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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라는 자본주의적 ‘이성’

등록 2024-11-29 23:26 수정 2024-12-03 16:48
2024년 11월 26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수미의 한 민간인 주거 지역에 미사일이 떨어진 뒤 구조대가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024년 11월 26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수미의 한 민간인 주거 지역에 미사일이 떨어진 뒤 구조대가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두 개의 전쟁이 시작된 지 1000일과 400일이 지났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벌이는 전쟁은 2022년 2월24일 개전했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 벌이는 전쟁은 2023년 10월7일 개전했다. 그동안 러-우 전쟁에서는 최소 17만 명 이상의 군인과 1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숨졌고, 가자전쟁에서는 가자지구 주민만 4만4천여 명 숨졌다. 그런데도 두 개의 전쟁은 조금 더 쉽게, 조금 더 많은 ‘적’을 살상할 수 있는 무기를 점점 더 많이 동원하는 양상으로 번져가고 있다. 하늘에서 수백 개의 파편이 비처럼 쏟아진다고 해서 ‘강철비’라고 불리는 전술탄도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 투입이 하나의 예다.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어제의 세계’에서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상황을 두고 “이성에 맞는 단 하나의 이유, 단 하나의 동기도 찾을 수 없다”고 썼다. 츠바이크의 문장처럼 전쟁은 평범한 시민이 체감할 수 없는 이유로 시작되고, 평범한 시민이 동기도 없이 동원되며, 평범한 시민이 가장 많이 죽음으로 내몰린다. 그런데 110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 이유와 동기마저 투명하거나 혹은 떳떳하다. 동유럽의 한 무기제조사 대표는 세계 최대 규모 지상군·대공방어용 무기 전시회에서 “전쟁은 분명 사업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미국의 3위 방산업체 최고경영자는 무기를 팔면서 “우리는 우크라이나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고 있다”고 말한다.(이번호 표지이야기) 이것은 그러니까 자본주의적 ‘이성’에 따른 이유와 동기가 되겠다.

그 자본주의적 ‘이성’에 뛰어든 한국의 방산업체들이 빠른 속도로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자료를 보면, 한국 방산업체들이 수출한 무기가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2~2016년 1.0%였다가 2017~2021년에는 2.8%로 상승했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 8위 무기 수출국이 됐다. 특히 2017년부터 2021년까지 한국의 무기 수출액은 177% 증가했는데, 이는 세계 상위 25개 무기 수출국 가운데 가장 빠른 증가세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 자료를 인용하며 “한국의 방위산업은 케이(K)-팝, K-드라마처럼 K-방산으로 불리고 있다”며 “일자리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수출 유망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자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12월 주재한 ‘방산 수출전략 회의’에서 2027년까지 ‘세계 4대 방산 강국’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제시했고, 보수 언론은 연일 K-방산의 성장을 상찬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두 개의 전쟁에도 K-방산의 무기가 팔리고 있거나 혹은 지원될 가능성이 커졌다.

전쟁에 드리운 자본주의적 ‘이성’이 고약한 건, 전쟁에 쓰이는 무기를 수출하는 산업에 대해 비판하려는 사람들을 손쉽게 억압할 수 있는 도구로 그 ‘이성’을 내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 앞에 쏟아지는 일자리와 부가가치를 생각하면 세계 저편의 전쟁에서 발생하는 인간의 죽음과 가족의 해체, 커뮤니티의 붕괴는 잠깐 눈감아도 되지 않겠느냐는 인식이 하나의 주류적 경향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전쟁만큼이나 무서운 ‘이성’ 아닌가.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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