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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노동 현실을 좇다

302편 응모작 중 최준영 ‘파지’ 대상, 고문희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장임혜경 ‘비니’ 가작
등록 2018-12-08 10:46 수정 2020-05-03 04:29
“평범한 내용이지만, 제 글도 누군가에게 읽히지 않을까 싶어 용기를 냈습니다.” “망설이다가 어렵게 용기 내어 손바닥문학상의 문을 두드려봅니다.” “부족하지만 읽어주신다면, 그것 자체로 감사할 것 같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글쓰기를 응원하는 손바닥문학상에 응모한 이들이 보낸 글이다. 올해 10회를 맞은 손바닥문학상에 글 쓰는 이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은 작품이 여느 해보다 많이 모였다. 역대 가장 많은 302편이 접수됐다.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응모했다. 작품 소재도 다양했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기록한 자기 고백의 글과 고독사, 갑질 문화, 미투, 가족 해체, 청년 실업, 자영업자 몰락 등 사회문제를 담았다. 해마다 그렇듯 동시대 사회적 이슈를 담아 현대사회의 음울한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이 많았다. 특히 올해에는 미투 영향으로 ‘리벤지 포르노’(이별 뒤 보복 목적으로 유포하는 전 연인과의 성관계 동영상), 데이트폭력, 대학 내 성폭력 등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 눈에 띄었다.
11월12일 공모를 마감한 뒤 팀장들과 기자들의 예심을 거쳐 27편을 가렸다. 이들 작품을 대상으로 김소윤 소설가(제2회 손바닥문학상 대상 수상자), 박수현 문학평론가(공주대 교수),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가 11월28일 최종 심사를 했다. 최종 심사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당선작을 결정했다. 대상은 최준영씨의 ‘파지’ , 가작은 고문희씨의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와 장임혜경씨의 ‘비니’가 선정됐다.
11월28일 오후 손바닥문학상 심사위원들이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최종 심사를 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소윤 소설가, 허윤희 기자, 박수현 문학평론가, 이명원 문학평론가. 김진수 기자

11월28일 오후 손바닥문학상 심사위원들이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최종 심사를 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소윤 소설가, 허윤희 기자, 박수현 문학평론가, 이명원 문학평론가. 김진수 기자

올해 손바닥문학상이 10회를 맞았다. 독서 대중에게도 이 문학상이 중요한 참조점이 된 것인지, 올해에는 302편의 픽션·논픽션 작품이 응모됐다. 예심을 거쳐 결심에 올라온 작품은 27편이다. 이 중 1편을 제외하고는 26편 모두 단편소설이었다. 지난해 당선작 ‘경주에서 1년’이 논픽션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는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손바닥문학상이 다른 문학상과 다른 점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의 살아 있는 경험과 인식, 사회적 의제를 현실감 있게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허구로 가공되지 않고 직접적으로 발언하고 증언하는 날카로운 시선도 필요하다.

결심에 올라온 작품들을 읽으면서, 심사위원들은 오늘의 대중이 더없이 차갑고 각박하며 고립된 상황에 빠졌다는 걸 알았다. 명백한 희망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절망감을 호소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소설 속에 재현된 가족들은

‘해체 이후’를 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등장인물들 역시 구조화된 혹은 내면화된 개인적·사회적 폭력에 너무 쉽게 죽거나 죽이는 인물들로 나타났다. 흡사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은유한 ‘악마의 맷돌’에 짓이겨지는 사람들처럼도 느껴졌다.

너무 쉬운 죽음들

명백하게 그것은 오늘의 창백한 현실을 은유하고 폭로하는 것이기는 하겠지만, 인물들의 행위와 상황에서의 갈등이 치밀하게 설정되지 않는다면 극적 과장이나 울분의 해소 정도에 머물러, 소설에 필요한 공감 능력에 기반한 성찰적 현실 이해를 봉쇄할 위험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심사위원들이 최종 심사에서 주로 논의한 작품은 6편이었다. ‘모르는 번호’ ‘난 쥐가 아니야’ ‘미지의 소녀들’ ‘비니’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파지’가 그것이다.

