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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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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12-08 10:49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잔뜩 취한 오 부장이 오기 전까지도, 진철은 눈앞에서 익어가는 고기 한 점을 먹지 않았다.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진철에게 무언의 굴복 선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 부장이 3분기 호황 실적을 축하하며 “위하여”를 외치기 전 덧붙인 말 때문인지도 몰랐다.

“불법 파업을 단죄합시다!”

본인을 저격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진철은 꿋꿋이 잔을 들었다. 그 누구도 진철에게 술잔을 맞대주지 않았지만, 진철은 안면몰수하고 가장 크게 “건배”를 외쳤다. 시위라도 하듯이.

순간 회식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싸해졌는데, 분위기 메이커 박 대리가 재빠르게 “위, 위하여!”를 외치지 않았다면 꽤 난처해졌을 것이다. 어색했던 분위기는 어물쩍 넘어갔지만, 진철은 그사이 탄 연기를 마시는 바람에 술잔을 잡고 캑캑대고 있었다. 물이 아닌 소주를 한입에 털어넣으며 희뿌연 연기와 모욕감을 동시에 삼킨 진철은 계속해서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우리는 잘못한 것이 없다.’

진철은 회식 내내 석고상처럼 미동 없이 앉아 있었다. 술을 마시자는 사람도, 고기를 먹어보라는 사람도 없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그를 도우면 본인도 낙오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같은 것이 분위기 저변에 깔려 있었다. 시끌벅적한 시간 속에서 진철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불판의 남은 연기와 함께 홀로 고립됐다.

잠시 뒤, 오 부장이 비틀대며 진철 앞에 앉았다. 그는 참이슬 한 병과 고춧가루 한 톨이 묻어 있는 소주잔을 턱 내려놨다. 박 대리와 김 대리는 혹시나 불똥이 튈까봐 바지춤을 잡고 쉬가 마렵다며 화장실로 피신했다. 진철은 겸허히 자세를 고쳐 앉았다. 말없이 소주 뚜껑을 열었다. 오 부장은 앉은키가 커서 진철을 위에서 내려다봤다. 진철은 술잔에 술을 가득 채워 연거푸 마셨다. 잠시 빈틈이 보이면 오 부장은 “에헴” 하며 추임새를 넣었다. 사람들은 못 본 척 쉬쉬했다. 진철이 술을 못한다는 걸 알고 있는 몇몇 동료들조차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표면적인 대화들로서 그들의 모든 집중과 시선은 진철과 오 부장에게로 쏠려 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진철이 소주 한 병을 비우고 나서야 오 부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진철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치며 “정진철, 너 인마 잘하는 놈이잖아, 할 수 있지?”와 같은 말 같지도 않은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한꺼번에 많은 알코올을 섭취해 시야가 흐려진 진철의 주위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말라비틀어진 항정살 몇 점만이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타고 있었다. 그사이 식당 아주머니가 불판을 빼며 “이거 먹을 거예요?” 하고 묻더니 진철의 앞접시에 새까맣게 탄 고기를 놓고 갔다. 몸을 가누지 못해 오뚝이처럼 앞뒤로 뒤뚱거리는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 거라 착각한 것이었다. 진철은 차갑게 식어버린 고깃덩이를 초점 없는 눈으로 응시했다. 불현듯 예서가 떠올랐다.

회사에서 신임을 받던 진철이 갑작스레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한 데는 여자친구 예서의 영향이 있었다. 예서와 진철은 산다이테크의 유일무이 사내커플이었다. 사내커플이라 함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자질구레한 일을 감내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실상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두 사람에게는 어떠한 구설도 없었다. 예서는 생산직원이고 진철은 사무직원으로 부서가 달랐기 때문이고, 서로 사용하는 층이 달라 점심시간 30분이 겹치는 것 말곤 공통분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선 두 사람이 사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사실로서만 알 뿐 실체를 본 사람은 없었다. 손을 잡거나 연애를 하거나 눈빛을 주고받는 일, 보통 연인들이 하는 애정 행각 따위 산다이테크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사내연애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한 사람의 영향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옮겨와 괴롭히는 것은 진철에겐 매우 당황스럽고 이겨내기 어려운 일이었다.

