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 없는 맨가슴을 꿈꾼다.” 시민단체 불꽃페미액션이 2018년 6월 서울 역삼동에서 ‘상의 탈의 시위’를 했다. 연합뉴스
“이거 한번 바를래요?”
“이게 뭔데요?”
“틴트요.”
입술을 빨갛게 물들이는 ‘틴트’의 존재를 처음 알았던 순간이 꽤 또렷이 기억난다. 아마 대학 3학년 때쯤, 방송 제작 현장을 보고 싶어 방청객 아르바이트를 하루 해봤다. 현장엔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또래 여성이 딱 한 명 있었다. 지루한 대기시간을 견디고 있을 때 그는 친절하게도 한번 발라보겠냐며 자기 화장품을 건넸다. ‘내 입술이 조금 창백해 보였을까’ 짐작하게 된 건 이후의 일이다. 뒤늦은 고백이지만, 그날 현장에서 ‘틴트’라는 낯선 단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얼떨떨한 나를 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보는 그에게 차마 “네? 이게 뭐라고요?” 되묻기 어려웠다. 그날 그가 건네준 제품이 립스틱이나 립밤도 아닌 ‘틴트’라는 또 다른 무엇임을 알게 된 건 더 나중이다.
‘노브라’와 화장 사이에서이쯤 되면 독자들도 눈치챘겠지만 나는 화장에 익숙한 편이 아니다. 아마 조금씩 화장하게 된 것도 그 무렵일 텐데, 이전까진 자외선차단제나 꾸역꾸역 바르고 다니는 수준이었다. 화장의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는 마음 반, 귀찮은 마음 반이었다. 직장인이 되면서 화장에 좀더 익숙해지긴 했지만, ‘민낯’ 출근도 종종 감행하는 나로선 특별히 강박이 있다고 느껴보진 못했다. 그뿐이랴. 가끔은 ‘노브라’로 다닐 때도 있고, ‘빼빼 마른 몸’을 지양하며, ‘소녀다움’처럼 획일화된 여성성을 요구하는 문화를 목소리 높여 비판하곤 했다.
그런데도 나는 날마다 ‘탈코’(탈코르셋)에 실패한다고 생각한다. 민낯으로 나온 날엔 어쩐지 상대의 얼굴이 아닌 땅을 보게 되고, ‘노브라’는 겉으로 티 나지 않는 선에서 하며, ‘마른 몸’은 싫지만 ‘근육이 많은 몸’을 동경해 닭가슴살을 늘 냉동고에 쌓아둔다. 예쁜 옷과 액세서리는 누구 못지않게 좋아하며, 가끔은 ‘기분 전환’을 이유로 진한 화장을 할 때도 있다. ‘이건 자기만족’이란 생각과 함께.
‘꾸밈노동’이라는 용어에 감탄하고, 탈코르셋 운동을 응원하면서도 정작 이에 대해 어떤 글도 쓸 엄두를 못 냈던 이유다. 자기 검열과 자기모순의 벽에 끊임없이 부딪히며 풀지 못한 질문을 숙제처럼 떠안고 있었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무려 1억9천만원이 넘는 후원을 받은 만화 를 읽어봤지만, 마냥 속 시원한 답을 얻은 건 아니었다.
결국 ‘탈코’를 실천하는 ‘불꽃페미액션’의 활동가 이가현씨와 의 저자 양민영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두 사람은 탈코르셋 운동을 이렇게 정의했다. “사회가 강요하는 여성적인 아름다움에 저항하는 일.”
“‘왜 ‘탈코’ 하지 않느냐’고 비난하지 말아야”‘탈코’를 위해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화장하지 않고, 바지를 입는 것이 마치 ‘여성성’을 혐오하고 ‘남성성’을 지향하는 것 같다는 말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가현 탈코르셋이 남성적인 모습으로 바꾸자는 운동은 당연히 아니에요. 다만 젊은 여성 중심으로 그들에게 강요돼왔던 모습의 정반대로 활동하니 마치 남성과 닮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아요. 관점을 바꿔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로부터 강요받은 성역할을 탈피하자는 건데 그것이 ‘남성’과 닮아간다는 건, 결국 ‘자유로운 인간’의 모습이 곧 ‘남성’ 모습을 띠어왔다는 걸 보여주는 것 아닐까라고요.
