖히며 목을 길게 빼던 그때, 아마도 나의 첫 관음이 시작됐던 게 아닐까. 미술 시간에 옆자리 친구와 비슷한 색을 찾아 색칠하고, 그렇게 훔쳐보고 따라 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녀는 긴 머리카락을 넘겨가며 오랫동안 문제를 풀었다. 한참 동안 볼펜 끝을 이로 물고 있기도 했다. 나는 영상 속에서 그녀의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의 문제집과 필기 노트를 힐끔힐끔 보며 공부했다. 그렇게 스톱워치의 숫자가 높아지는 동안, 우리가 함께 임용고시에 합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임용고시에만 전념하는 걸 포기하고 이 회사에 입사한 뒤로도 그녀는 계속 영상을 올렸다. 나는 피곤한 밤에도 그녀의 영상을 보며 책을 펼쳤다. 아직 버리지 못한 교재들이 자취방 책상 위에 쌓여 있었다.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것을 포기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니까. 입사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을 때, 회사에서 효진을 만났다. 묶어 올린 포니테일 머리를 보자마자 그녀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중고 신입이라며 자신을 소개한 그녀가 너무 반가웠다. 매일 밤 영상 속에서 나와 함께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그녀가 왜 중고 신입인지는 의문이 들었지만, 상관없었다. 그 얼굴이 내 앞에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나는 점심시간마다 그녀 앞자리에 앉았다. 회의에 갈 때마다 준비할 것을 챙겨주고, 집에 가는 길도 비슷해서 함께 지냈다. 영주씨 덕분에 적응 진짜 빨리한 것 같아. 그녀의 말을 들으면 뿌듯함에 몸서리가 쳐졌다. 야근한 후 저녁을 먹으러 갈 때, 밤길을 그녀와 걷는 것이 하루 중 가장 상쾌하던 때도 있었다. 왠지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사이가 된 듯한 착각. 어쨌든 우리는 고시원의 스탠드 불빛을 공유하던 사이니까 괜찮았다. 그녀의 채널을 구독하고 있다는 것을 숨기려던 건 아니었다. 다만 조금 부끄러워서 말하려는 걸 미루었을 뿐이다.

“사무용품은 여기서 사면 돼요. 어? 여기 효진씨가 좋아하는 형광펜 브랜드도 있네.”

효진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순간 멈칫했다.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를 어떻게 알아요? 약간 굳은 표정이었다. 그녀의 물음에 나는 더 당황했다. 머리에서 영상 속 그녀가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는 장면이 반복 재생됐다. 나는 적당한 말을 찾아 계속 더듬었다. 어… 그러니까… 아까 책상에 있던 형광펜이 이거 아니에요? 그제야 그녀는 이해했다는 듯이 웃었다. 맞아요, 저 이 브랜드 엄청 좋아해요! 필기감 진짜 좋은데 영주씨도 써봤어요? 나는 뻣뻣한 목소리로 써보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왼쪽 손으로 책상에 놓인 형광펜을 구석에 몰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효진의 공부 영상은 올라오지 않았다.

“영주씨, 진짜 솔직히 말해봐요. 대리가 말하는 거 너무하지 않아?”

효진은 ‘대리’에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러고는 커피를 테이블에 세게 내려놓았다. 커피 몇 방울이 테이블에 얼룩을 남겼다.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효진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직접 본 나쁜 상황을 다시 듣는 건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특히 야단맞은 사람의 잘못이 크다면 더더욱 그랬다. 효진이 일을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기도 했다. 요즘 뭘 하길래 공부 영상을 안 올리는 거지? 회의 준비도 안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효진은 커피에 시럽을 넣으며 말했다.

“아이디어고 뭐고, 나 모레 연차 내고 오키나와 가려고.”

나는 종이를 넘기던 손을 멈추었다. 그녀는 목요일인 내일, 밤 비행기로 떠날 거라고 했다. 월요일 새벽에 한국으로 돌아오면 엄청 피곤하겠죠?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 모습에 나는 뒤를 돌아 탕비실의 문고리를 잡았다.

