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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집에서 취향을 공유합니다

낯선 집에서 낯선 사람들이 만나는 ‘남의 집 프로젝트’

60번째 모임 ‘남의 집 슬램덩크’ 참석기
등록 2018-09-11 13:20 수정 2020-05-03 04:29
‘남의 집 프로젝트’ 제공

‘남의 집 프로젝트’ 제공

‘남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9월1일 토요일 오후 5시, 경기도 성남의 한 아파트. 채자영씨 집에서 ‘남의 집 슬램덩크’ 모임이 열렸다. ‘남의 집 슬램덩크’는 집 거실에서 주인장의 취향을 공유하는 ‘남의 집 프로젝트’의 60번째 모임이다. 그동안 ‘남의 집 영화관’ ‘남의 집 비스트로’ ‘남의 집 코워킹’ ‘남의 집 요가’ ‘남의 집 독립출판’ 등 다양한 주제로 모임이 진행됐다. 이날 모임의 주제는 농구 이야기를 그린 일본 만화 다.

기자는 ‘남의 집’에 첫 손님으로 입장했다. 현관을 지나 바로 보이는 거실에는 쇼파 대신 긴 탁자와 의자가 있었다. 레스토랑 같은 인테리어로 꾸민 거실이다. 탁자에는 주인공 5명의 피겨(만화, 게임 등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축소해 만든 인형)가 놓여 있었다. 기자를 맞은 이들은 집주인 채자영씨와 그가 속한 덕후들의 모임 ‘슬램덩크 포에버’의 또 다른 멤버인 서대웅씨와 이준형씨, 그리고 ‘남의 집 프로젝트’ 운영자 김성용씨다.

집주인 채씨가 종이 한장을 건넸다. “에서 좋아하는 캐릭터 이름을 써주세요.” 종이에 ‘강백호’라고 적었다. 이 모임에선 본명보다 슬램덩크 캐릭터 이름이 자신의 호칭이다. 뒤이어 초인종 소리가 울리며 참가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어색함을 견디세요”</font></font>

“여러분, 남의 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김씨가 첫인사를 한다. “이 어색함을 견디세요. 한 30분 지나면 나아질 겁니다.” 김씨는 ‘남의 집 프로젝트’ 소개를 이어간다. “남의 집 프로젝트는 이 어색함을 즐기는 프로젝트로, 집주인의 취향을 나누는 거실 여행입니다. 여러분은 여행을 온 것입니다. 집에서 관심사는 같지만 모르는 분들과 하룻밤 놀고 경험을 나누는 겁니다. 오늘은 를 주제로 재밌는 경험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김씨의 모임 소개가 끝난 뒤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나이와 직업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이 모임에 참여한 계기와 관심사 등을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 덕후는 아니지만 모임 모집글에서 좋아하는 걸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라는 걸 보고 신청했다.” “나도 그렇다. 좋아하는 걸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았다. 그런 마음으로 일상에 돌아가면 다시 힘이 생길 것 같아서 모임에 왔다.”

이날 ‘슬램덩크 포에버’ 모임 멤버인 채자영씨, 서대웅씨, 이준형씨는 에 관한 추억을 들려줬다. 성격도 직업도 나이도 다른 그들을 이어준 건 다. 2016년 완간 20주년을 맞아 이노우에 다케히코 작가를 만나기 위해 일본에 간 이야기, 가 자신의 삶에 끼친 영향에 관한 책 을 펴낸 일화 등을 이야기했다. 채씨는 “는 농구 초짜들이 자신을 단련하며 프로가 되는 이야기다. 그걸 보며 자신의 모든 걸 바쳐 일하는 프로의 자세를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 이야기 나눌 이들을 찾아</font></font>

서대웅씨는 고등학교 2학년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를 처음 봤다. 20여 년 전 만난 는 끊임없이 노력하며 포기하지 않는 자세를 알려준 ‘나의 자기계발서’라고 한다. “일본 광고 문구 중에 ‘마흔은 두 번째 20살이다’라는 게 있다. 그 문구처럼 두 번째 20살이 되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의 이노우에 작가를 만나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2년 전 ‘슬램덩크 포에버’ 멤버들과 일본에 갔다.”

피디인 이준형씨는 2년 전 ‘슬램덩크 포에버’ 멤버들이 일본에 간 여정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2006년 덕후인 친구를 따라 일본에 갔다. 그 뒤 10년이 지나 ‘슬램덩크 포에버’ 멤버들과 그곳에 다시 간 것이다. 나는 덕후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우연히 (가 나에게) 왔다. 마치 (가) 나를 기다린 것 같다.”

모임 주최자들의 이야기를 이어받아 참가자들이 에 관한 추억을 꺼냈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서 일하는 ‘노 감독’은 “는 내 인생에서 굴곡이 있을 때마다 힘이 되는 만화”라고 했다. 하지만 주변에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 아쉽단다. “25살 조카한테 읽어보라니까 조카가 재미없다며 안 본다.”

