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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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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 찾아 사막에 ‘체크인’

멋진 논문 쓰기 위해 아프리카로 간 곤충학자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등록 2018-12-22 14:55 수정 2020-05-03 04:29

지식과 교양을 생산한 대가가 ‘무수입’으로 이어지는 일은 어느 나라에서나 흔히 일어나는 모양이다. 어릴 때부터 파브르를 존경해 곤충학자의 꿈을 꿨던 마에노 울드 고타로도 그랬다. 학부에서 곤충학을 전공하고 사막메뚜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정규직 연구자가 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고생 끝에 박사 학위를 따고 나자 날마다 연구직 관련 구인·구직 정보 사이트를 들락날락하는 신세가 됐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방법은 단 하나. 멋진 논문 쓰기였다. 고타로는 이왕이면 ‘현장’에서 제대로 된 논문을 쓰겠다 결심하고 떠난다. 메뚜기의 대륙, 아프리카로. 메뚜기 떼의 광적인 출몰로 재해를 입는 아프리카 서쪽의 나라 모리타니에서 모험담은 이렇게 시작됐다.

‘곤충의 황제’라는 메뚜기는 세계 각지의 곡창지대에서 서식한다. 지은이가 연구한 사막메뚜기는 아프리카의 반사막 지대에 서식하며 가끔 대규모로 나타나 농작물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성충은 바람을 타면 하루에 100㎞를 이동하므로 한 번에 수억 마리가 떼 지어 날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히브리인들은 메뚜기 날개에 있는 독특한 모양을 ‘신의 형벌’이라는 의미로 믿을 만큼 메뚜기 떼는 두려운 자연재해다. 이에 아프리카 국가들은 메뚜기떼가 보이면 대규모 살충제로 몰살시키고 있다. 한국에서 흔히 나타나는 메뚜기는 무리를 이루지 않는 온순한 ‘고독상’이지만 이들도 어쩌다 메뚜기 떼에 들어가면 난폭한 ‘군생상’으로 ‘상변이’한다. 지은이는 이런 상변이 현상을 분석하는 한편 메뚜기가 사막의 가혹한 환경을 어떻게 견뎌내는지, 집단을 이루는 환경과 조건은 무엇인지 등을 연구해나간다.

이쯤 되면 진지한 메뚜기 연구서가 될 법하지만, 지은이는 논문 발표 전에 이 책 (해나무 펴냄)부터 먼저 썼다는 이유로, 구체적인 연구 결과에는 함구한다. 대신 모리타니 사람들과 함께하는 유쾌한 ‘사막 활극’으로 독자를 즐겁게 한다. 메뚜기를 찾으러 사막에서 ‘체크인’하고, “무한한 넓이를 자랑하는 침실”에서 별을 보며 잠이 든다. 전갈에 물리거나, 벼룩과 사투를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연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리타니 역사상 가장 극심한 가뭄이 찾아와 메뚜기가 사라지고 만다. 동네 아이들에게 메뚜기를 잡아오면 돈을 주겠다며 ‘현상금’까지 내걸지만 연구에 충분한 메뚜기가 모이지 않았다. 메뚜기가 보이지 않자 사막의 또 다른 곤충 ‘거저리’를 연구할 만큼 부지런한 고타로를 사하라의 여신은 버리지 않는다. 고타로는 막판에 ‘검은 구름’과도 같은 무시무시한 메뚜기 떼를 만나는 행운을 누린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대목은 그가 안정적인 연구비를 타내기 위해 젊은 연구자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인 교토대학의 ‘하쿠비 프로젝트’에 응모했을 때의 에피소드다. 면접자인 대학 총장은 당시 3년째 아프리카에 머물던 지은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가혹한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연구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한국 학자들 중 이런 말을 들어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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