“댓글 보니까 왜 여행 브이로그 같은 건 안 찍냐고 해서.”

꽤 진지한 표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몸에서 무언가를 토해내고 싶어졌다. 나는 탕비실을 나왔다. 뒤에서 영주씨가 오키나와에는 뭐가 유명한지 좀 알려줘요! 하고 말했지만,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효진의 채널에 들어갔다. 새로 업데이트된 영상이 있었다. 황 대리가 또 효진을 불렀다. 그녀는 마시던 커피를 뒤로 숨기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영상 섬네일* 속 그녀는 우아한 모습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고시원의 괴담은 상상처럼 섬뜩하지만은 않았다. 1차 시험에 붙은 사람은 꼭 2차 면접 날에 방이 털리더라.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 책상을 어지럽혔다. 고시원에 처음 들어온 날, 그 사건을 처음 보았다. 짐을 들고 복도를 지나가는데 같은 층의 방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방문과 마주 보는 책상에 온갖 노트와 문제집이 어지럽혀져 있었고 바닥에는 형광펜이 쏟아진 채 나뒹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지만, 그것이 방주인의 소행이 아니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 방에 살던 여자는 주인아주머니에게 범인을 잡아달라고 항의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매번 있는 일이라며 쉬쉬할 뿐이었다. 여자가 임용고시에 합격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금방 방을 빼서 나갔고, 그 자리에는 또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

“한 놈이 아닌 거지. 고 간절한 시험에 붙은 사람이 사는 모습 같은 게 궁금했나?”

아주머니는 혀를 차며 말했다. 고시원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일어나던 일이라고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지낸 사람이 없는데도 참 희한한 일이었다.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나든지 말든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도 차라리 1차라도 붙어서 방이 털리면 좋겠다는 농담을 했다. 나는 효진의 영상을 틀었다. 같이 공부해요. 그녀가 쓰던 다이어리를 따라 골랐다. 글씨가 잘 써진다는 펜도, 스톱워치도. 다른 친구들이 SNS에 올리는 여행 동영상이라든지 그런 건 궁금하지 않았다. 이 시기만 지나가면 나도 그들과 똑같아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안주했다. 그리고 이 공간과 영상 속에도 나처럼 사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잖아.

사무실 책상 위 문제집은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책만큼 닳아 있다. 귀퉁이가 접혀 있고, 뭘 흘렸는지 쭈글쭈글한 부분도 있다. 국어에서 문학은 전부 나의 삶 같은 다른 이의 삶이었다. 여기 사람들은 매번 그걸 반복해서 읽었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주인공이 되어서 그 흐름을 계속 읽었다. 다른 사람의 생을 외워야 했다. 그걸 들여다보고, 누군가는 맞혀야 하는 문제들을 만들어냈다. 나는 볼펜 끝을 이로 물었다. 주인공이 왜 아내를 두고 떠나야 했는지, 아들은 어쩌다 다리를 잃었는지 하는 것들이 반드시 중요해야만 했다. 이제는 제목만 보아도 그들의 삶을 알 지경이었다. 나는 그렇게 남의 삶을 교정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효진의 여행에 나는 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을까. 고시 공부를 하며 친구들의 여행 동영상을 스치듯 보았던 기억들이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 버려진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없었던 것들. 노트북으로 자기 삶을 편집하고 있을 그녀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영주씨, 점심 먹으러 가자.”

이제야 점심시간이다. 나는 책상을 정리하고 나왔다. 오늘은 뭐 먹을까. 메뉴를 정하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어차피 가는 곳은 항상 비슷했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제육볶음 같은 것들. 식당으로 가는 길 담장에는 장미꽃이 피어 있었다. 담장이 너무 짧은 탓에 줄기가 많이 굽은 모습이다. 가장 위에 있는 꽃송이는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래에 핀 것들보다 더 커다랗고 색깔이 쨍했다. 효진은 천천히 걸어가며 장미꽃길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다들 기분이 좋은 듯 웃었다.

“저 내일 밤 비행기 타고 오키나와로 가요.”

