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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 ‘인생의 동반자’

<나는 엄마가 먹여살렸는데> <마더북> ‘허스토리’ 기획 등… 딸이 쓰는 엄마 이야기
등록 2019-05-09 10:53 수정 2020-05-03 04:29
<나는 엄마가 먹여살렸는데>의 표지 이미지. 딸세포 제공

<나는 엄마가 먹여살렸는데>의 표지 이미지. 딸세포 제공

어린이날은 5월5일, 어버이날은 5월8일이다. 이 두 날의 흐름을 가진 5월을 우리는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어버이가 아이에게 일껏 봉사해주고 나면, 아이는 부모 가슴에 카네이션 하나 달아주는 것으로 보답하면 되는 것 같은 ‘기막힌’ 흐름이다. 카네이션의 꽃말은 모정, 어린 시절의 행사는 어머니의 이타성을 훈장으로 달아주는 이기적인 것이었다. 대신 어머니가 아닌 여성의 위치로 되돌려주는 마음 씀씀이도 있다. 최근 김영하 소설가의 추천으로 복간된 김은성 작가의 만화 는 기막힌 기억력을 가진 어머니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는 기획이었다. 마영신 작가의 만화 은 ‘엄마’이면서 동시에 ‘여자’여서 연애도 하는 이들을 그려내며 그들의 욕망을 이야기했다. 최근에는 ‘각성한 딸’들이 어머니의 노동을 인정하고, 한국 사회 봉건구조와 가부장제에 희생된 어머니를 ‘동지’로 발견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딸로서 어머니를 기록하는 이들을 만나보았다.

4월28일 페미니즘 북카페 두잉에서 열린 구술생애사 강의. 강사가 최현숙씨다. 구둘래 기자

4월28일 페미니즘 북카페 두잉에서 열린 구술생애사 강의. 강사가 최현숙씨다. 구둘래 기자

<font size="4"><font color="#C21A1A">“이혼, 열두 번 생각해도 열두 번 옳다” </font></font>

, 김은화(32)씨가 딸세포라는 출판사를 차리고 내는 첫 책이다. 엄마인 박영선(63·가명)씨가 안방에 엉덩이를 붙이는 호사를 누리는 것을 본 기억이 없는 은화씨가 ‘엄마’를 통해 ‘여성부양자’들에 대한 기억을 끌어내려는 시도다. 그녀에게 엄마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주택관리사 공부를 2시간 한 뒤, 6시 첫 밥을 차리기 시작해서 병수발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자식들의 아침과 도시락까지 10인분을 차려내던” 사람이다. 그뿐이랴. 집 가까이 있던 물류센터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면서 설거지, 장보기 등 집안일을 다 했고 텃밭을 가꿨다. 그에 비해 아버지는 텔레비전을 보고 컴퓨터를 보는 사람, 목욕할 때도 수건을 갖다줘야 하는 사람이었다. 물이 먹고 싶을 때 “은화야”를 불렀다. 그런 엄마가 얼마 전부터 “나는 이뤄놓은 게 없다”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은화씨가 실업 상태에 놓이게 되자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힘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소문자 삶들이 말하기 시작했다’라는 구술사 강의를 들었다.

들을수록 엄마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해 경남 마산 산업단지의 공장에서 일을 시작해 얼마 전 병으로 요양보호사 일을 그만둘 때까지 만화방, 하숙집, 한복집, 안경공장, 출판물류센터까지 온갖 일을 했다. 생활도 열심이었다. 어린 시절 방송통신고를 수석 졸업했고, 동네 부녀회장을 하면서 재활용품을 팔아 아파트에 꽃밭을 만들었다. 일도 잘했다. 물류센터에서는 ‘걸어다니는 사전’으로 불렸다.

지난 시절 이야기로 신이 나도 어떤 이야기 앞에서는 머뭇거려졌다. 이혼 이야기가 그랬다. 아버지는 무능했고 폭력적이었다. 결국 손대던 주식에서 큰 피해를 보고, 장성한 아들이 아버지 손목을 잡고 “그만하시라”고 한 날, 아버지를 뺀 가족은 여관으로 피신을 나왔다. 머뭇거리던 이야기를 엄마는 단호하게 마감했다. “이혼, 열두 번 생각해도 열두 번 옳다.”