1999년 밀레니엄 시대의 부푼 기대감을 업고 설립된 산다이테크는 얼마 전, 스티커, 잉크젯 라벨지 등을 만드는 생산공장을 파주에서 오산으로 옮겼다. 그 결과 10여 년을 이곳에 몸 바친 생산직원들, 5년간 손가락 휘어지게 스티커를 붙여낸 예서는 하루아침에 전근을 가야 했고, 결국 이 모든 것이 외주화를 위한 발판이라는 것을 알고 파업을 시작했다. 단풍이 낙엽으로 변질되는 계절이 되었을 때, 직원들은 파업 조끼를 입고 파주 본사 앞에 농성천막을 쳤다. 열다섯 명쯤 되는 인원이었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천막 안을 파고드는데 한두 명만 자리에 없어도 냉기가 돌았다. 생산과장은 본인이 만든 견출지에 파업 참가자들의 이름을 차례로 적어 피켓에 붙였다. 그러면서도 불량을 발견하면 “이거 유통된 거야?” 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실직 상태인데도 일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생산과장을 보며 예서는 이름 모를 쓸쓸함을 느꼈다. ‘저 사람의 인생엔 일이 전부인데, 전부를 잃어서 무척 공허하겠구나.’ 예서는 본인 처지는 생각도 않고 그렇게 생산과장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파업은 진행 중이었지만, 당사자들 말고는 누구도 이 파업에 관심이 없었다. 공장지대라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고, 천막을 쳐다봐주는 사람도 없었다. 출퇴근 시간에 회사를 오가는 직원들 말고는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회사 직원들조차 시선을 거두고 모르는 체했다. 그렇게 닷새가 지나자 사람들은 의기소침해졌다. 당장 이번 달 생활비- 보험료, 통신료, 아이들 학원비, 교통비 등- 자잘하게 나갈 것은 많은데 월급이 삭감되니 불안했다. 애초에 파업을 포기하고 오산 공장으로 옮겨간 직원들이 부러운 사람도 있었다. 요새 생산직은 이렇다더라, 사내 하청이 아닌 곳이 없다, 같은 말을 들으면 본인들이 하고 있는 싸움이 달걀로 바위 치는 일이 아닌가 싶어 괜한 고립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불안함은 산다이테크의 회식이 있던 날 인사팀 과장이 주고 간 쪽지로 증폭됐다. 예서는 그 쪽지를 펴보았을 때, 마치 자신의 것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들어 앞뒤로 뒤집어보았다. 끄트머리에 이름이 휘갈겨 쓰여 있지 않았다면, 본인 것으로 확신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예서의 눈에 ‘발령- 영업팀’이라는 글자가 궁서체로 들어왔다. 거역할 수 없는 명령처럼 단호한 문체였다. 그것은 쪽지를 받은 사람들 모두 느끼는 감정이었다. 다섯 살 아들과 두 살 딸이 있는 문씨는 주먹으로 가슴을 턱턱 치며, 마흔두 살에 기획팀 인턴이 웬 말이냐며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

회식을 마친 진철은 파주 시내에 있는 롯데리아로 향했다.

