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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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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서 맛보는 ‘공유의 맛’

함께 요리하고 밥을 먹는 모두의 부엌…

나만의 요리법 공유하고 먹거리 커뮤니티 만들고
등록 2019-03-22 01:39 수정 2020-05-02 19:29
공유부엌 ‘바비키친’에서 요리하는 윤선호(왼쪽)씨와 강윤필씨.

공유부엌 ‘바비키친’에서 요리하는 윤선호(왼쪽)씨와 강윤필씨.

“비빔밥에 넣을 게 많네요.”

“시금치, 단호박, 양배추….”

“채소 다 넣으려면 양 조절 잘하셔야 해요.” (웃음)

3월12일 낮 12시,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있는 ‘우리동네 커뮤니티센터’(이하 커뮤니티센터)의 공유부엌. 스테인리스 용기에 콩나물무침, 취나물무침, 김치 등 12가지의 반찬과 과일이 있다. 그 옆에는 밥과 두부된장국이 있다. 음식을 준비한 송미연(40)씨가 식사하러 온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공유부엌 한쪽 벽에 이날의 메뉴가 적혀 있다. ‘화들장 비빔밥’. 그 아래에는 비빔밥에 들어간 재료의 원산지가 적혀 있다. ‘콩나물-제터먹이 무농약 국산콩, 두부-언니네텃밭 국산콩, 육수-청양푸드 국산표고…’. 이 재료는 커뮤니티센터 앞에서 매주 화요일 열리는 직거래 장터 ‘화들장’에서 산 농산물이다.

일주일에 한 번, 한솥밥 먹는 날

커뮤니티센터를 위탁 운영하는 건강한농부사회적협동조합의 김선정 이사장은 “처음에는 화들장에 오는 판매자 농부들과 커뮤니티센터 자원봉사자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려고 자리를 마련했어요. 그런데 ‘지역주민에게도 장터에서 파는 농산물을 맛보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화요일 장터가 열릴 때마다 100명 넘는 주민이 공유부엌에서 한솥밥을 먹어요”라고 말했다.

재료 다듬기와 설거지를 담당하는 김진숙(41)씨는 “비빔밥에 들어간 고추장이 어디 것인지 물어보고 장터에서 사가는 분도 있고, 그날 만든 요리의 조리법을 묻는 분들도 있어요. 몰랐던 분들과 요리를 주제로 친근하게 이야기 나누는 재미가 있어요”라며 웃었다.

공유부엌에서는 ‘화들장’ 점심 식사 말고도 반찬을 만드는 동아리가 있고, 청년들을 위한 ‘소셜다이닝’(공동 저녁 식사)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주민들이 필요할 때 부엌을 이용할 수 있어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요리하거나 장 담그기 등 요리 교실도 열린다.

독산동 주민 남현숙(43)씨는 이날 이곳에서 직장 동료들과 식사했다. “되도록 화요일에는 이곳에서 밥을 먹어요. 직거래 농산물로 음식을 만드니 맛있고, 먹으면 건강해지는 느낌이에요.” 김씨에게 공유부엌은 ‘안전한 먹거리는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배움터이기도 하다. 지난해 이곳에서 유전자조작 식품의 문제점 등 먹거리 교육을 받은 뒤 자기가 먹는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됐단다.

요리와 배식을 맡은 송미연씨는 이곳에서 반찬 만들기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주민들과 함께 재료를 사고 반찬을 만들어 나눈다. “반찬 양이 많은데도 무척 맛이 있어요. 김치도 같이 담갔어요. 혼자서는 엄두가 안 나는 일이 이곳에서는 가능해요.”

공유부엌은 먹거리를 중심으로 농민과 소비자, 주민과 주민들이 만나는 자리가 된다. 김선정 이사장은 “장터에 오면 농민들을 만나 재배한 농산물에 대해 들을 수 있어요. 주민들끼리는 서로 알고 있던 요리법도 나눌 수 있고요”라고 말했다.

서울 금천구 ‘우리동네 커뮤니티센터ʼ에 있는 공유부엌에서 식사하는 주민들.

서울 금천구 ‘우리동네 커뮤니티센터ʼ에 있는 공유부엌에서 식사하는 주민들.

“우리가 진짜 식구”

핵가족화로 1인가구가 늘면서 함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소셜다이닝을 찾는 이도 늘고 있다. 소셜다이닝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 공유부엌이 주목받고 있다. 공유부엌은 밥을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함께 요리할 수 있는 공유 공간이다. ‘우리동네 커뮤니티센터’의 공유부엌처럼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이곳은 ‘마을부엌’이라고도 한다. 서울시에는 현재 400여 군데가 있다.

서울 은평구 진관동에 있는 ‘신나는마을 공동부엌’은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다. 지역주민에게 무료로 공간을 빌려주고 지역의 홀몸노인을 위한 반찬 봉사 등을 한다. 신나는마을 공동부엌의 박정희 대표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음식을 만들고 밥을 먹을 수 있는 부엌이 있다면 어떨까 생각하다 이 공간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2015년에 만든 공동부엌은 음식으로 세대를 잇는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

공동부엌을 이용하는 이들은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여러 세대가 함께 음식을 만들고 새로운 요리를 배운다. “사람들이 모여 부엌이 만들어져요. 이곳에서 먹거리에 관심 있는 이들을 만나면 금세 친해집니다. 그들과 레시피를 공유하고 안부를 물으며 이웃의 정을 쌓아가요. 진짜 식구 같은 느낌이에요.” 박 대표의 말이다.

