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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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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생은 무겁고 의미가 있다

일본 사회 소수자의 삶 <거리의 인생>
등록 2018-09-11 13:46 수정 2020-05-03 04:29

일본계 남미인 루이스는 어릴 때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이주했다. ‘리먼 쇼크’를 겪은 일본은 가난한 나라의 이민자들을 비행기표를 주면서 내쫓으려 했다. 커서 이른바 명문대 법학부를 나왔으나 정규직 취업에 실패한 루이스는 파트타임 노동자가 됐다. 그리고 다시 한번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냉정한 일본 사회의 밑바닥을 직시한다. 게이바에서 처음 본 남자와 키스했을 땐 자신의 성정체성에도 눈을 떴다.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가 펴낸 (김경원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은 외국인 게이 루이스를 비롯해 트랜스젠더, 싱글맘 등 가장자리 인생들의 이야기가 담긴 인터뷰집이다. 일본 사회의 주변인, 소수자를 연구해온 저자는 그의 구술 채록 연구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묶어낸 으로 먼저 국내에 이름을 알렸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관심이 많은 그는 이번에도 세상에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낼 일 없던 사람들의 삶을 담았다.

트랜스젠더인 리카는 일찌감치 자신의 성정체성과 재능을 깨달았다. 뉴하프(여성의 모습으로 주로 유흥업에 종사하는 사람)로 살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겨 자신의 직업에도 당당하다. “스트레이트한 사람들은 우리와 분리되고 싶어 하지만, 내가 볼 때는 ‘도긴개긴’이야”라고 당당하게 자신의 인생을 산다. 하지만 그라고 늘 씩씩할까. “짓밟히더라도 잡초처럼, 끈질기게, 다시 한번 일어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소수자의 버거운 삶이 읽힌다.

이른 나이에 결혼해 몰락한 남편의 빚을 떠안고 세 아들을 키우는 싱글맘인 요시노는 출장마사지업 종사자다. 빚 청산이 끝나 일을 관뒀는데 생활보호수급자에서 제외되자 다시 마사지걸로 일한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엄마의 경제활동은 험난한데 “좋은 엄마다”라는 칭찬에 “뭘요, 아니에요. 유흥업소에 다니잖아요”라며 아이들에게 미안해한다.

먹고 토하고를 반복하는 섭식장애를 가진 마유, 도박빚 때문에 떠돌이가 된 노숙자 니시나리 아저씨의 사연도 읽다보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외국인 게이인 것, 태어난 성별이 현재의 성별과 다른 것, 아무리 해도 평범하게 남과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하숙방에서 먹은 것을 대량으로 토하는 것 등 이런 갖가지 문제에 용감하게 뛰어들어 싸우다가 장렬하게 삶의 어둠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이 겪은 ‘보통 인생’의 단편”이라는 저자의 설명대로 모든 인생은 무겁고 의미가 있다.

저자는 ‘인터뷰이’들의 인생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개입하지 않기 위해 본래 대화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두서없이 이어지는 질문과 대답, “아하, 그렇군요” “예예” “그래요” “아니요” 사이에서 제대로 완성되지 않는 문장들이 읽기에 불편할 수 있지만 말줄임표로 나오는 말이 멈춘 순간, “하하” 하고 웃음으로 넘긴 순간들도 인터뷰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회적 규정에서 다소 벗어난 이들의 삶을 통해 저자가 말하려는 바는 분명하다. “우리 인생은 제각각 달라도 아주 다릅니다. 이 넓은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동시에 우리 인생은 아주 비슷합니다. 세계의 무대 뒤편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기쁨이나 슬픔은 아마도 우리의 기쁨이나 슬픔과 무척 닮아 있겠지요.”

김미영 문화부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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