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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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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요

그래픽노블 작가가 그리고 쓴 <추락>
등록 2018-11-16 02:46 수정 2020-05-03 04:29

최근 서점가를 점령한 건 심리 도서다. 등 ‘나’를 다독이며 내가 행복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책들이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책들의 판매 부수가 증명하는 건 역설적이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우울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고 책을 통해 공감을 얻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에서 자신의 기분부전장애(가벼운 우울증)를 드러낸 백세희 작가는 책에서 이렇게 자문자답한다. “왜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를 솔직히 드러내지 않을까? 너무 힘들어서 알릴 만한 힘도 남아 있지 않은 걸까? 난 늘 알 수 없는 갈증을 느꼈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의 공감이 필요했다.”

그래픽노블 작가인 마드무아젤 카롤린도 자신의 고질적인 우울증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심리치료를 받으며 쓴 에서 같은 증상을 가진 이들을 응원한다. 카롤린이 자신의 우울증을 처음 발견한 건 아들이 아파서 병원에 갔을 때다. 멍하니 앉아 있는 그를 보고 의사는 말한다. “이상하네요.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어요.” 의사는 그에게 한 달간 복용할 항우울제를 처방해줬고, 그는 착실하게 먹었다. 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으로 굴러떨어졌지만 그때까진 자신의 상태를 잘 몰랐다. 정확히 증상을 마주한 것은 약을 다 먹고 한 달이 지났을 때다. 어제랑 별반 달라진 것도 없는데 까맣게 된 세상에서 그는 하염없이 울었다. 우울증이었다.

병원에서 1년간 상담을 받았지만 그는 심연에서 올라오지 못했다. 늘 그의 말을 듣기만 하던 의사가 “당신은 최악이에요”가 아닌 “당신은 가장 소중한 존재예요”라고 말해줬지만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배고프지 않아도 계속해서 먹고,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은 척했다. 의사가 “당신은 나아졌다”며 치료를 중단했을 때 그는 다시 익숙한 과정 속으로 들어갔다. “괜찮은 걸까” 묻고 “응, 괜찮다니까” 스스로 답하는 일을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했다. 처음엔 자신을 안심시키려고, 그다음엔 괜찮지 않아서, 그다음엔 두려워서였다.

다시 치료받는 중에도 고통은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생일파티에서 이유 없이 눈물이 터져 멈추질 못했고, 드라마 <er>에서 관심도 없던 닥터 그린이 죽는 장면을 보고 이틀간 아무것도 못했다. 어둠은 순식간에 그를 덮친 뒤 목을 졸랐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소파에 누워 지냈고, 아침에 일어나려면 초인적인 힘이 필요했다. 기계적으로 세 아이에게 전념하며 버텼다. 물론 작은 안정을 가져다주는 것들도 있었다. 바바라 카를로티나 비치보이스의 노래들이다.
그래서 카롤린은 어떻게 됐을까. 그는 일상의 경계를 늦추지 않고 계속 치료받고 있다. 좋은 의사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치료는 이겨내려는 자기 의지다. 자신의 상태를 재밌게 그리면서 정확하게 묘사한 덕분에 독자도 우울증에 빠지는 신호, 우울증에 도움이 되는 치료법까지 지루하지 않게 만날 수 있다는 건 만화로 그려진 이 책의 장점이다. 저자는 말한다. “저와 같은 처지에 있는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자, 병과 맞서 싸우자고요.”
김미영 문화부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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