2층으로 올라가니 구석에 앉아 있는 예서가 보였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진철과 예서는 서로 다른 이유로 말이 없었다. 진철은 오 부장의 말을 생각하느라, 예서는 발령 쪽지를 생각하느라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문득 진철이 예서에게 뭐 좀 먹지 않겠느냐고 물어보면서 침묵이 깨졌다. 예서는 온종일 농성을 하느라 제대로 된 한 끼를 먹지 못했지만, 허기를 느낄 새가 없었다. 진철의 옷에 축적된 고기, 술, 담배, 그리고 그런 것들을 없애고자 황급히 털어넣은 은단 냄새가 속을 울렁이게 했기 때문이다. 예서는 괜히 그런 냄새가 나자 진철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것도 못 먹고 농성한 사람을 앞에 두고 고기 냄새나 풍기는 그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반대로 진철은 빈속에 소주 한 병을 ‘원샷’ 하는 바람에 속이 쓰려 햄버거라도 먹고 싶은데, 예서가 먹지 않겠다고 해서 눈치가 보였다.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예서를 앞에 두고 게걸스럽게 햄버거를 먹을 수는 없어서 결국 다 식어빠진 감자튀김 두 봉지와 콘아이스크림을 사왔다.

“나보고 영업팀 가래.”

예서는 진철이 건넨 아이스크림을 감자튀김 봉지에 욱여넣으며 말했다. 반투명 포장지에 찐득한 아이스크림 국물이 희끗 비쳤다. 진철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그 모습을 지켜봤는데, 속에서 위액이 올라와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도 쓴맛을 느꼈다.

“어떻게 하게?”

“뭘 어떻게 해?”

진철의 태도가 무성의하다고 느낀 예서의 말투가 날카로워졌다. 사실 예서는 파업을 시작하고 진철에게 쌓인 게 많았다. 노조에 가입하겠다고 하자, 한숨을 푹 쉬며 외면하던 모습이나 예서의 눈을 피해 농성천막 옆문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았을 때 정말 우리가 사랑하는 사이가 맞나, 2년 사귄 애인 사이가 맞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동료들조차 “진철씨 왜 옆문으로 돌아가는 거야? 헤어졌어?” 하며 의아해할 때마다 예서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예서는 진철의 상황을 알 리 없었다. 일부러 거리를 두는 거라고 진철이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 간부들은 종종 진철을 불러, 농성자들의 정보를 캐내려고 했다. 예서가 여자친구라는 사실은 중요치 않은 듯했다. 그들은 진철이 본인들의 편일 거라 확신했고, 그 태도는 아주 노골적이었다. 한 간부는 박예서가 원하는 게 뭔데 이 소란을 피우냐며 회의 시간에 진철을 대놓고 나무랐다. 어쩔 수 없이 진철은 예서를 피해 도망 다녀야 했다. 예서가 서운할지 모른대도 할 수 없었다.

“예서야, 오산 공장은 정말 싫어?”

몇 번이고 참았지만, 끝내 식도를 역류하는 위액처럼 그 말을 내뱉고야 마는 진철이었다. 예서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아직 11월 중순밖에 안 됐는데 스멀스멀 새어나오는 히터 바람 때문인지도 몰랐다. 예서는 멀찌감치 떨어져 바닥을 쓸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을 불러세웠다. 고등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앳된 소년이 뚱한 표정을 지으며 멈춰섰다.

“춥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 히터를 세게 틀어요?”

예서가 쏘아붙이며 묻자 아르바이트생은 히터 쪽으로 손을 올려보더니 “꺼져 있는데요” 하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가 떠나고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게 나한테 할 소리야?”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에 예서의 눈에 눈물이 그렁 맺혔다. 반면 그 말을 들은 진철의 속에서도 일순간 뭔가가 욱하고 튀어올랐다. 지금까지 참아왔던 것, 말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난 뭐 편하게 회사 다니는 줄 알아? 내가 파업하는 것도 아닌데 너 때문에 나까지 이게 뭐냐.”

“뭐라고?”

“회사에서 내 입장이 어떨지 생각해본 적 있어?”