신나는마을 공동부엌에서는 가족만을 위해 반찬을 만들고 나누어 가던 엄마들이 스스로 봉사단체도 만들었다. 마을에 홀로 사는 노인을 위해 반찬 봉사를 한다. 봉사팀이 십시일반 쌈짓돈을 모아 재료를 사서 반찬을 만든다. 회원인 최송아(41)씨는 2015년부터 함께하고 있다. “이곳에서 반찬을 만들어 초등학생 아이와 함께 어르신들에게 배달했어요. 아이도 지역에서 어렵게 사시는 어르신들을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됐어요.”

공동체 형성의 중요한 매개로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 간식 챙겨주기와 돌봄도 공동부엌에서 하는 프로그램이다. 학교가 끝난 뒤 이곳에 온 아이들은 간식을 먹고 보드게임을 하거나 책을 보기도 한다. 이 밖에 한국 음식을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결혼이주 여성들을 위한 요리 교실도 연다.

경기도 성남시 위례동에 있는 사회적협동조합 ‘소셜위버스어소시에이츠’(소셜위버)에서도 공유부엌을 운영한다. 이곳에서는 필요할 때 지역주민에게 공간을 내주고 요리 나눔 봉사활동, 요리 교육 등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소셜위버 남천우 대표는 “사회적 경제를 공부한 이들이 모여, 마을 안에서 공동체 사업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함께 요리하고 먹으며 친해지는 건 어떨까 생각하다가 공유 부엌을 만들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소셜위버가 지향하는 것은 “부엌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지역 돌봄을 확장하는 것”이다. 소외계층을 위한 반찬 배달 서비스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적인 공간으로만 여겼던 부엌이 왜 공유 공간으로 주목받을까. 협동조합 ‘이장’ 임경수 이사장은 “공동체가 해체되고 1인가구가 늘면서 식구(食口)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며 “이런 단절된 사회에서 식구를 찾는 욕구와 갈망이 커지는 것”이라고 했다.

임 이사장은 공유부엌이 가진 사회적 가치에 주목한다. “관계 회복과 공동체 형성에 중요한 매개가 될 수 있어요. 결식아동, 먹거리 불평등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도 될 수 있어요.”

‘신나는마을 공동부엌’에서는 결혼이주 여성들을 위한 요리 교실을 열고 있다.

‘신나는마을 공동부엌’에서는 결혼이주 여성들을 위한 요리 교실을 열고 있다.

함께 요리하는 특별한 경험

부엌을 활용한 공유 서비스를 하는 업체도 생겨난다. 설비를 갖춘 주방을 만들고 고객이 원하는 시간만큼 빌려주는 것이다. 외식 창업을 하려는 청년 사업가들을 위한 공간과 친목 장소로 이용하는 일반인을 위한 공간으로 나뉜다.

지난 3월12일 저녁 7시 서울 용산구에 있는 공유부엌 ‘바비키친’에서 만난 대학생 윤선호(23)씨와 강윤필(25)씨. 연인 사이인 이들은 500일 만남을 기념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단다. 알리오올리오 파스타, 제육볶음, 스테이크가 파티 메뉴다. 그들은 근처에서 사온 채소 등의 재료를 함께 손질했다.

강씨는 “비싼 레스토랑을 이용하기보다는 함께 요리해 먹는 게 더 특별한 기념이 될 것 같아 공유부엌에 왔다”고 했다. 인터넷에 있는 공유부엌 이용객들 후기를 보고 이곳을 선택했단다. 윤씨는 “다양한 조리 기구가 있는 곳에서 요리하니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했다. 윤씨는 이용객들이 포스트잇에 남긴 글귀를 보며 “특별한 추억 남기고 간다”고 적을 거란다.

바비키친 박진영 공동대표는 “주 고객층은 20~30대”이며 “금요일과 주말에 가장 예약이 많고, 주로 친목 모임·연말 파티·생일 파티 등에 이용한다”고 했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자리한 ‘후암주방’ 역시 공유부엌이다.

공유부엌과 공유서재를 운영하는 도시공감협동조합 건축사 사무소의 이준형 실장은 “원룸이나 고시원의 부엌은 좁아요. 그러다보니 거기서 무엇을 만들어 먹는 일이 힘들어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구나 요리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인 공유부엌을 만들었어요”라고 말했다.

이 실장은 공유부엌은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용객들이 손편지를 남기고 간다고 했다. 그들은 포스트잇이나 영수증 뒤에 ‘잘 이용한다’ ‘좋은 시간 보낸다’ 등 메시지를 남긴다. 맛보라며 요리를 덜어두고 가는 손님, 음식 대신 바나나 한 송이를 간식으로 두고 가는 손님 등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며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있다. 사용하고 남은 재료를 다음 사람이 쓸 수 있도록 냉장고에 두고 가기도 한다.

공유부엌은 이웃과 함께 요리하고 식사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공유 공간을 체험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요리법(레시피)을 공유하거나 소중한 이들에게 줄 음식을 만들거나 음식 나눔을 준비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공유의 맛’을 느낀다. 함께 먹어야 더욱 맛있는 그 맛을!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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