김희수(35·가명)씨도 어머니의 삶을 기록했다. 여성의 삶을 기록하는 소셜벤처 ‘허스토리’의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희수씨가 펴낸 (가명 사용)는 어머니가 좋아하던 영화 의 제목을 패러디한 것이다. 표지를 영화 포스터처럼 찍기 위해서, 엄마에게 원피스를 입고 오라고 했고, 엄마는 선글라스를 쓰고 좋아하는 큰 가방을 들고 나왔다. ‘아줌마’스럽지 않은 긴 생머리가 강조되게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 보니 포스터 속 금자씨도 생머리였다. ‘그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라는 포스터 속 문구를 ‘그녀가 말하기 시작했다’로 바꾸었다. 엄마는 이 영화를 “속이 시원하다”고 좋아했다. 희수씨는 “복수도 하고 참회도 하고 그런 것이, 주제와 닿은 것 같다”고 해석했다. 희수씨는 어머니를 1시간에서 1시간30분 세 차례 인터뷰했다. 의 첫 문장은 이렇다. “엄마를 놓아줘야 한다고 결심했던 때는 대학교 1학년 혹은 2학년 때쯤이었다.” 희수씨가 결심을 한 것은 엄마가 자살 시도를 세 번 하고 나서였다. “엄마를 놓아주지 않았더라면, 엄마의 생애를 엄마의 음성으로 들을 기회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라는 위기감이었다. 아버지는 폭력 남편이자 폭력 아버지였다. 막내를 자신의 씨가 아니라고 의심했다.

은화씨와 희수씨는 구술사 과정을 통해 어머니를 인터뷰했다. 좀더 쉽게 인터뷰법을 알려주는 책들도 있다. 소셜벤처 ‘허스토리’에서는 ‘워크북’ ‘가이드북’ 두 권으로 구성된 을 지난해 말 발간했고, 도서출판 반비에서 어머니에게 질문을 던지는 책 이 최근 나왔다. 은 네덜란드의 엘마 판 플리트가 자신의 어머니를 기억하기 위해 만든 책이다. 원제는 (Mom, Tell Me)다. 어머니에게 할 질문을 모아놓은 책으로, 어머니는 질문을 읽고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다 쓴 뒤 딸에게 돌려준다.

을 ‘한국화’하는 과정에서 김희진씨는 한국 모녀의 특성을 생각해보았다. “저자와 번역판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처음에 한국 문화를 이해시키는 게 힘들었다.” 중요한 날 카드를 교환하는 문화가 있는데 한국의 어머니에게는 글쓰기가 낯설다. 그리고 가족에게 감정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 경험이 드물다. “한국은 가족주의가 강한데, 정서적인 감정을 나누는 관계가 아니다.”

허스토리가 펴낸 <그 여자의 자서전> 가이드북(안내서)과 워크북(쓰기 책), 반비의 <마더북>. 김진수 기자

허스토리가 펴낸 <그 여자의 자서전> 가이드북(안내서)과 워크북(쓰기 책), 반비의 <마더북>. 김진수 기자

<font size="4"><font color="#C21A1A"> 엄마는 엄마답지 않은 질문을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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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질문은 ‘유니버설’(보편적)한 면이 있었다. 김희진씨는 “처음에 을 보면서 질문이 피상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화를 깊게 하는 질문을 심리학자랑 만들어보기도 했다. “유년시절에 아프게 했던 말이 기억나냐” “아버지의 어떤 모습이 자랑스러웠나” 등 좀더 섬세하고 공들인 질문이었다. 그런데 실제 그런 질문을 하자 어머니는 자신이 분석받는 느낌이 드는지 질문을 회피했다. “어떤 여행지가 기억나느냐” 등 외국의 여가를 즐기는 이에게나 적당할 듯 보였던 질문들에 한국 어머니도 반응했다. 어릴 때 좋아하던 물건, 즐거웠던 여행지 등의 기억을 풀어놓는 걸 좋아했다. 엄마는 엄마답지 않은 질문을 좋아했다. 허스토리가 펴낸 에서도 구체적이면서도 생활상을 담을 수 있는 질문을 ‘기억 탐험 주사위 놀이’에서 보여준다. 내가 좋아했던 공간, ‘집’ 하면 떠오르는 냄새, 처음으로 미용실에서 머리를 한 날, 가장 기억에 남는 편지 등이다.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는 인터뷰할 때 ‘시대성’을 담을 것을 강조한다. “남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건을 연도로 기억하는 데 비해, 여성들은 아이들 중학교 들어갔을 때 등으로 기억한다. 그들이 구태여 자기 이야기를 역사 속에 넣지 않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살아온 생에 역사성과 시대성을 불어넣는 것이 중요하다.”