본인의 상황이 진철에게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하지 못한 예서였다. 약자는 본인이므로, 그 외 것들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진철은 오늘 회식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나, 예서를 피해 도망가면서 어떤 기분이 드는지, 간부들이 매일 찾아와 괴롭히는 얘기 등을 쏟아냈다. 그렇게 더는 어떤 찌꺼기도 남아 있지 않아 텅 빈 상태가 되었을 때, 진철은 아차 싶었다. 예서의 뺨에 눈물이 톡 떨어졌다. 예서와 사귀면서 단 한 번도 우는 모습을 보지 못한 진철이었다. 슬픈 영화를 봐도 우는 쪽은 늘 본인이었으니까.

진철이 조심스레 냅킨을 내밀었지만, 예서는 벗어둔 웃옷을 들고서 밖으로 나갔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예서에게 이런 상황은 버거울 뿐이었다.

*


며칠 후 예서는 파업 조끼를 벗고, 동료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게 됐다고. 상황상 어쩔 수가 없다고.

동료들은 함구했고, 천막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생산과장은 파업 피켓에서 예서의 이름이 적힌 견출지를 뗐다. 예서는 웅크리고 서서 빈자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미동도 할 수 없었다.

예서가 선택한 것은 오산 공장이 아닌 영업팀으로의 부서 이동이었다. 오산 공장으로 간다는 것은 사실상 비정규직이 되는 거나 다름이 없었으므로, 서른다섯의 나이에 그런 위험한 선택을 할 수는 없었다. 지금 예서에겐 적성보단 고용 보장의 안정성이 더 중요하니까. 하지만 새로운 일을 배우고, 뭐라도 할 수 있을 거란 예서의 기대는 출근 첫날부터 무참히 어긋났다.

영업팀으로 이동한 첫 주, 마땅히 자리도 없어서 탕비실 탁자 위에 멍하니 앉아 있는 것 말곤 할 게 없었다. 영업팀장은 지금은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일주일쯤 지나 자리를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할 일 없냐고 묻자, 지금은 없고, 정 할 거 없으면 물통이라도 갈든가 하며 정수기 쪽으로 고갯짓을 했다. 영업팀장이 나가고, 예서는 물통을 갈고 탕비실을 청소했다. 제대로 된 물걸레도 없어서 휴지에 물을 적셔 먼지를 닦았다. 종이컵도 채워넣고, 녹차 티백의 열도 맞췄다. 예서를 감시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수시로 들락날락하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다. 인사를 하기도 안 하기도 어색한 상황이었다. 휴대폰이라도 하면 괜찮으련만, 꼬투리를 잡힐 수 있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눈을 오래 감고 있지도 않았다. 조는 것처럼 보일까봐 사람들이 올 때면 긴장했다. 신경 쓰이기는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분위기는 일주일쯤 지나니 말끔히 사라졌다. 실상 영업팀장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언제쯤 자리가 생기냐는 예서의 항의에도 기다리라는 말뿐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지친 예서가 거칠게 항변하면 팀장은 “왜 또 파업하려고?” 같은 말을 하며 비아냥대기 일쑤였다.

그렇게 항의와 체념의 시간이 축적되던 사이, 예서는 어느새 탕비실 담당이 되어 있었다. 커피가 떨어지거나 녹차 티백이 동나면 어김없이 예서의 이름을 불렀다. 예서씨, 휴지가 없네요, 예서씨, 여기 좀 닦아줘요, 예서씨, 녹차 말고 율무차로 사다주세요 등등의 요구들이었다. 공장에서 동료들과 부대끼던 때가 그리웠다. 이곳은 너무 삭막하고 외로웠다. 그럼에도 예서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농성천막을 애써 외면한 채 커피믹스를 채워넣었다. 현재로선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었으므로, 묵묵하게 해나갈 수밖에 없었다.

