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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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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 중심

등록 2019-09-04 01:27 수정 2020-05-02 19:29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대부분 학교가 개학하고, 많은 학교에서 2학기 학급회장 선거까지 마쳤을 시간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어 새로운 학급 임원을 뽑는 건 어느 학교에서나 당연한 일이다.

학급회장 선거가 끝나면 담임은 반 학생들에게 대체로 이런 식의 말을 한다.

“오늘 당선된 학급회장을 중심으로 우리 반이 앞으로 잘 단합해서 훌륭한 반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회장을 중심으로

매우 익숙한 풍경일 테고, 나 역시 교사 생활을 하는 동안 비슷한 말을 던지곤 했다. 학급에서 회장이 중심을 잘 잡고 있으면 여러모로 유익하고 편리하다. 학급이 일사불란하게 잘 돌아가고 담임의 부담도 줄어들 테니까. 그런 학급의 모습을 보며 담임은 흐뭇한 미소를 짓기 마련이다. 그러다 회장이 제 역할을 못하면 담임이나 반 친구들에게서 질책이 날아들기도 한다.

“회장이 솔선수범해야지, 행동이 그게 뭐야?”

“그런 건 회장이 알아서 해.”

“회장이라고 그렇게 맘대로 해도 되는 거야?”

이런 말들을 들어야 하는 학급회장 처지에서는 억울한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직책을 맡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는 말은 중요하다.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면 휘청거리거나 넘어지기 마련이므로. 하지만 중심에 대해 달리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중심이 있으면 나머지는 모두 주변으로 밀려나고, 중심만 바라보면 주변은 잘 보이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중심에 비해 주변은 중요하지 않은 걸까?

학급 구성원 한명 한명이 모두 소중한 존재라고 할 때, 그들 각자가 하나의 중심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중심이 꼭 하나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랬을 때 학급 안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자기 존중감을 갖게 될 것이다.

특별한 중심이 필요한 경우도 생각의 폭을 넓혀볼 필요가 있다. 가령 학급에 몸이 아프거나 허약한 친구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때 그 학생을 돌보거나 도와주는 역할을 학급 전체가 나서서 해준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일까? 그렇다면 이제부터 그 학급의 중심은 바로 그 학생이 될 터이다.

몸의 중심은 아픈 곳

몸의 중심은 뇌나 심장이 아니라 아픈 곳이라고 한 시인이 있다.(정세훈, ‘몸의 중심’) 아픈 곳을 중심에 놓고 생각할 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이 중심이 아니라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곳이야말로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애정과 자부심이 생기고, 거기서부터 새 세상을 열어갈 힘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가운데 우뚝 솟은 곳이 중심이 아니라 집중해야 할 곳, 그곳이 중심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어떤 곳에, 누구에게 집중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랬을 때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중심이 새롭게 보이는 순간이 찾아올 수도 있다.

자, 당신의 삶을 둘러싸는 현장에서 어디가, 그리고 누가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지 둘러보자. 고개가 갸웃거려진다면 다른 중심을 찾아나서거나 새로 만들기 위해 무언가라도 붙들고 꿈지럭거릴 수 있어야 한다.

박일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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