효진의 말에 사람들이 호들갑스럽게 물었다. 뭐야? 연차야? 너무 부럽다! 나는 머리를 계속 쓸어 넘겼다. 사람들이 웃을 때 따라 웃었다.

“영주씨, 오키나와에서는 어디 가야 해?”

현 주임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 나는 온몸에 래핑이라도 된 것처럼 모든 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속이 답답했다. 뭐… 물놀이해야죠. 아무 말로 얼버무리자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효진에게 옮겨졌다. 화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에게 닿았던 시선은 금방 사라진다. 그걸 붙잡아두려고 매일 밤 보았던 SNS의 카드뉴스가 떠올랐다. 오키나와의 관광지 정보가 기억나면서도 평소처럼 뻔뻔하게 말할 수 없었다. 얼굴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니 얼굴이 창백했다. 열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거울에 닦이지 않은 얼룩이 얼굴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방금 먹은 제육볶음이 순식간에 소화된 것처럼 속이 허했다. 닫힌 문 밖에서 들리는 점심시간의 소란스러움이 낯설게 다가왔다.

자리로 돌아오니 사람들은 다른 화제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연예인 A가 어떤 드라마를 찍었더라. 다른 팀 대리가 가방을 새로 산 것 같더라. 어제 야근하는데 누구 남자친구가 데리러 왔더라. 전부 자신이 바라본 남의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유튜브 재생 목록에 있는 수많은 사람의 일상을 떠올렸다. 하루를 압축시킨 자극적인 문장과 우스꽝스러운 표정들.

퇴근 시간에 맞춰서 효진과 나는 짐을 챙겨 들고 나왔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내내 그녀는 여행 이야기를 했다. 집에 가서 짐을 쌀 거고, 오키나와에 유명한 수족관이 있고… 출근하던 길과 다른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아, 그렇구나. 그래요. 이런 말들을 중얼거렸다.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사람들이 또 어떤 거에 힐링을 느끼려나?”

나는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목구멍을 꽉 닫았다. 효진은 계속해서 말했다.

“좀 새로운 걸 올리고 싶은데 그게 쉽지가 않아요.”

“이제 임용고시 준비는 안 해요?”

내가 욱하듯 묻자 그녀가 큰 소리로 웃었다.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접은 지가 언젠데? 2년은 넘은 것 같아요.”

환한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녀가 공부하는 영상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몇 달 전까지 올라오던 영상들은 어떻게 된 거지? 영상 중에서 효진과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모습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있는 그녀는 수많은 브이로그 속에서 우아한 커피를 마시는 사람과 가까워 보였다.

“그리고 우린 이제 고시생이 아니잖아.”

그녀의 말에 이질감이 들었다. 그녀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내가 걸음을 멈추자 효진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어디 아파요? 아까부터 힘이 없네. 여름이 오는 듯이 미지근한 바람이 볼을 스쳤다. 퇴근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지나쳐 갔다.

“그냥 좀 남들처럼 살아.”

내가 말하자 효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우린 한참을 말이 없었다. 주변은 소란스러웠고, 지하철이 금방 들어오는 듯 사람들이 뛰었다. 그녀가 입을 뗐다.

“이게 남들처럼 사는 거잖아.”

그리고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영주씨가 공부할 때 여행을 많이 다녔던 것처럼.”

나의 귀가 소음을 차단했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집에 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거짓말처럼 항상 다니던 길로 걸어갔다. 나는 눈을 깜빡이는지, 숨은 쉬고 있는지 아무것도 의식이 되지 않았다. 내가 다녀온 것이 되어버린 여행지들의 이름은 저 먼 곳에서 낯선 목소리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한 번도 그 부름에 응한 적은 없었다. 그건 다 남들처럼 살기 위한 변명이었을까.