예서가 파업을 포기했음에도 진철을 향한 시선은 좀처럼 나아질 길이 없었다. 직원들은 뒤에서 예서를 흉봤다. 옮기란다고 진짜 옮기냐고 눈치 없다는 사람도 있었고, 동료를 배신했다는 사람, 본인들은 면접에 시험에 힘들게 입사했는데 쉽게 사무직으로 신분 세탁했다고 억울하다는 사람도 있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기획서를 제출할 때, 점심 먹을 때, 모든 순간에 예서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도 진철은 참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사람들은 화젯거리가 생기면 곧잘 잊어먹으니까. 어쨌든 예서는 잘리지 않았고, 파업을 관뒀기에 제자리를 찾을 거라는 믿음이 진철에게는 있었다.

하지만 다른 건 다 참아도, 그중에서 진철을 가장 견딜 수 없게 하는 게 있었다. 사람들이 예서를 대하는 태도였다. 그들은 예서를 사무실에 굴러다니는 파지 취급을 했다. 쓸모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떻게든 써먹으려고 애쓰는 사람들 같았다. 마치 예서의 고용주가 본인들인 양, 뭔가를 시켜댔다. 처음엔 자잘한 부탁도 눈치 보며 하던 사람들은 총무팀장 박찬숙이 탕비실 하수구에서 냄새가 난다며 예서에게 청소를 시킨 이후부터 요구의 크기를 키워갔다. 진철은 일부러 탕비실에 가지 않았는데, 그곳을 쓸고 닦는 예서의 모습을 볼 자신이 없어서였다. 예서는 누구보다 자기 일을 사랑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불량 스티커 하나도 그냥 넘기지 않고 꼼꼼히 체크하며 한 부분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았다. 예서에게도 실직에 대한 상실감이 클 터였지만, 그 모습을 보는 건 진철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본인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한 걸 알았기에 진철의 죄책감은 커졌다.

사무실 사람들이 밥 먹으러 내려간 걸 확인하고 나서야 예서는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달걀말이와 시금치무침, 연근조림, 김치 등 반찬들이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쏠려 있었다. 냄새날까 미리 열어둔 창문에서 제법 차가워진 초겨울 바람이 들어왔다. 따뜻한 밥과 반찬은 아니었지만, 예서는 아무도 침범하지 않는 이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점심시간만큼은 아무도 들어오지 않으니까,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으니까 긴장이 좀 풀렸다. 직원식당에 가지 않은 지는 꽤 됐다. 남아 있는 생산팀 직원들을 마주치는 것보다 차라리 다 식어 딱딱해진 찬밥을 먹는 게 나았다. 그런 생각을 하니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서러움이 복받쳤다.

예서가 반쯤 밥을 먹었을 때, 다이어트를 시작해 끼니를 거른 박찬숙이 불쑥 탕비실로 들어왔다. 찬숙은 문을 열자마자 “이게 무슨 냄새야?” 하며 코를 막았는데, 예서는 까다로운 성미인 찬숙을 잘 알아서 얼른 뚜껑을 덮으려다 도시락을 바닥에 엎었다. 찬숙은 그 광경을 보고, 어이없게 쳐다봤다.

“박예서씨, 소풍 왔어요?”

예서가 어쩔 줄 몰라 당황하자 찬숙이 미간을 찌푸리며 쏘아붙였다.


“안 치우고 뭐 해요?”

예서는 무릎을 꿇고 맨손으로 반찬을 모았다. 손바닥 모양대로 김칫국물 자국이 남았다. 박찬숙은 예서를 밀치고 싱크대로 가서 손을 닦았다. 그녀는 불길한 것을 없애려는 듯 손을 탈탈 털었는데, 그때 찬숙의 손에서 이탈한 물방울이 예서의 이마 위로 톡 떨어져 미간으로 흘러내렸다. 간질거렸지만 양손이 더러워진 예서는 할 수 없이 어깨춤으로 쓱 닦고, 반찬 뚜껑을 덮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탕비실에서 식사를 금지한다는 경고문이 붙었다. 경고문은 예서가 붙였다. 예서는 치욕스러운 마음이 들어 차라리 회사를 그만둘까도 생각했는데, 조금만 버티면 한 달 월급이 나오는 것을 알고 남은 날짜를 세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문득 그러고 있는 본인의 처지를 생각하자, 무척이나 서러워졌다. 금세 눈물이 고였다. 요새 예서는 자주 울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씩씩했는데, 바닥으로 곤두박질쳐버린 자존감이 그녀를 극한으로 몰아갔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건,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었다. 소속되어 있지만,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느낌이 들어 처참했다.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려 발버둥 치면 칠수록 그들은 더 강하게 예서를 밀어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예서는 한숨조차 삼키며 흘러나오는 눈물을 재빠르게 닦아냈다.

