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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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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응원

등록 2019-08-01 11:44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정지우 감독과 나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스포츠 관계자를 참 많이도 만났다. 코치와 감독,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물었다. “메달 따게 하는 비법이 따로 있습니까?” 답은 짧았다. “메달 딸 놈은 타고납니다.” 이런 믿음이라면 시련은 타고난 1등이 아닌 2등에게, 아깝게 메달을 비껴간 4등에게 오겠구나. 제목을 4등으로 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맞는 것보다 4등이 무서워

적잖은 지도자가 말했다. 체벌이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체벌 덕인지) 2등이 정말 1등을 한다. 찝찝한 1등. 이때 1등 목에 걸리는 메달은 지옥문을 통과하는 신분증이 될 공산이 크다. 운동하는 모든 1등이 그리되는 건 아니지만, 적잖은 1등은 그 자리를 지켜내느라 심신이 망가진다. ‘국대’였던 한 선수는 폭행을 당하거나 지켜본 사람이 더 많이 폭력을 휘두르는 것 같더라며, 자신이 어떻게 그 무서운 시간을 통과해왔는지 지금 생각해도 온몸이 떨린다고 했다.

신과 같은 지도자가 “내 훈련을 따라오면 너를 데리고 갈 것이고 아니면 버리겠다”고 한다. 피조물과 같은 선수는 버림받을까 두려워 있는 힘을 다하지만 신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죽을 만큼 맞아도 반항하지 못하는 건 나 때문에 여러 사람이 다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부모에게 알리라고? 스포츠는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 없이는 지속할 수 없는 분야라는 걸 취재를 거듭하며 확인했다. 이 과정은 절망스러웠다. 자식이 맞는 것보다 4등 하는 게 더 두려운 부모들은 이미 악마와 거래를 마친 상태였다. 스포츠 관계자들은 메달을 담보로 아이를 문제의 그 지도자에게 건네는 부모들을 오랜 세월 지켜봐왔고 이는 당신 자식을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암묵적인 승인으로 작동했다.

올해 초, 심석희 선수는 오랜 세월 코치에게서 당해온 인권침해의 전말을 세상에 폭로했다. 그녀를 아끼고 사랑하는 팬들은 분노했고, 스포츠계에 만연한 지도자 폭력을 이번만큼은 뿌리 뽑아야 한다는 여론도 드높았다. 20여 일 뒤 심석희 선수에게는 국제빙상경기연맹 쇼트트랙 월드컵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여론의 공분에 힘입어 심 선수가 출전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녀는 아팠고, 여전히 아픈데 어떻게 대회에 나가나. 하지만 소셜네트워크에는 ‘어게인 심석희’라는 해시태그 아래 (아픔을 겪었지만) 언제나 도전하는 심석희 선수의 마음과 열정이 아름답다는 식의 응원 메시지가 쏟아졌다. 작심하고 마주 달려오는 차량에 치여 목숨을 잃을 뻔한 운전기사에게 사고 뒤 며칠 만에 다시 핸들을 잡으라고 운전석에 앉히는 것 같은 풍경. 나쁜 놈은 우리가 대신 욕해줄 테니 너는 어서 메달이나 따오라는 격려… 이 응원은 지독하다.

환호 속에 울음이 묻힌다면

빙상이 다시 뉴스에 올랐다. 한 달 전, 남녀 쇼트트랙 대표팀 전원이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집단 퇴촌을 당했다. 암벽 등반 훈련 도중 선수 A가 다른 선수들이 보는 앞에서 선수 B의 바지를 내렸다. 수치심을 느낀 B는 성희롱으로 A를 고소했다. A가 B에게 행한 폭력인데 대한체육회는 대표팀 선수 전원에게 기강 해이를 물었다. 이를 두고 또 다른 선수는 메달의 영예는 딴 자만 누리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비난은 전체가 받는다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선수 인권을 최우선으로 삼는 지도자들께는 죄송하다. 그러나 (성)폭력, 묵인, 고발, 봉합, 다시 폭력이 반복되는 정글 생태계와 같은 곳에서 선수 인권 보장 운운은 빈말일 뿐이다.

스포츠가 주는 위로를 부정하지 않지만 우리 환호 속에 그들의 울음소리를 묻어버린다면 세상에 이보다 잔인한 국위 선양은 없을 것이다.

김민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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