고시원의 내 방에도 도둑이 들어온 적이 있었다. 학원을 마치고 돌아온 방은 난장판이었다. 책상에는 온갖 책이 이리저리 쌓여 있었고, 바닥에는 찢어진 종이와 볼펜 잉크로 낭자했다. 나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책상에서는 스톱워치가 시간을 재고 있었다. 내가 공부하지 않는 시간에도 기록은 계속되고 있었다. 괴담 속 내용과 비슷한 모습을 한 내 방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열린 문 뒤에서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다들 내 방을 한 번씩 힐끔거리며 지나갔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내 귀에는 이런 소리가 들렸다. 쟤 1차 떨어지지 않았어? 근데 왜 쟤 방을 털었지? 나는 문을 닫았다. 봉투를 꺼내서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주워 담았다. 볼펜 잉크가 손에 물들었다. 비닐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옆방에서 벽을 쾅쾅 두드렸다. 걸레를 빨아서 바닥을 닦았다. 책상을 정리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책상에 앉아서 책을 펼쳤다.

어느새 나는 1차에 붙지 않았는데도 방이 털린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시험에서 떨어졌다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걸 입 밖에 내는 것과 내지 않는 것은 다르다. 평소처럼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무리에 뭉뚱그려져 있던 내가 ‘시험에서 떨어졌는데 방이 털린 사람’으로 분류된 것이다. 마지막 시험이었다. 나는 방에 있는 짐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방이 털린 사람 모두가 그랬듯이 이번에는 내가 짐을 뺄 차례였다. 얼마 전 구매한 유명 강사의 교재가 사라졌다는 것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퇴근 후, 불이 꺼진 집에 들어가는 것은 꽤 안정적인 일이다. 셀 수 없는 눈들이 돌아다니는 바깥에서 어두운 곳으로 들어갈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반나절 동안 비어 있던 집의 무거운 공기가 훅 나를 채웠다. 불을 켜고 침대에 몸을 파묻었다. 오늘 하루의 나 자신이 한순간에 모두 죽어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효진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이게 남들처럼 사는 거잖아. 나는 효진의 유튜브 채널에 들어갔다. 30명도 채 되지 않던 구독자가 어느새 5만 명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어제 새벽에 업로드된 영상을 재생했다. 그녀는 카페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앞에 앉아 있는 친구와 대화하는 모습은 회사에서의 모습과 비슷한 듯 달랐다. 머리카락을 수시로 넘기고, 귀 뒤에 꽂았다가 다시 풀었다가를 반복했다. 영상 속 음악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자신에 대한 자막은 무엇을 기록하기 위함일지 궁금했다.

효진은 영상의 마지막 부분에서 여행에 대해 말했다. 금요일 저녁에 오키나와로 떠난다고. 리조트 이름을 말하며 사진 자료들을 보여주었다. 영상이 끝나고 나는 댓글을 열어보았다. ‘언니 뭐 가져가세요? 짐 싸는 영상도 찍어주세요.’ 그녀의 캐리어 속을 궁금해하는 이가 꽤 있었다. ‘벌써 짐은 다 쌌는데! 그럼 돌아와서 짐 푸는 영상 찍을게요.’

항공권 사이트에 들어갔다. 수많은 비행 스케줄이 떴다. 어제 본 것보다 몇 개가 줄어 있었다. 다음달에 써야 할 돈이 얼마나 있더라, 이번에 수도세가 얼마나 나왔지? 문득 나의 어두운 방이 고시원의 벽지 색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하얗게 칠해도 그 공기 때문에 칙칙해지는 분위기. 나는 그곳에서 여전히 살고 있었다. 제주도라도 떠난다면, 2박3일로 간다면 어느 정도의 짐을 싸야 할까. 깨끗한 펜션에 도착한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나는 밀짚모자를 쓰고 환하게 웃고 있다. 옆에는 누군가 있어도 되고, 없어도 좋다. 영상에서 본 것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 창문으로 보이는 바다와 그곳에서 햇살을 받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하루 종일 휴대폰의 진동은 울리지 않아야 한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순간에 고요함이 찾아올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내가 손에 쥐고 있어야 하는 여행의 짐, 모든 여행의 상징. 나에게는 캐리어가 없었다. 오늘은 임용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익숙하게 출근할 준비를 했다. 이어폰을 꺼내어 귀에 꽂았다. 나는 콘텐츠가 되어버린 것처럼 달콤한 음악에 맞춰 걸었다. 여름이 오는 느낌에서 멀어진 날씨였다. 바람이 불고 사람들의 우산이 바짓단을 적셨다. 짜증스러운 마음을 접어두고,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입꼬리에 힘을 주었다. 그러면 또다시 평온이 찾아왔다.