*


결국 예서는 피켓을 들고 다시 거리에 섰다. 회사는 한 달이 지나도 직무를 주지 않았고, 자리도 마련해주지 않았다. 강력한 항의는 비아냥과 인신공격으로 되돌아왔고, 아무도 예서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제 발로 나가라는 듯, 방치와 방임만이 있을 뿐이었다.

농성천막에는 고작 다섯 명만이 남아 있었다. 예서는 그 옆에서 1인시위 피켓을 들었다. “부당 해고를 위한 강제 발령 철회하라”는 말을 노란 글씨로 써 붙였다. 파업 참가자들은 그런 예서를 두고 보이지 않게 혀를 찼다. 배신하고 가더니 꼴좋다며 없는 사람 취급했다. 파업을 시작할 때, 함께 이겨내보자던 끈적한 동료애는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 예서는 그들에게도 완벽한 이방인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 때, 생산과장이 예서에게 다가왔다. 예서는 고개 숙여 꾸벅 인사했다. 생산과장은 담배를 한 모금 들이마신 후, 예서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묶어 볼 것 같으니, 좀 떨어져서 할 수 없겠느냐고, 엄연히 다른 시위인데 경계를 나눴으면 좋겠다고.

예서는 그들에게 밀려 경비실 옆 외진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정문보다 더 인적 드문 별관 건물 앞이었다. 커다란 느티나무 가지에 해가 가려서 그늘이 늘 져 있는 곳이기도 했다. 경비 아저씨는 바닥을 쓸 때마다 예서를 귀찮아했다. 왜 여기서 그러냐고, 다른 데서 하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럴 때마다 예서는 이를 악물고 피켓을 힘껏 쥐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느낌이 들었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 악에 받쳤다. 종일 서 있는 것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초겨울 바람에 몸이 꽁꽁 얼었다. 잠깐 햇볕이 들 때 몸이 녹았다가 다시 싸늘하게 식어 더 추웠다. 농성장 천막이 그나마 보호막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예서는 멍하니 서서, 진철에 대해 생각했다. 며칠 전, 참지 못하고 이별을 고해버린 그날이 떠올랐다. 1인시위를 하겠다는 말에 결국 진철은 눈물을 왈칵 쏟았다. 꼭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느냐고, 나 좀 살려달라고, 우리 같이 좀 살자고 울었다. 그러면서도 진철은 본인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다고 거듭 미안하다고 했는데, 예서는 그런 진철이 불쌍해 헤어지자고 했다. 진철은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을 그치고, 진심이냐고 물었다. 내심 잡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예서는 매몰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철은 눈물을 닦고 예서의 자취방을 나갔다.

진철은 파주 시내 한복판을 터벅거리며 걷다가 예서와 본인의 삶이 왜 붕괴돼야만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곱씹었다. 무엇이 잘못된 건지, 뭐 때문에 이렇게 꼬인 건지. 애초에 예서가 오산 공장으로 갔다면 우리가 이렇게 되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본인이 회사를 관둬야 했던 건지. 그는 자문했지만, 답은 알 수 없었다. 그저 진철이 알 수 있는 건,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내일의 현실이었다. 고작 현실, 처절함에 술이라도 진탕 먹고 싶은데 아침 7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어 그러지도 못하는 현실. 불투명한 미래를 희망 삼아 시위해야 하고, 피켓을 들어야만 하는 현실이 그들에겐 남아 있던 것이다. 벗어날 수 없고, 답이 없는 현실을 살아내느라 두 사람은 그렇게 멀어져야 했다.