앞에 앉은 ‘정대만’도 그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쳤다. “는 나의 인생 만화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할 만한 사람이 내 주위에도 없다.” 그는 농구를 워낙 좋아해 고등학교 때 아마추어 농구대회에도 나가고 미국 프로농구(NBA)를 보러 가기도 했다. “지금도 심심하거나 힘든 일 있을 때 를 보면 힐링이 되고 자극을 받는다. 주인공이 농구코트에서 모든 걸 쏟아내는 모습이 멋있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당신 마음속에 어떤 꿍꿍이가 있나</font></font>
9월1일 경기도 성남의 채자영씨 집에서 만화 <슬램덩크>에 관한 추억을 나누는 ‘남의 집 슬램덩크’ 모임이 열렸다. ‘남의 집 프로젝트’ 제공

9월1일 경기도 성남의 채자영씨 집에서 만화 <슬램덩크>에 관한 추억을 나누는 ‘남의 집 슬램덩크’ 모임이 열렸다. ‘남의 집 프로젝트’ 제공

모임이 집에서 열리다보니 채자영씨네 ‘하우스 투어’도 했다. 참가자들이 가장 관심을 보인 곳은 채씨의 서재다. 이곳에 만화 전 권이 있어서다. 만화책을 보자 다들 자리를 잡고 만화책을 봤다. 만화책을 넘기며 이야기를 한마디씩 했다. “‘그래, 난 정대만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 이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정대만 체력이 진짜 저질이지. 하하하.” “당시 캐릭터들이 신고 있는 농구화를 분석했었다.” “강백호가 삭발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남자들 사이에서 삭발이 유행했다.”

‘노 감독’은 일하는 중에 의 장면이 떠오른단다. “경쟁에 내몰리지 않고 변화를 주며 재밌게 일해야지 하는데, 그걸 잊고 살 때가 있다. 그때마다 ‘그저 재밌게만 하고 있지’라는 속 대사를 떠올린다. 재미없으면 의미가 없다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이날 모인 30∼40대 사회인들은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겪는 좌절과 고민도 털어놓았다. ‘채치수’가 말했다. “사회에서 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1등이 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모두 다 강백호와 서태웅이 될 수 없는 것처럼 팀 주역은 아니더라도 나의 팀을 밀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정대만’은 은행에서 일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건 기획일이란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서대웅씨는 “재밌는 기획이 꿍꿍이라고 생각한다. 여기 온 분들 중에는 마음속에 꿍꿍이라는 불씨가 있거나 이미 꿍꿍이를 하고 있거나 꿍꿍이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꿍꿍이를 실천으로 옮기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 그걸 함께할 나의 동료가 생긴다.”

집주인 채씨는 대학을 졸업한 뒤 직장인이 되면서 일과 관련된 사람들만 만나게 됐단다. 그러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2013∼2014년 낯선 이들과 집밥을 같이 먹는 모임 등이 생겼다. 아마 나처럼 새로운 만남을 갖고 싶은 사회인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당시 브랜드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커뮤니티에 참여했다. 그걸 하며 가족이나 친구랑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비슷한 취향을 가진 이들과 나누고 싶어 하는 이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 ‘남의 집 프로젝트’ 역시 그런 만남을 갖고 싶은 이들의 바람이 담긴 것 같다.”

김성용씨는 ‘남의 집 프로젝트’ 모임을 볼 때마다 “게스트하우스에서의 하룻밤”처럼 느껴진단다. “우연히 같은 장소에 모인 모르는 사람들이 재밌게 놀고 헤어지는 그런 낯선 곳에서의 여행 같다. 친한 이들에게는 민망해서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내일 안 볼 사람들이니 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소통이 없는 고독한 삶과 정체성을 상실한 현대인들에게 이런 낯선 만남은 좋은 자극제가 된다. “집주인은 자신의 일상에 낯선 이들이 오면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난 괜찮게 살고 있구나’라는 자기만족을 한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잠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는 것 같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남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간 여행</font></font>

프랑스 소설가 기 드 모파상은 “여행은 문과 같다. 우리는 이 문을 통해 현실에서 나와 꿈처럼 보이는 다른 현실, 우리가 아직 탐험하지 않은 다른 현실 속으로 파고들어 가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 말처럼 이날 ‘남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간 것 역시 여행이었다. 그곳에서 낯설고 새로운 것을 찾는 이들만이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났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font color="#A6CA37">‘남의 집 프로젝트’ 운영자 김성용씨 인터뷰</font>


재밌게 계속 ‘딴짓’


김성용 제공

김성용 제공

정보기술(IT) 업체에서 일했던 김성용(36·사진)씨는 지난해 1월 ‘딴짓’을 시작했다. 셰어하우스(공유주거)인 자신의 집 서재에 낯선 이들을 초대했다. ‘멘토링’을 주제로 낯선 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것이 ‘거실을 이용해 재밌고 의미 있는 걸 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한 ‘남의 집 프로젝트’다. 그동안 소셜미디어(블로그, SNS, 위키, UCC 등) 등을 통해 알려 ‘남의 집 프로젝트’를 60회 정도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집주인(호스트)은 50명, 참가자는 390명이다.
어느 모임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지난해 ‘남의 집 음악감상’을 주제로 연 모임이다. 클래식 감상이 주제였는데 호스트가 너무 신나서 이야기를 했다. 그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 온 엄마, 아빠, 아들 가족 참가자도 생각난다. 아들은 원래 힙합만 들었는데 이 모임을 계기로 클래식에 관심을 갖게 됐단다.
명함에 ‘남의 집 프로젝트 문지기’라고 쓰여 있다. 문지기는 어떤 역할을 하나.
모임의 호스트와 참가자들이 서로 처음 본 분들이라 어색해한다. 그런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 이야기가 시작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남의 집 프로젝트’를 한마디로 설명해달라.
에어비앤비의 ‘거실 버전’이라고 할까. 거실 공유 프로젝트다.
‘남의 집 프로젝트’를 하며 무엇이 즐거웠나.
여행 가는 기분이다. 매번 새로운 집에 가고 새로운 호스트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호스트와 참가자들이 즐겁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힘이 난다.
나에게 ‘딴짓’이란 무엇인가.
건강한 자극제다. 나의 일을 찾아가는 창업의 연습이기도 했다.
앞으로 계획은.
계속 재미있게 할 것이다. 더 다양한 ‘남의 집’들을 섭외하려 한다. 수요일마다 열리는 호스트 설명회에 많은 분이 관심 가져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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