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듯 다정한, 약간 어리둥절해지는 지은이 소개부터. 독일에서 10여 년간 살고 있는 김지혜씨는 대안학교인 발도르프학교에서 피아노 반주자로 일한다. 음악을 전공하진 않았다. 그래도 좋아하는 피아노를 치고, 작곡하고, 학생들 수업에 들어간다. 피아노를 전공하지 않아도 피아노 관련 직업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이 몹시 낯설고, 학교에서 꼭 교사가 아니어도 반주자란 자리가 마련된 사회는 다정하다.
(파람북 펴냄)는 김지혜씨의 독일 정착기다. 부제는 ‘이방인 안겔라의 낯선 듯 다정하게 살기’. 독일 사회가 한국에 비해 얼마나 선진적인지 환호하는 예찬론이 아니다. 그런 흔한 발견 스토리가 아니다. 공동체에 천천히 스며들며 깨친 ‘상식의 아름다움’을 관계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풀어낸다. 잔잔하고 담담한 쪽글 형식은 그 과정에 꼭 알맞다. 소용돌이 없는 수면이 풍경을 담을 수 있듯이, 찰랑대며 빛나기보다 조용하게 빛을 받는 상태에 가까운 글.
지은이가 교육에 종사하고 또 학부모이니 만큼 학교를 둘러싼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한국에서 ‘골병 노동’에 시달리는 급식 노동자들을 두고 한 정치인이 “밥하는 아줌마가 왜 정규직이 되어야 하느냐”는 막말이나 하던 때, 저자는 독일인들이 즐겨 쓰는 말을 떠올린다. “Liebe geht durch den Magen. 직역을 하자면 ‘사랑은 위를 거쳐서 간다.’ 누군가를 위해 차려내는 한 끼의 밥상이 배 속의 허기를 채우기 위한 일만은 아니라는 걸” 드러내는 표현. 독일 공립학교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은 정부로부터 급여를 받는다고 한다. 교실에서 일하든, 조리실에서 일하든, 수위실에서 일하든. “학교라는 틀 안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모두 아이들 교육에 영향을 끼친다는 독일인들의 사고가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한국에선 ‘목격’이라 표현해도 될 만한 장면은 그곳의 일상이다. “엄마가 학교 식당에서 일하는 아이가 식당에 가서 엄마와 팔짱을 끼고 웃으며 이야기하고, 친구들과 농담하는 모습을 늘 본다.” 이번엔 교실 풍경. “내가 (너를) 만져도 되겠니?” 문자, 음악 기호, 감정 등을 몸으로 표현하는 오이리트미(Eurythmie) 수업에서 교사는 꼭 이렇게 물어가며 진행한다. 지도를 계속 따르지 않던 한 학생에게 교사가 다가가 주의를 주면서 몸이 닿았고, 학생은 이렇게 항의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그러자 다른 학생들도 다 함께 항의하기 시작한다. “선생님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아이들의 비판을 듣고 있었다. 그날의 광경은 내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다. 모든 인간은 동등한 존재고 그 존중은 말로,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 이 일에는 성별이나 나이, 상하관계 같은 게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 ‘장애인’(Behinderte)이라는 단어가 있지만, 굳이 사람(Mensch)이라는 단어를 앞에 쓰고 설명을 덧붙인 ‘장애가 있는 사람’(Mensch mit Behinderung)으로 고쳐 쓰는 이들답게 교실에는 장애가 있는 단 한 명을 위한 보조교사도 있다.
모두가 서로에게 외국인인 곳임에도 훼손되지 않은, 잘 지켜진 아름다움이 담겼다는 의미에서 이국적인 책이다. 이해하려 노력하기보다, 풍경처럼 그저 발견하면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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