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대입 정시 비중을 늘리겠다고 했다. 연설 내용을 본 나는 당혹스러웠다. 그런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음은 곧바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를 제외한 여러 교육단체에서 반대 입장을 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어쩌면 유은혜 교육부총리가 가장 당혹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조국 사태로 대학입시의 공정성 문제가 제기됐을 때 더 이상 정시 확대는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위험한 여론 정치대통령은 “국민들께서 가장 가슴 아파하는 것이 교육에서의 불공정”이라고 했다. 국민이 가슴 아파하는 게 어찌 대입제도뿐이랴만, 중요한 관심사인 건 분명하고 정시 확대 여론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지난해에 대입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 오랫동안 논의했고, 거기서 나온 의견을 바탕으로 교육부가 정시 비율 30%안을 권고했다. 그런데 1년 만에 다시 상향될 상황에 놓였다. 대통령도 “정시가 능사는 아닌 줄은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왜 정시 확대를 얘기했을까? 여론은 중요하고 정치인이 여론을 살피지 않을 도리는 없다. 하지만 여론에 끌려다니는 정치는 위험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애초의 공약과 국정철학이 옳다면 국민을 설득하면서 이끌어가려는 의지와 자신감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정시 확대가 가져올 문제점은 이미 많은 얘기가 나와 있어 굳이 덧붙일 필요는 없겠다. 다만 이 이야기는 하고 싶다. 지난해 시골 고등학교로 강연을 갔을 때 그 학교 선생님이 들려준 말이 있다. 그 학교 학생들은 대학을 갈 때 전부 수시 전형으로 간다고 했다. 시골에 사는 학생들이 대도시에 사는 학생들보다 머리가 나빠서 그럴까? 학원도 과외도 없는 학생들에게 대도시 학생과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게 과연 공정할까? 오히려 지역균형선발로 들어간 학생들이 졸업할 때는 다른 학생들보다 우수한 성적을 거둔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다. 이런 사실에 눈감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이 직접 ‘불공정’이라는 표현을 썼거니와, 더불어민주당 안에 ‘교육공정성강화특별위원회’가 설치돼 있다. 조국 사태로 ‘공정’이라는 낱말이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정이라는 개념을 누가 정확히 정의할 수 있을까? 민주당의 특위에는 사교육업체 관계자도 들어가 있다. 교사가 생각하는 공정과 사교육업자가 생각하는 공정이 같을 수 없으리란 건 자명하다.
진짜 능력, 진짜 실력, 진짜 공부지금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공정에 대한 기준은 능력대로 혹은 실력대로일 것이다. 그걸 정확히 측정하기 위한 방법이 시험 점수 외에 없다는 것이겠고. 하지만 공정 개념이 어떤 입장에서 어느 쪽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냐에 따라 다르듯, 실력과 능력의 실체에 대한 판단도 다르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진짜 능력, 진짜 실력, 진짜 공부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해본 경험이 없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나오는 시대다. 거기에 맞는 공부와 실력은 무엇이어야 할까? 그래서 나는 지금 나오는 대입 공정성에 대한 이야기가 곁가지만 붙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어차피 ‘인서울’ 하지 못할 절대다수의 수험생과 아예 호명받지 못한 특성화고 학생, 탈학교 학생들은 어디에다 대고 공정을 외쳐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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