‘모르는 번호’는 대학원 지도교수의 제자 성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다. 가해/피해 구도 속에서, 피해자가 처한 박해와 고립 상황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화자의 상황 회피를 통한 문제 종결이 아쉽게 느껴졌다.

‘난 쥐가 아니야’는 쓸모없는 쥐처럼 방치됐을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 의한 폭력적 정황에 노출된 영악한 아이가 본 절망적 현실을 아이러니 기법으로 서사화한 작품이다. 가족과 세계 모두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어린 화자의 체념이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미지의 소녀들’은 제주4·3 사건의 와중에 좌익으로 몰릴 위험에 있던 여성을 위협해 강압적으로 결혼한 화자의 할아버지가 나온다. 치매 상태에서 과거 자신의 행동을 손녀 앞에서 재현하는 설정은 신선한데, 분량이 짧다보니 완결된 서사로 가지는 못했다.

노동소설 세 편에 관심

‘비니’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파지’는 공히 ‘노동’ 문제를 모티프로 한 작품들이다. 특성화고 실습생, 아파트 경비원, 정리해고를 앞둔 생산직 노동자가 소설의 주인공들이다. 노동문제라고 하지만 이 소설들에 나오는 예비·현직 노동자는 사무직·정규직 노동자와는 다른 삶의 정황에 포위돼 있다.

‘비니’는 제주도에서 있었던 특성화고 출신 실습생의 죽음이라는 실제 사건을 소설의 모티프로 삼고 있다. 담임교사의 2인칭 고백으로 사건 전후의 회상과 회한이 침착하게 서술돼 일정한 공감 능력을 발휘하게 한다. 문제는 사건의 모델이 있다는 점에서, 이를 뛰어넘는 입체적인 분석적 시선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사건 재현 수준에 머무르는 한계가 생길 수 있는데 이를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어찌 보면 현대판 ‘운수 좋은 날’처럼 느껴지는 작품이다. 아파트 경비노동자로 운 좋게 취업한 화자의 독백으로 시종일관 소설이 전개되는데, 의외로 글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마도 이는 화자의 전화기에 저장된 지인과 낯선 인물들을 ㄱㄴㄷ순으로 검색하고 통화해보지만, 결국 소통에 실패하거나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구성의 묘미에서 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바로 그 사실이 소설에서 어떤 ‘의외성’ 혹은 ‘의표를 찌르는 반전’ 등을 어렵게 한 것은 아쉽게 느껴진다.

‘파지’는 심사위원들이 읽으면서 가장 많은 논의를 했던 작품이다. 3인칭 제한 시점으로 쓰인 소설에서 주동 인물은 예서고 그의 사내연애 대상은 진철이다. 진철은 사무직 노동자이며, 예서는 생산직 노동자였다가 사내 하청노동자로 전락할 상황에 처해 파업을 하는 인물로 그려졌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포옹

사내커플이라는 이유 때문에 진철과 예서는 각기 다른 노동환경에서 그 관계가 훼손돼가는 위기를 겪는다. 이 소설의 미덕은 이 관계 훼손을 사실상 강제하는 비인간적인 고용구조와 인사관리 행태, 그런 가운데 ‘살아남기 위해’ 치욕을 감수하는 한편, 파업하는 동료들로부터도 소외·배제되는 예서의 이율배반적 상황을 아프게 서술한다. 그러면서도 관계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예서와 진철의 포옹은 감동적이다.

심사위원들은 논의 끝에 만장일치로 ‘파지’를 대상작으로, ‘비니’와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를 가작으로 결정했다. 수상자들에게는 진심 어린 축하를, 아쉽게도 선외로 밀려난 분들에게는 다음 기회를 기약한다는 위로를 전하고 싶다.