민영 가부장제가 여성을 통치하는 수단이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인격을 갖거나 성취를 이루는 것과 상관없이 오직 아름다움을 기준으로 여성끼리 경쟁하게 하죠. ‘예쁜 나’를 인정받으려 하면서 자존감을 타인의 시선에 송두리째 맡기는 격이 되고요. 가부장제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성성’과 ‘여성적인 아름다움’에 관한 성찰과 반성, 비판이 여성 사이에서 더 많이 나와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간ㆍ장소ㆍ상황(TPO)에 맞는 옷차림을 하는 것과 ‘코르셋’의 경계에서 갈등하는 순간이 있어요.
가현 경제활동을 하면서 꾸밈이 필요한데, (무조건) “왜 (탈코를) 안 하냐”고 강하게 얘기할 수 없는 건 사실이에요. 개개인이 일상에서 매번 타협과 협상을 하면서 나아가야 하는 부분이죠. 그런데도 명시적으로 ‘화장을 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는 곳이라면 한번쯤 안 하고 가는 용기를 발휘해보는 건 어떨까요? 스튜어디스처럼 아예 규정이 있는 곳에선 성차별 부분을 바꾸기 위해 노조가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사실 청소년들은 화장이 (어른들로부터) 금지되다보니 화장 자체를 ‘저항’의 의미로 여기기도 하더라고요. 결국 화장할 권리와 하지 않을 권리가 동시에 보장돼야 진정한 자유인 거죠. 한쪽만 강요받는 상황이 있는데 (‘탈코’를 하지 않는다고) 마구 서로 비난하지 않는 게 중요해요.
‘탈코’를 실천하면서 생기는 딜레마가 있나요.
민영 ‘레깅스’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책에선 여성의 운동복을 성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한다고 결론 냈지만, 과연 그 지점에서 머물러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면 남성은 운동하려고 옷부터 사는 경우가 잘 없더라고요. 체육관에서 무료로 주는 반바지도 곧잘 입어요. 그만큼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저도 아직까진 헐렁한 반바지보다 긴장감이 느껴지는 레깅스 차림을 좋아하는데요, 왜 유독 여성의 운동복만 레깅스인지, 스포츠 브라를 입고 배를 드러내는 패션을 하는지, 왜 레깅스 광고가 갈수록 ‘애플힙’과 ‘극세사 다리’를 강조하며 여성의 하체를 노골적으로 내세우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이런 옷도 코르셋의 일종으로 보고 소비를 지양하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노브라’ 패션으로 주목받는 가수 겸 배우 설리. 설리 SNS 갈무리
‘탈코’ 운동이 앞으로 어떻게 퍼졌으면 하나요.
가현 지금은 너무 개개인의 실천에 맞춰서 자기 검열 방식으로 가고 있잖아요. ‘미스코리아’처럼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전형성을 생산하는 행사나 기업 활동에 반대하는 운동 방향이 되면 좀더 많은 공감을 받지 않을까요.
왜 ‘탈코’ 운동인가요.
민영 꾸밈을 거부한 여성이 가시하되면, 꾸밈노동을 줄이거나 중단할 자신이 없는 여성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죠. 무엇보다 청소년들에게, 모두 화장하고 인형처럼 예쁘지 않아도 된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여성이 아름다움만 놓고 경쟁하는 건 아니라는 메시지도요. 현실에는 정말 다양한 여성이 있고 그들이 본연의 모습으로도 잘만 살아간다는 걸 알면 (‘아름다움’에 대한) 과열된 경쟁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라지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여성, 여성성,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사회의 이 납작한 논의 지형을 좀더 입체적이고 다층적으로 만드는 일, 그리고 그걸 여성이 주체적으로 만들어내는 것. 두 사람과 이야기한 끝에 탈코르셋 운동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이다.
‘정도’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의 저자 록산 게이처럼 “완벽하려 하지 않고, 내가 모든 해답을 갖고 있다고 말하지 않고, 내가 전부 옳다고 말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래서 늘 가치 지향과 삶의 실천 사이에서 충돌하며 살아갈 테지만, 적어도 이런 논의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페미니스트로서 실천을 계속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지 않을까. 아마 나는 앞으로도 종종 ‘탈코’에 실패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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