최현숙 작가는 에서 이렇게 말했다. “못 배워서 글을 잘 못 쓰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면에서 구태여 민중이니 여성주의니를 붙이지 않더라도 구술생애사는 가난을 지향한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어머니는 말과 글을 잃은 ‘가난한’ 이들이다. 구술사가 ‘젠더적’인 이유다. 소셜벤처 ‘허스토리’가 기획 글에서 인용한 리베카 솔닛의 말도 비슷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단어로든 이미지로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은 그 자체로 이미 승리다. 그 자체로 이미 반란이다.”(). 희수씨는 어머니 인터뷰의 목적이 “혼인 기간에나 이혼 후에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영영 지워져버린 엄마의 역사를 남기고 엄마의 생애를 기억하기 위함이었다”고 썼다.

은화씨나 희수씨 모두 구술사 강의를 들었다. 그래서 구술사의 기본 요령, 질문을 정리하고, 녹음기를 마련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녹음기에는 드러나지 않는 표정 변화의 흐름을 종이에 기록하는 등의 방법을 익혔다. 하지만 그들은 인터뷰가 ‘교과서대로’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김은화씨는 어머니의 연애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데 실패했다. “엄마 진짜 예쁘네. 남자들이 좀 따라왔겠는데, 기억나는 남자 없어?” “남자 없다.” “딸이라서 얘기 안 하는 거지.” “응.”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거리 두기에도 실패했다. 자신도 기억하는 최근 일로 와서는 은화씨가 말이 더 많아졌다. 인터뷰가 끝난 날은 집에 가서 눈이 붓도록 울었다. 자살 시도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희수씨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엄마는 이야기를 하다가도 이 서방(희수씨 남편)이 볼지도 모른다며 걱정했다.

김은화씨가 어머니 박영선씨와 손을 맞잡고 있다. 딸세포 제공

김은화씨가 어머니 박영선씨와 손을 맞잡고 있다. 딸세포 제공

<font size="4"><font color="#C21A1A"> 인생의 동반자, 인생 비밀을 푸는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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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희수씨 직업은 심리상담사다. 그는 자신의 인터뷰가 전문적이지 못했다고 진단한다. “내담자를 만날 때와 달리 감정적으로 터지는 부분이 많았다. 객관화하려고 노력했고, 엄마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좀더 ‘감성적’이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와 당시의 감정을 좀더 이야기해야 했던 것 같아요.”

대화는 결국 ‘애틋함’을 실어날랐다. 을 엄마에게 건넸다가 받은 김다희(36)씨는 책을 읽고는 코끝이 시큰했다. ‘무엇이 아쉬운가’라는 질문에 “큰딸이랑 오롯이 못 보낸 것”이라고 답하고, “큰딸은 어디 가나 사랑받는 아기”라고 답해놓은 것을 보고서다. 엄마의 이야기를 쓰면서 은화씨는 엄마보다 자신이 더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는 아버지의 성장 과정을 유추해보면서 아버지를 이해하려 한다. 그러니까 책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의 기록이다. “그간 나는 엄마를 연약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해왔는데, 실제의 그녀는 훨씬 유연하고 강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중)

어머니와 딸은 노동으로 이어진 ‘인생의 동반자’다. 은화씨는 어머니가 파주 물류센터에서 일하며 가져다준 파본을 열심히 읽었고, 어머니가 ‘수주’해온 책 비닐 포장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리고 출판사에 취직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인생 비밀을 푸는 열쇠였다. 희수씨는 상담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이 가족사 때문이 아닐까 짐작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은 내가 사춘기도 없이 굉장히 밝게 자란 것으로 보지만, 속으로는 상처가 있었다. 아버지로부터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한 죄책감이 있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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