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말고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추석 연휴 고속철도 KTX 예매 전쟁에 뛰어들지도 못한 채 허무하게 전사한 탓이다. 눈뜨자마자 기차표부터 사야 한다고 메모해도 소용없었다. 예매창이 열린 지 1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전날 다짐이 생각났고, KTX 누리집에 부랴부랴 접속했을 때는 이미 경쟁이 끝났다. ‘기차표 하나 제대로 못 사다니’ 하며 머리를 쥐어뜯다가 인내심이 5분을 넘지 않는 도담이에게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말도 안 되는 자위에 이르렀다. 고향 울산까지 2시간40분을 타야 하는 기차보다 50분이면 도착하는 비행기가 ‘도담이 추석 수송 작전’에 적합하다는 판단을 애써 내렸다. 아내는 도담이가 한 번도 비행기를 탄 적 없어 통제하기 쉽지 않을 거라고 걱정했다.
아내 예상대로 고향 가는 길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체크인을 하려고 항공사 부스 앞에 줄을 서면서부터 도담이는 바닥에 내려달라고 울면서 떼썼고, 아내와 나는 공항 검색대에 들어가기도 전에 도담이에게 두 손 들었다. 도담이는 항공사 부스 앞, 공항 검색대 등 관문을 하나씩 통과할 때마다 공항 건물 바닥을 제 방인 양 활보했고, 나와 아내는 도담이를 잡아 들어올리느라 진땀을 뺐으며, 귀성객들은 우리를 보며 혀를 차거나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쯤 되니 불안이 엄습했다. 우리, 비행기를 무사히 탈 수 있을까.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한바탕 소동을 벌이면서, 공항에 유아 승객이 많음에도 아이를 위한 편의시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게이트 앞에 비치된 좌석들은 도담이가 앉기에 불편했고, 매점에는 도담이가 먹을 수 있는 메뉴가 거의 없었으며, 대리석 바닥은 이제 막 서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위험해 보였다. 게이트마다 어린이 편의시설을 마련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면, 일정 구역 단위로 어린이가 편하게 쉴 만한 작은 공간을 마련할 수는 없을까. 키즈카페처럼 돈을 받고 운영하는 방법도 있다. 아이도 부모도 잠깐 편하게 머물 수만 있다면 시중 키즈카페보다 비싸더라도 기꺼이 돈을 낼 수 있다. 온몸으로 바닥을 쓸고 다니는 아이를 보면서 마음은 이래저래 복잡했다.
‘도담이 수송 작전’의 가장 큰 암초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나와 아내가 도담이에게 비행기 복도에서 놀지 못하게 막자 신경질이 난 아이는 끝내 울음을 시원하게 터뜨렸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도담이의 울음을 막지 못했고, 덕분에 우리 가족 셋은 진상 고객이 되었다. (9월24일 오전 10시 울산행, 9월26일 오후 5시50분 김포행 대한항공 비행기에 탄 승객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꾸벅.)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에서 내린 우리는 기진맥진했고, 아내는 “다시는 아이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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