효진은 하얀색 캐리어를 끌고 출근했다. 도착하자마자 빗물이 묻을까봐 덮어둔 비닐 커버를 벗겨두었다. 흠집이 하나도 없는 새 캐리어였다.

“처음 가는 거라서 새로 장만했어요.”

그녀는 민망한 듯이 웃었다. 사람들이 몰려와서 효진의 캐리어를 구경했다. 어디 브랜드 거야? 이거 비싸지 않아? 얼마 주고 샀어? 온갖 호기심이 그녀를 뒤덮었다. 나는 그 틈에 껴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캐리어. 바퀴에 모래 한 알 들어가지 않아 매끄럽게 굴러가는 모습에 속이 울렁거렸다. 궁금증을 해결한 사람들은 자리로 돌아갔다. 효진은 자리의 구석에 캐리어를 두었다. 마치 원래 있던 것처럼 사무실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더 이상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저는 속이 안 좋아서 사무실에서 쉬고 있을게요.”

점심시간에 또 오키나와 이야기로 30분을 쓸 것이 뻔했다. 나는 최대한 눈썹을 찡그려가며 말했다. 사람들은 그에 화답하듯이 최대한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좀 쉬고 있어. 텅 빈 사무실은 컴퓨터가 돌아가는 소리만 들렸다. 블라인드를 걷어낸 통유리를 빗방울이 세차게 쳐댔다. 나는 효진의 캐리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떤 옷을 차곡차곡 개서 넣었을까, 다른 사람들처럼 예쁜 튜브를 사서 챙겼을까, 어젯밤 상상한 밀짚모자도 있을까. 그 많은 구독자는 그녀에게 무엇을 바라는 걸까. 손끝에 차가운 감각이 느껴졌다. 캐리어의 자물쇠였다. 나는 버튼을 눌러보았다. 찰칵, 아주 가벼운 소리와 함께 잠금이 풀렸다. 나는 지퍼를 열었다. 조용한 사무실에 지퍼를 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캐리어를 열어보았다.

캐리어에는 내가 상상한 무엇도 들어 있지 않았다. 한쪽에 덩그러니 놓인, 끈으로 묶인 디지털카메라가 전부였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언제부터 있었을까. 효진의 텅 빈 눈과 마주쳤다. 계절을 의식하지 않은 비가 한참 동안 창을 두들겼다.


수상 소감


사회 모습 여실히 반영한 소설 쓰고파


김수진 제공

김수진 제공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초등학교 문집에는 제 장래 희망이 시인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새 교과서를 받으면 가장 먼저 시와 소설을 하나하나 읽었습니다. 문제집을 사도 한 권을 다 풀어본 적은 없지만, 참고 자료에 있는 작품은 전부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언젠간 나도 이런 글을 써야지, 하고 다짐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꿈을 이룰 기회를 손바닥문학상을 통해 선물받은 기분입니다. 무엇보다 심사위원들이 제 작품을 평가해주시고, 그 평가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 행복합니다. 심사평을 읽으며 버스에서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가 제 글을 읽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준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에요. 그런 응원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글을 쓰고 싶습니다. 따뜻한 응원의 말씀은 제가 더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모습을 여실히 반영한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더 치열하고, 정성스럽게 글을 쓰는 사람으로 성장하겠습니다.
제게 뜻깊은 상을 주신 관계자분들, 그리고 심사위원분들께 감사합니다. 고민할 때마다 너는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해주시는 부모님 감사합니다. 제가 처음 글을 쓸 수 있도록 도와주신 고은규 선생님 한없이 감사합니다. 항상 가르침 주시는 단국대학교 교수님들 감사합니다. 말없이 응원해주는 동생, 그리고 함께 글을 쓰는 하옥단문 친구들 모두 고마워요. 이런 감사함을 글로 보답할 수 있는 수진이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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