그 후 진철이 예서를 만난 건, 예서가 삭발하던 날이었다.

진철은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예서의 방에 두었던 옷가지를 챙기러 갔다. 외근이 있어 그날은 회사에는 가지 못했다. 예서에게 옷을 가지러 가겠다고 문자를 남겨놓았지만, 답은 받지 못했다. 밤 아홉 시가 되었는데도 연락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진철은 본인들의 생일 끝자리를 조합한 비밀번호를 누르고 예서의 자취방 문을 열었다. 불은 꺼졌는데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예서야?”

이불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진철은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갔는데, 예서의 두 발이 이불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예서야, 자?”

다시 한번 묻자, 예서가 턱 막힌 목소리로 말했다.

“옷 가지고 가. 불은 켜지 말고.”

무슨 일인가 싶어 의아했지만, 진철은 시키는 대로 했다. 하지만 어두워서 옷을 찾을 수 없어 되물었다.

“예서야, 옷 구별이 안 돼서 그러는데 불 켜면 안 돼?”

예서는 그제야 이불 밖으로 나오더니 전기 스위치를 딸각 눌렀다. 진철의 눈앞엔 훤히 두상을 드러낸 예서가 있었다. 아직 다듬지 않은 정원의 덤불처럼, 제멋대로 자라난 잔디처럼 머리카락이 제각기 잘려나가 있었다. 진철은 당황스럽고, 놀란 나머지 들고 있던 옷가지를 떨어뜨렸다. 예서는 그 옷들을 다시 주워 주며 “이상해?” 묻고, 웃었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바닥엔 정리하지 못한 진철의 옷가지가 널브러져 있었다. 진철은 두 손을 모으고 천장 귀퉁이를 쳐다봤다. 예서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예서는 혹여 진철이 더는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면 어쩌나 마음 한편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나란히 침대에 누웠는데도, 야릇한 감정이 들기는커녕 분위기가 서먹했다. 바닥이 따뜻했는데도 집에 한기가 도는 것처럼 냉랭했다.

“머리 왜 밀었어?”

진철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것까지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려고.”

“삭발한다고 회사에서 알아주는 건 아니지 않나….”

“생산팀장이 다시 받아줄 테니까 삭발식에 참여하지 않겠느냐고 해서… 했어. 너무 외로워서.”

“….”

그 말을 들은 진철은 쓸쓸해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조금씩 모든 걸 잃어가는 예서가 안쓰럽고 불쌍하게 느껴져서 목이 메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진철의 마음을 잘 아는 예서가 돌아누워 분위기를 바꿨다. 진철을 밑에서 올려다봤다. 어색하게 손을 진철의 허리춤에 둘렀다. 진철은 그런 예서의 눈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두 사람은 아주 오랜만에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변한 건 상황이지 감정이 아니었다. 예서의 심장이 툭 내려앉았다. 떨리는 마음을 미소 속에 억지로 감추듯 예서는 배시시 웃었다.

“이제 나 안 예뻐? 남자 같지….”

머쓱하게 웃으며 머리를 쓸어넘긴 예서는 그 말을 하고 진철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진철은 예서를 꽉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옷이 축축해질 정도로 흐느꼈다. 까끌까끌한 예서의 머리카락이 턱 밑을 따갑게 할수록 진철은 더 꽉 예서를 품었다. 그의 온기에 몇 달간 꽁꽁 얼어붙은 예서의 마음이 녹아내렸다. 그렇게 그 겨울, 두 사람은 마음을 다해 서로를 위로하며 처절했던 시간을 조금씩 지워나갔다. 바깥에선 창문을 두드리는 매서운 바람 소리만이 공허하게 들려왔지만, 두 사람의 귓가엔 닿지 않았다.

최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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