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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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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의 개

등록 2019-07-19 01:54 수정 2020-05-02 19:29

여름이 되면 개 식용 문제를 놓고 찬반 논쟁이 되풀이된다. 동물학적으로 모든 개는 동일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인식은 개를 두 종류로 나눈다. 외국 품종은 반려견이고, 진돗개·풍산개 같은 토종과 ‘믹스견’이라는 잡종은 식용견인 것이다. 개 식용을 옹호하는 이들은 “소, 돼지, 닭은?”이라는 말로 반감을 드러내거나, 개 식용은 한국 전통이라며 문화상대주의를 내세운다. 이런 말들은 개 식용을 합법화하자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문화상대주의, 문화 이면을 이해하는 것

밀집 사육 시스템이 장악한 현대 축산업이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많은 나라가 축산 패러다임을 전환하려 한다. 하지만 한국은 전국 축산농장을 공장화한 대가로 가축 전염병을 비롯해 여러 폐해에 허덕이는 상황에서도, 개를 새로운 축산종에 포함하자는 주장을 꾸준히 제기한다. 그러나 “소, 돼지, 닭은?”이라는 질문과 개 식용 합법화의 불가능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이 지면에서는 문화적 영역만을 말하려 한다.

많은 사람이 개 식용 반대를 비롯한 동물권 운동을 서구의 가치관으로 정의하고, 개를 바깥에 묶어놓다 잡아먹는 행위를 한국 문화로 이분화한다. 또한 개 식용에 반드시 전제되는 여러 학대 행위 또한 문화상대주의라는 말로 정당화한다. 물론 문화상대주의를 존중하는 것은 중요하다. 식문화를 생태학·경제학적 측면에서 조명한 인류학자들은 어떤 문화가 정착하는 ‘과정’에 집중한다. 각자의 조건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효용성 원칙과 당대 서민들의 상황을 배려한 정의 원칙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살피지 못하면 타 문화를 야만이라고 단정하는 오류를 범한다. 문화 이면에 있는 역사와 인간을 이해하는 건, 우리가 문화상대주의를 말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문화상대주의를 존중하는 것과 그 문화를 지속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전통이고 문화라고 주장하지만 오늘날 보편적 규범 관점에서 학대이고 폭력일 때 우리가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명백하다. 다양한 문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도덕적 규범의 ‘근거’로 치환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남존여비 사상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여권운동을 반대하는 ‘근거’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사실이 곧 근거는 아니다. 사실을 당위로 혼동하며 관습적 사고방식을 고수한다면 세상의 어떤 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오늘날 개농장과 도살장은 쓸모없어진 개들을 처리하는 일종의 “하수처리장”(강형욱 훈련사)이다. 번식을 못하는 번식견, 1m 줄에 묶여 잔반을 처리하는 마당 개, 경매장에서 유찰된 개, 유기견, 투견…. 늙고 병들고 버림받고 쓸모없어진 이 모든 개가 개농장으로, 도살장으로 끌려간다. 최근 몇 년 사이 사회문제로 대두한 유기견 양산의 근원 또한 개 식용과 결부되어 있다. 유기견 발생의 근본적 문제는 수요를 넘는 공급을 쏟아내는 불법 번식장이고, 이 생산구조가 유지되는 이유는 번식장의 폐견을 비롯해 쓸모를 다한 개들이 언제든 식용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개와 관련된 문제는 번식견, 반려견, 유기견, 식용견이라는 뫼비우스의 띠 안에서 원인이 결과가 되고 결과가 원인이 된다. 현대의 개 식용이 문화적 화두이기 전에 윤리적 화두인 이유다.

번식견, 반려견, 유기견, 식용견… 뫼비우스의 띠

이제 우리는 동물 생명 존중이 중요한 윤리적 화두로 자리잡은 시대, 인간과 동물과 환경의 공존을 모색하는 것이 세계적 흐름이 된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시대 흐름은 우리가 개 식용 논쟁을 비롯해 동물권 운동에 덧씌워진 한국과 서구의 문화 대립이라는 프레임을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재영 작가

*필자의 책 을 참고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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