최종 심사위원
이명원 문학평론가(집필),
박수현 문학평론가,
김소윤 소설가

독자 심사위원의 심사평


“첫 장부터 눈물이 주르륵”


이번 손바닥문학상에는 특별한 심사위원들이 참여했습니다. 바로 독자 심사위원이죠. 독편3.0에 참여해주시는 독자 200여 명에게 독자 심사위원 참여 신청을 받았습니다. 자격 조건은 딱 하나, 정기독자로 독편3.0에 참여하는 이였고 선발 절차도 딱 하나, 독자 전용폰(010-7510-2154)으로 문자 신청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두 20명의 독자 심사위원이 예심에 오른 27편을 심사했습니다. 각 위원들이 27편에 부여한 점수(100점 만점)를 합산해 평균을 냈는데, 이 방식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위원들 내부에서도 분분했습니다. 하여 순위는 따로 밝히지 않겠습니다. 경험과 참여에 의의를 두고 시도한 것인데, 진중하게 심사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단순 ‘실험’으로 하기에는 ‘위험부담’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첫 시도에서 의미 있는 결과는 각 위원들이 보내주신 심사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는 고등학생과 중학생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서인지 ‘비니’ ‘난 쥐가 아니야’ 같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에 마음이 많이 움직였습니다. 특히 제가 최고점을 준 ‘비니’는 첫 장부터 눈물이 주르륵 흘러서 다음 작품을 심사하려면 한동안 기분을 환기해야 할 정도였어요. 아이들이 행복한 나라였으면,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것들- 생명, 음식, 안전- 이라도 지켜줄 수 있는 나라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김수지씨를 울린 ‘비니’는 이번에 가작을 받았습니다.
작품을 보는 눈은 삶의 자리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제주 해녀를 소재로 한 응모작 ‘숨’에 대해 윤재하씨는 “차마 눈물을 참을 수 없을 만큼 엄마로서의 공감, 지극히 지역적으로 같은 제주라서 느끼는 공감대일까 싶다가도, 두 딸을 가진 싱글맘이라서 느끼는 공감대일까 싶다”고 적었습니다.
수상작 외에도 독자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은 다채로웠습니다. 수상작으로 뽑히지 못했으나 ‘뼛속의 바다’도 호평받았습니다. 고은주씨는 “신선함, 유려한 문장, 아픈 감동”이란 짧으면서도 인상 깊은 평을 남겼습니다. 김나윤씨는 문학 공모전을 많이 준비한 글쓴이의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시간 배치와 인물의 초점을 다양하게 구성했다”는 점을 높이 샀습니다. 이연수씨도 “전개 방식이 좋았고, 성소수자란 주제 접근도 좋았다. 다만 인물별 단락 구분에서 조금만 더 섬세히 다뤘으면 이해하기 쉬웠을 것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응모작 ‘해혼식’도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구태씨는 “현실 반영과 공감”이라는 굵직한 평가를, 복향숙씨는 “낯설지만 많이 와닿았다. 유일하게 나를 울게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이삼식씨는 “이혼을 산악회의 인연을 주제로 재미있고 훈훈하게 써내려간 점이 인상 깊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벽’이란 작품도 주목을 끌었습니다. 성명희씨는 “가문의 위용과 권위를 자랑하는 고택과 달리 그 이면에서 노예로 착취당한 여인의 삶을 그린 것이 특색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함성민씨는 “흥미로운 설정”이었다면서도 “편집으로 고서 속 내용과 현실을 구분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외에 다양한 심사평이 있었습니다. 삶의 경험과 취향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기도 했지만, 전문 심사위원단이 꼽은 대상 ‘파지’에 대한 독자 심사위원의 평가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윤재하씨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공감 가는 내용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잘 풀어낸 작품, 그래서 내가 또 다른 예서가 된 듯한 슬픔”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 밖에 “파업, 삭발, 연인 간 갈등을 실감나게 묘사”했다(박애스더), “파업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아픈 현실을 잘 표현”(김혜현), “읽으면서 감정이입이 잘되었고, 인물이 느끼는 미묘한 입장 차이와 소외감 등도 잘 표현했다”(정성은)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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